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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과 인간 (30) 산불 한 달 ③ 씁쓸한 온정
김송이‧권희원 기자 | 승인 2019.06.02 20:17

 

5월 초, 기사를 봤다. 산불피해를 입은 강원도에 구호물품이 쏟아지는데 쓰레기와 다름없는 물품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얼마나 심한지 알아보려고 5월 9일 고성군으로 향했다.

경동대 글로벌캠퍼스는 구호물품 보관소 및 분류작업장으로 사용되는 곳이다. 체육관에 들어가서 현장 작업자의 요청으로 유아용품부터 분류했다. 젖병, 화장품, 장난감이 상자에 섞여 있었다. 종류별로 분류해야 한다. 이재민에게 빨리 전달하기 위해서다.

▲ 구호물품을 보관하는 경동대 체육관

작업 3분이 지나지 않아, 이 자국이 선명한 젖병을 발견했다. 가져갈 이재민이 없을 거라는 말이 나왔다. 자원봉사자 도현선 씨는 “산불 직후 지금까지 일하면서 본 영유아는 1살짜리 아이 한 명이 전부”라고 했다.

이어서 가방을 분류했다. 핸드백, 배낭, 에코백. 종류를 나눠 담는데 가방에서 휴지와 양말이 나왔다. 자원봉사자는 “그건 재분류”라고 말했다. 쓰레기와 다름없는 물건을 듣기 좋게 불렀다.

태국어 등 알 수 없는 언어로 사용방법이 적힌 의약품을 놓고 누군가 고민했다. “92년도 치약이랑 요강까지 나왔어.” 다들 고개를 흔들었다.

바깥에서는 그릇을 분류했다. 체육관 왼쪽 입구에 상자가 보였다. 표면이 녹슨 스테인리스 그릇, 표면 칠이 벗겨진 밥솥, 수증기 배출구가 부서진 전기밥솥. 못 쓰는 물건으로 분류했다.

▲ 재분류 포대

천진초등학교 밥차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시작했다. 분류작업이 끝나지 않은 상자가 있었다. 혈당 측정기, 돋보기, 손수건과 양말 세트, 상표를 떼지 않은 핸드백. 대부분이 새 상품이다. 그런데 안쪽을 볼수록 사용 흔적이 뚜렷한 물건이 많이 나왔다.
 
본격적인 작업은 오후 2시부터였다. 자원봉사자 8명이 돗자리를 가운데 깔고 빙 둘러 앉았다. 학용품으로 분류된 상자 여러 개를 쏟았다. 초등학교에 전달한다고 했다.

종류별로 나눠 새 상자에 담았다. 볼펜, 연필, 지우개, 사인펜, 색연필, 크레파스, 필통, 가위, 풀, 자, 테이프, 노트, 문구 세트, 장난감. 볼펜과 연필이 가장 많았다. 다음은 사인펜과 색연필이었다.

▲ 자원봉사자가 학용품을 분류하는 모습

볼펜, 연필, 사인펜, 색연필은 대부분 낱개였다. 온전한 형태가 드물었다. 지퍼백의 펜은 대부분 사용했던 제품이었다. 연필은 깎아서 쓰다가 절반 정도 남긴 경우가 많았다. 크레파스도 마찬가지였다.

지우개 묶음이 눈에 띄었다. 길쭉한 지우개는 반 이상 닳았다. 연필을 지운 자국으로 지저분했다. 사각형 지우개는 귀퉁이가 거의 닳아 있었다. 자원봉사자들은 “어휴, 뭐 이런 걸 다…”라며 혀를 찼다.

낙서와 메모가 남은 노트와 수첩도 여럿 나왔다. 어느 스케치북에는 구호물품을 보낸 가정의 자녀로 추정되는 아이 이름이 적혀 있었다.

▲ 사용 흔적이 많은 학용품

사용 흔적이 많으면 재분류 상자로 옮겼다. 간혹 손으로 정성스럽게 쓴 편지가 붙어 있었다. ‘내가 쓰던 크레파스인데 도움이 되길 바라.’ 메모를 떼지 않고 담았다. 문구 세트는 상태가 가장 좋았다. 한 번도 포장을 뜯지 않았지만 전체에서 10%가 되지 않았다.

오후 3시 반, 산더미 같던 학용품이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마무리 작업에 들어갔다. 분류된 학용품 숫자를 하나하나 셌다. 종류와 수량을 종이에 써서 붙이고 포장했다.

▲ 분류 작업 후 쌓인 재분류 물품

취재팀은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 반까지 자원봉사를 했다. 쓸모없는 물건이 덜 나오길 바랐다. 그러나 작은 소망은 이뤄지지 않았다. 공무원이 말했다. “우린 이런 거 욕 안 해요.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서 보냈을 테니까.”

자원봉사를 하는 동안 체육관에 도착한 구호물품 택배는 2개였다. 화재 직후에는 하루 270개씩 왔다. 자원봉사자는 50명 이상에서 18명으로 줄었다. 그 중 13명은 대순진리회 교인이다. 이재민에 대한 관심이 점점 줄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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