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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당, 그들이 사는 세상
이지안 기자 | 승인 2019.05.26 23:00

 

김봉시 씨(79)는 경로당에 한 번도 가지 않았다. 노모가 돌아가시기 전, 20년 넘게 경로당을 다니며 겪은 일이 떠올라서다.

술, 담배와 화투가 지배적인 경로당 문화를 김 씨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기력 있거나 나이 어린 사람이 잡일을 떠맡는 분위기도 싫다. “다들 젊었을 때는 한 가닥 했는데 가서 심부름 하면 좋겠습니까?”

경로당은 대표적인 노인복지시설인데 ‘그들만의 리그’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폐쇄적 분위기에 노인이 발길을 끊고 새 회원이 들어가지 않아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2017년 노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 경로당 이용률은 23%다. 서울의 경우에 2018년 현재, 65세 이상 노인 중 7.6%만이 경로당을 이용했다.

기자가 경로당을 가봤다. 4월 9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종로구 평창경로당 할머니방. 문을 열고 들어서자 방송소리가 귀를 찔렀다. 5명이 있었다.

TV 바로 앞의 김옥남 씨(83)는 7년째 매일 경로당에 온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온종일 TV를 본다. 따로 하는 운동은 없다. 복지관에서 목요일마다 제공하는 안마 서비스가 전부다. 매달 5일 경로당 곗날에 노래방 기계로 ‘수덕사의 여승’을 부르는 게 제일 즐거운 일이다.
 
“아아아아~ 수덕사의 쇠북이 우우운다~.” 김 씨가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갑자기 외쳤다. “여기 학생 커피 한 잔 타줘!” 다른 할머니들의 싸늘한 시선이 느껴졌다.

기자가 스스로 커피를 타니 꽃분홍색 상의를 입은 할머니(이하 ‘분홍 할머니’)가 다가와 커피를 저어주며 물었다. “저기가 학생보고 커피 타 달래?” 아니라는 손사래에도 분홍 할머니는 김 씨를 향해 눈을 흘겼다.

분홍 할머니는 이곳의 ‘일꾼’이었다. 점심때가 되자 소고기뭇국을 데우고, 밥을 푸고, 고사리·시금치·도라지나물과 묵은지 지짐으로 상을 차렸다. 후식으로 사과를 깎고 믹스커피를 탔다. 할머니는 점심이 끝나자 병원에 간다며 경로당을 나섰다.
 
4월 16일 오후 4시 서울 서대문구 신촌경로당. 입구부터 참이슬 4개가 보인다. 문을 여니 한 쪽에는 바둑판, 한 쪽에는 화투판이다.

▲ 경로당 노인들이 술을 마시며 바둑을 두는 모습

보라색 상의차림의 할머니(이하 ‘보라 할머니’)는 5000원을 잃자 자리를 내주고 구경하기 시작했다. 바둑판 옆의 맥주 캔은 텅 비었다. 

경로당이 외면 받는 또 하나의 이유는 노인사이의 불화다. 4월 21일 오후 3시 서울 노원구 롯데아파트경로당 할아버지방. 문이 굳게 닫혔다. 할머니방에는 8명이 화투를 치는 중이다.

경로당 총무인 이경영 씨(76)는 “여자들은 서로 미워도 티를 안 내는데 남자들은 이놈 저놈 하면서 싸우다가 잘 안 온다. 여자는 15명이 넘지만 남자는 오는 사람이 3명뿐이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의 ‘2017년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경로당 이용 경험에서 불만족스럽게 느꼈던 점에 ‘다른 노인과 마음이 맞지 않았다’는 응답(69.4%) 가장 많았다. 학력이 높을수록 다른 노인에게 불만이 컸다.

도시가 아닌 농촌은 어떨까. 4월 20일 오후 2시 경기도 포천 이곡2리 경로당. 들어서자마자 65인치의 대형 TV가 눈에 띈다. 경로당과 ‘1사1촌 자매결연’을 맺은 삼성전자의 기증품이다.

낮잠을 자는 할머니와 뉴스를 보던 윤석모 씨(79)뿐이다. 사람이 적은 이유를 묻자 윤 씨는 “지금은 농번기라 그렇다. 겨울에는 30명 가까이 온다”고 말했다. 윤 씨는 뉴스를 보는 내내 정부비판을 쏟아내다가 “시골에 경로당은 꼭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곳에서는 두어 달에 한 번씩 노래교실을 연다. 농촌노인의 몇 안 되는 스트레스 해소법이다. 김춘남 경기복지재단 연구위원은 “농촌에서는 사랑방 기능에 충실한 경로당이 앞으로도 당분간은 유효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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