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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과 인간 (28) 산불 한 달 ① 사라진 일상
김은지·한지은 기자 | 승인 2019.06.02 20:11

 

버스를 타고 강원 속초로 향했다. 5월 9일이었다. 시외버스터미널 건너편, 한국전력공사 속초지사 정문 옆에 천막이 보였다. 고성‧속초 산불피해공동비상대책위원회가 설치했다.

정류장에 갔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았다. 주민에게 물어보니 파업 중이라 도착시간을 알 수 없다고 했다. 20분 뒤 대체 버스를 타고 고성군 토성면의 이재민 대피소로 향했다. 도로변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피해를 보상하고 한전이 사과하라는 내용.

대피소는 천진초등학교 앞, 해변에 있었다. 화재 직후와 달리 카페가 문을 열었다. 주민센터 근처에 있던 농기구 대여 천막과 밥차는 보이지 않았다.

한 달 전에 만난 함상애 할머니를 찾았다. 허리가 아파 자리를 비웠다고 한다. 내부를 둘러봤다. 체육관에 가득했던 텐트와 텔레비전이 절반정도 사라졌다. 양문형 냉장고, 세탁기, 건조기가 새로 보였다.

오후 두 시쯤. 함 할머니를 만났다. 명절에 찾아온 손녀를 대하듯 기자를 안으며 반갑게 맞았다. 할머니 동생(함상임 할머니) 및 시누이가 함께 했다. 할머니는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기자의 손을 쓰다듬었다.

▲ 함상애 할머니(오른쪽)가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할머니들은 매일 아침 8시, 버스를 타고 용촌리로 가서 농사일을 한다. 고추 심, 옥수수, 감자를 키운다. 함상애 할머니에게는 1500평짜리 블루베리 하우스가 있었다. 화재로 절반이 탔다. 새로 심었다고 말하는데 아쉬움이 묻어났다.

대피소를 오가며 농사를 하니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다. 할머니의 시누이는 가만히 있는 게 더 힘들다고 했다. 함상애 할머니는 이날 침을 맞았다. 압박벨트를 하지 않으면 허리를 잘 움직이지 못한다.

함상애 할머니는 체육관 바닥이 아니라 벤치에서 잔다. 밤에는 히터를 틀어주니까 따뜻하지만 불이 났던 4월 4일 밤부터 감기가 걸렸는데 계속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얼른 쾌차하시길 바란다”며 발걸음을 돌렸다.

대피소 현황판에 따르면 텐트 15동에 28명이 남았다. 남성 13명, 여성 15명. 중학생을 포함한 어린이가 2명이다.

노연우 씨(57세)는 집이 무너지는 걸 목격한 딸(중학생)이 일주일 간 입원했다고 했다. 학교에 가려면 임시숙소에서 버스를 20분 정도 타고, 걸어서 10분을 더 가야 한다.

교과서는 학교에 뒀지만 집에 있던 참고서가 모두 타서 중간고사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 “엄마, 역사는 그래도 (성적이) 좀 나왔어.” 노 씨는 딸의 말을 전하면서 너무 미안하다고 말했다.

▲ 대피소에서 만난 노연우 씨

노 씨 가족은 인흥리에 살았다. 임시숙소인 천진초 시설은 크게 불편하지 않다고 했다. 샤워실이 남녀 하나씩 있고, 세탁은 봉사자가 한다.

몸이 아픈 사람이 문제다. 노 씨는 목과 허리수술을 한지 1년이 안 돼 바닥 생활을 힘들어 한다. 노 씨는 공기청정기를 요청했다. 노인이 많고, 같은 공간에서 여럿이 지내면 공기가 나빠져서다.

인터뷰에 응한 이유를 노 씨는 유언비어 때문이라고 했다. “많은 지원을 받고 있지 않아요. 어떤 사람은 먹고 살만해 졌겠다고 하는데, 그건 자기 집이 안 타봤으면 못할 말이에요. 우리는 쓸 데 없는 돈을 바라는 게 아니에요. 지낼 돈이 필요한 거에요.”

노 씨는 5월 8일 시위에 참가했다. 구호는 ‘정부는 보상해라’, ‘한전사장, 보상 안 하면 구속하라’였다. 아침 9시 40분부터 시위하면서 구호만 1시간 30분 동안 외쳤다.

아들 지민결 씨(21)는 입대를 앞둔 상태. 아르바이트를 하고 영화를 보러 갔다가 친구들 연락에 화재소식을 알았다. 교통이 통제되어 당일에는 집 근처에 가지 못했다.

지 씨는 앨범을 챙기지 못한 점을 가장 아쉬워한다. 가족의 21년 추억이 한순간에 없어졌다. 아직도 집이 없다는 게 믿기지 않고, 부모님이 안쓰럽다고 했다. “어머니는 침대 생활을 하셔야 하는데, 침대도 없고요. 불이 나서 원래 드시던 약도 다 타버렸어요.”

화재로 인해 바뀐 일이 너무나 많은데 금방 묻힌 것 같아 아쉽다고 그는 말했다. 속초는 관광객 발길이 늘면서 경기가 되살아나는 중이다. 고성은 아직 그렇지 못하다. 지 씨는 그래서 고성에 관광객이 더 많이 놀러오기를 바란다.

이어서 왕주남 씨(75)를 만났다. 의정부에서 직장을 다니다 10여 년 전, 고성에 정착했다. 노후를 자연과 함께 보내기 위해서였다.

그는 집터를 둘러보며, 밤, 대추 같은 나무를 120그루나 심었다. 유리온실에서 열대식물을 기르고 여름에는 바비큐 파티를 했다. 불과 함께 모두 탔다. “계절변화를 보는 즐거움이 다 사라졌다.”

▲ 왕주남 씨가 집터에서 촬영에 응했다.

뿌리가 살아남은 나무를 골라서 가지치기를 했다. 한 달간 정성껏 살려낸 나무를 보여줬다. 다섯 그루는 꽃 봉우리가 맺혔다. 황도복숭아 나무는 새로 심었다. 보금자리를 다시 가꾸겠다는 목소리에서 의지가 느껴졌다.
 
왕 씨의 봉포리 집은 5월 8일부터 철거작업에 들어갔다. 천진초에서 걸어서 20분 거리. 5분 쯤 걷자 인도가 끝났다. 경동대로 향하는 방향에서 고가도로 방면으로 좌회전을 했다. 차도를 지나 흙길을 계속 걸으니 찜질방이 나왔다. 맞은편이 왕 씨의 집이다.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남았지만 집은 사라졌다. 이런 상황에서도 왕 씨는 쾌활한 느낌이었다. 매일 아침 천진초 운동장을 12바퀴씩 돈다고 했다. 발화원인이 밝혀졌으니 보상 문제가 금방 해결되리라 믿는다. 늦어도 가을에는 해결이 되지 않겠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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