검시조사관은 생소한 직업이다. 가족과 친구에게 설명하면 “대단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유족도 마찬가지. 검시과정을 옆에서 보다가 왜 이런 직업을 택했냐고 묻는다고 한다.이미정 조사관은 어느 날 집에서 쉬다가 현장에 나가려했다. 두 살짜리 딸이 물었다. “왜요? 엄마, 누가 목맸대요?” 아이의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이후 집에서 사건 이야기를 일절 하지 않았다.딸은 지금 중학교 2학년이다. 가끔은 일이 많아 집에서 보고서를 작성하지만 아이에게는 보여주지 않는다. 엄마가 너무 힘들어 보여서 딸은 같은 일을 직업으로 선택하고 싶지
이미정 조사관은 미국 드라마를 보며 검시에 흥미가 생겼다. 드라마에서는 한 편마다 사건 하나를 해결한다. 현실에서는 이런 속도와 명쾌함이 별로 없다. 해답을 내놓지 못할 때가 많다. 그는 “미국 드라마 주인공은 다 천재”라며 웃었다.그러면서 “항상 모든 게 찜찜하다”고 했다. 비슷한 사건에서 검시결과가 달리 나오면 특히 그렇다. 제대로 봤는지 늘 질문하고 의심하며 공부하는 이유다. 요즘 그는 일본 법의학자 니시오 하지메 책(죽음의 격차)을 읽는 중이다. 한국의 과학수사대는 사람으로 운영된다고 이 조사관은
5월 초, 기사를 봤다. 산불피해를 입은 강원도에 구호물품이 쏟아지는데 쓰레기와 다름없는 물품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얼마나 심한지 알아보려고 5월 9일 고성군으로 향했다.경동대 글로벌캠퍼스는 구호물품 보관소 및 분류작업장으로 사용되는 곳이다. 체육관에 들어가서 현장 작업자의 요청으로 유아용품부터 분류했다. 젖병, 화장품, 장난감이 상자에 섞여 있었다. 종류별로 분류해야 한다. 이재민에게 빨리 전달하기 위해서다. 작업 3분이 지나지 않아, 이 자국이 선명한 젖병을 발견했다. 가져갈 이재민이 없을 거라는 말이
철거상황과 정부대책이 궁금했다. 강원 고성군 토성면 주민센터 2층의 재난대책본부를 찾았다. 공무원 대여섯 명이 피해신고를 접수받았다.박기수 주무관(47)은 산불로 8개 마을에서 420세대, 967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5월 9일 기준으로 주택 467동이 파손됐는데 창고를 포함하면 더 늘어날 전망이다.피해조사가 끝나서 철거 동의서를 받는 중이다. 이후에야 컨테이너 또는 전세 임대주택을 선택할 수 있다. 5월 8일까지 64가구가 전세임대를 계약했고, 그 중 10가구가 입주했다.컨테이너에는 한두진 할아버지(80)가 가장 먼저
버스를 타고 강원 속초로 향했다. 5월 9일이었다. 시외버스터미널 건너편, 한국전력공사 속초지사 정문 옆에 천막이 보였다. 고성‧속초 산불피해공동비상대책위원회가 설치했다.정류장에 갔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았다. 주민에게 물어보니 파업 중이라 도착시간을 알 수 없다고 했다. 20분 뒤 대체 버스를 타고 고성군 토성면의 이재민 대피소로 향했다. 도로변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피해를 보상하고 한전이 사과하라는 내용.대피소는 천진초등학교 앞, 해변에 있었다. 화재 직후와 달리 카페가 문을 열었다. 주민센터 근처에 있
안정국 씨(36)는 4월 13일 고등학교 동창과 경기 수원의 챔피언 키즈카페를 방문했다. 그는 자리를 잡고 커피 두 잔, 그리고 아이들이 마실 뽀로로 음료 두 개를 주문했다.아이들이 놀이방으로 들어가자 아빠 둘은 서로의 핸드폰을 보여주며 근황을 이야기했다. 그는 “친한 친구끼리 시간되면 같이 키즈카페 가자고 물어 보기도 한다”고 했다. 다른 탁자에서도 형제로 보이는 아빠 두 명이 딸 둘에게 음료를 먹였다. 키키트리 키즈카페의 박신영 매니저(27)는 “주말에는 남성 보호자의 비율이 여성보다 1.5배 정도 많
마약조직을 검거하려고 치킨집에 잠복한다. 식당을 운영하고 아지트로 보이는 사무실에 배달까지 한다. 영화 이야기다. 실제로 경찰은 범인을 검거하는 과정에서 신분을 위장한다.서울 남대문경찰서 윤준노 경위(형사과 형사2팀)는 가짜양주를 제조한 일당을 잡기 위해 트럭기사처럼 꾸몄다. 고객행세를 하면서 범인을 잡는 데 성공했다.서울 강남경찰서 김은지 경위(형사과 강력6팀)도 비슷한 방법으로 사건을 해결한 경우가 많다. 아랫집에 사는데 물이 샌다면서 문을 열어 달라거나, 학습지 강사처럼 말한다.남자형사가 대부분이니 김 경위는 위장
매캐한 냄새가 지하철 승강장에 퍼졌다. 스크린도어 앞 의자 사이로 토사물이 보였다. 일부가 벽에 튀었다. 누군가 대걸레가 담긴 양동이를 끌며 다가왔다. 또 다른 이가 나무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왔다.“처음엔 힘들더라. 뭐랄까, 역겹고. 근데 지금은 몇 년이 흘러서 직업이 됐으니까. 아무렇지도 않아.”이들은 휴지뭉치를 풀어 토사물 위에 놓았다. 빗자루로 휴지를 몰며 쓰레받기에 담았다. 7분 뒤, 바닥이 깨끗해졌다. 5월 23일 밤 12시경. 뒤를 따라 계단을 오르자 4개월 전이 떠올랐다.“집이 어느 방향이에요? 데려다 줄게요.”
홍성도 씨(33)는 직장생활에 지칠 때마다 달리기를 한다. 9개월째다. 인스타그램으로 알게 된 달리기 모임 덕분이다. 평일에는 사무실에서 하루 종일 앉아있지만 목요일 오후 8시 30분이면 중랑천, 공릉동 등 노원구를 동네사람들과 함께 달린다.집에서 5분 거리라 날씨가 따듯하면 번개모임도 종종 나갔다. 끝나면 맥주를 같이 하면서 친분이 생겼다. 달리기가 아니더라도 심심할 때는 주민을 만났다. ‘동네친구’가 생긴 셈이다.혼밥족, 혼술족. 혼자 하는 사람을 말한다. 취미생활도 마찬가지. 인터넷을 통해 커뮤니티와 SNS 이웃을 늘리지만 정
김봉시 씨(79)는 경로당에 한 번도 가지 않았다. 노모가 돌아가시기 전, 20년 넘게 경로당을 다니며 겪은 일이 떠올라서다.술, 담배와 화투가 지배적인 경로당 문화를 김 씨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기력 있거나 나이 어린 사람이 잡일을 떠맡는 분위기도 싫다. “다들 젊었을 때는 한 가닥 했는데 가서 심부름 하면 좋겠습니까?”경로당은 대표적인 노인복지시설인데 ‘그들만의 리그’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폐쇄적 분위기에 노인이 발길을 끊고 새 회원이 들어가지 않아서다.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2017년 노인 실태조사’에 따르
젊은 세대가 추구하는 인간관계는 어떤 형태인가? ‘유료소셜모임’에서 그 답을 찾는다.낯선 사람들이, 돈을 내고, 모임을 진행한다? ‘트레바리’, ‘취향관’, ‘문토’… 유료 소셜 모임 사업이 최근 2년 사이에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트레바리는 2016년부터 빠르게 성장해 현재 3,000명 이상의 회원이 참여한다.적지 않은 비용을 내고 이 모임에 참여하는 젊은 세대들은 대체 무엇을 얻고 싶은 것일까? 어떤 관계를 원하기에 ‘유료’ 모임에 참여할까? 영상을 통해 그 답을 찾아본다.
강원 고성군과 함께 피해를 입은 속초시는 어떨까? 길을 걷는데 불에 탄 표지판이 보였다. 발로 건드리니 쉽게 움직였다. 바람에 날려 보행자 또는 차량과 부딪힐까 걱정됐다. 가는 길에 영동극동방송 건물을 지났다. 전면이 까맣게 탔다. 외곽과 달리 시내에는 불에 탄 주택이 눈에 띄지 않았다. 하지만 산으로부터 매캐한 냄새가 바람을 타고 실려 왔다. 아바이 마을을 찾았다. 점심을 먹으려고 식당에 들렀다. “저희는 사람이 줄지 않았어요.” 주인이 이렇게 말했지만 빈 테이블이 많았다. 수
취재팀이 강원 고성군과 속초시를 다녀왔다. 산불피해가 어느 정도인지, 주민은 어떻게 지내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강원 고성군에 도착해서 대피소를 먼저 찾았다. 주민의 도움으로 토성면 용촌 1리로 향했다. 이번 산불로 피해가 가장 큰 지역에 속한다. 마을 입구부터 냄새가 진동했다. 조금 걸어 들어가자 불에 탄 집과 그렇지 않은 집이 보였다. 높고 푸른 하늘이 화마의 흔적과 대조적이었다. 마을회관 앞의 집은 찌그러진 깡통 캔처럼 뒤틀린 상태였다. 취재팀이 갔던 4월 14일, 바람이 강하게 불자 삐거덕
서울 광화문광장에 ‘기억과 빛’이라는 공간이 있다. 세월호를 기억하려고 만든 곳이다. 4월 12일 시범운영을 시작했다. 세월호 5주기인 4월 16일, 오후 5시가 되자 이곳을 찾는 발길이 늘었다.교복을 입은 학생, 정장을 입은 직장인, 휠체어를 탄 장애인, 아이들과 함께 온 주부,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과 수녀. 이 중에서 교복차림의 학생이 가장 많았다.진상규명 서명을 받는 공간에 16명이 줄을 섰다. 안내자에게 물으니 분위기가 다르다고 했다. 평소에는 지나가다가 우연히 들렀다면 오늘은 5주기를 기억하는 시민이 많다고 했다.
세월호 5주기 기억식이 열리기 전, 4.16 연대는 시민 추모행진을 준비했다. 4월 16일 오후 1시. 경기 안산시의 고잔역 1번 출구를 나오니 노란 바람개비가 기다렸다. 맞은편에는 세월호 학생을 상징하는 책걸상이 보였다.노란 바람개비 1000여 개가 고잔역을 출발해 옛 안산교육지원청 터에 마련된 기억교실을 향했다. 기억교실을 지나 단원고에 들렀다가 화랑유원지에서 끝나는 일정. 경찰이 차량을 통제하고 길을 만든다.참가자는 일렬로 서서 앞 사람을 따라갔다. 이런 모습을 보고는 “나라가 망했네. 망했어!”라며 화를 내는 시민도 있었다.
권희원=출근길 버스가 생생하다. 다들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울었다. 믿기 어려울 만큼 허무하게 흘러버린 지난밤을 생각하니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2016년 4월 16일, 인턴기자 신분으로 안산의 2주기 추모식을 찾았다. 여전히 눈물이 났다. 5주기 추모식은 조금 달랐다. 이제는 변화를 요구했다. 유가족 대표는 책임자 수사와 처벌을 외쳤다. 생존 학생은 용기를 내서 발언대에 섰다. 진실을 밝혀 친구 앞에서 떳떳해지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장서령=지난 1월 19일, 유가족과 순례길을 걸었다. 어느 어머니가 기억난다. “우리 고운이는 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