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각형 탑의 윗부분이 보였다. 이제 다 왔다 싶었는데 철제문이 가로 막았다. 주변을 둘러봤지만 다른 길은 없었다. 벨을 누르자 직원이 나왔다. 추모비를 찾아왔다고 했더니 “어디서 나오셨냐”고 물었다. 일반 추모객일리가 없다는 생각에서 나온 질문으로 느껴졌다. 추모객의 방문이 일상적이지 않음을 짐작케 했다. 2월 20일 찾아간 씨랜드 추모비는 이처럼 관리인의 허가를 받아야만 접근이 가능했다. 대부분의 추모비는 일반에게 개방된 곳에 세워지지만 씨랜드 추모비는 서울 송파구 마천동 송파안전체험교육관 뒤편의 실외 교육장에 자리 잡았다. 직원
팽목항 기억 공간 광주광역시 종합버스터미널에서 전남 진도군 공용터미널로 가는 첫 차가 출발했다. 2월 20일 오전 5시 50분. 버스는 두 시간 정도 지나서 도착했다. 여기서 팽목항에 가려고 한 시간에 한 번 꼴인 농어촌버스를 탔다. 팽목·서망행 농어촌버스가 달리는 동안에 세월호 희생자를 기리는 ‘세월호 기억의 숲’이 보였다. 안내방송이 없지만 빨간색 등대가 보이기 시작하면 도착지가 가까움을 알 수 있다. 출발 40분 정도가 지나 버스에서 내렸다. 오전 8시 50분. 정류장에서 오른쪽으로 ‘기다림의 등대’가 보였다. 가는 길에는 시
세상이 다 잊어도...엄마는 잊지 않으마. 성수대교 위령비를 떠나려는데 플래카드가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프런티어저널리즘스쿨(FJS)의 13기와 프렙스쿨 주니어반은 엄마의 마음처럼 아픔과 교훈을 잊지 않으려고 기획에 참여한다. 잘못을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성수대교를 찾아간 날은 1월 23일, 강바람이 매서운 겨울이었다. 지하철 분당선 서울숲역의 3번 출구에서 한강공원으로 향했다. 안내판이 보이지 않았다. 서울숲 여기저기를 헤매자 마을 주민으로 보이는 여성이 “이 주변을 잘 아니까 길을 알
동아일보에 1990년 입사했다. 편집부를 거치면서 취재기자 생활은 1994년 1월, 사회부에서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내가 썼던 기사를 모았다가 주말이면 오려서 붙였다.빛바랜 스크랩북을 넘기는데 동아일보 호외(號外)가 눈에 들어왔다. 검은색 바탕에 하얀 글씨체의 제목이 조기(弔旗) 느낌을 준다.호외는 마감시간이 많이 남은 상황에서 발행했다. 인터넷이 대중화하기 전에 독자를 위해 제작하고 배포했다. 방송에서는 정규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갑자기 편성한 뉴스속보에 가깝다. 성수대교 호외는 2페이지다. 앞면은 붕괴사
해마다 2월과 8월, 수강신청 기간이 되면 학내 커뮤니티와 단체 메시지 방은 수강신청 이야기로 가득하다. 강의신청에 모두 성공했다는 ‘올클’ 자랑부터 수강신청에 실패해 걱정이라는 불만까지 다양하다.대학은 ‘권장학기’를 제시하고 수강신청에 반영한다. 강의를 들어야 하는 학년과 학기를 지정 또는 권장하는 방식을 말한다. 수강신청을 편리하게 만들고 전공이해를 돕기 위해 많은 대학이 실시한다.고려대나 한국외대는 전공 교과목에, 이화여대는 전공과목과 필수교양과목 모두에 권장학기를 적용한다. 한국외대 2학년 백서희 씨(20)는 “학습 방향성을
인터뷰를 요청한 지 41시간이 지나서였다. 2018년 10월 31일 오후 4시 21분 답장이 왔다. “호주에서는 네이버 메일을 거의 안 써서 확인이 늦었어요. 카카오톡으로 이야기하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에세이집 ‘이민을 꿈꾸는 너에게’의 박가영 작가(35)와의 메신저 대화는 이렇게 시작됐다. 이 책은 2018년 8월 10일 출간 이후로 3주 만에 2쇄를 찍었다.스물여섯 살. 취업전쟁이 두려웠고, 도피처가 필요했다. 그래서 워킹홀리데이로 호주에 갔다. 직접 모은 돈으로 어학연수를 하면서 요리직업학교에서 공부했다. 여러 직장을
입구에 들어서니 중년 남성이 노트북을 앞에 두고 뭔가에 열중하고 있다. 돋보기를 쓴 여성은 소파에 앉아 책을 읽는다. 수업을 마치고 삼삼오오 내려오는 학생들. 머리가 희끗하다. 서울 마포구의 ‘서울시 50플러스 중부캠퍼스’다.50플러스 세대. 만 50세에서 64세를 일컫는다. 서울시 인구의 21.9%를 차지한다. 중장년으로 불리던 이들의 새로운 이름표다. 베이비부머의 은퇴가 시작되면서 이전의 노년세대(만 65세 이상)와 구분하는 말이 생겼다.50플러스 세대는 신체적으로는 일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젊지만, 사회적으로는 퇴직을 했거나,
“혹시 종이컵에 담아드려도 괜찮을까요?” 서울 영등포구의 커피빈 매장에서 음료를 주문했을 때 돌아온 대답이다. 종이컵에 담긴 아이스 음료는 다소 생소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카페에서는 머그컵이 아닌 종이컵을 꽤 많이 사용했다.보름 후에 서울 서대문구의 커피빈 매장을 찾았다. 이번에도 같은 대답을 들었다. 그 곳에서 만난 대학생 김세종 씨(23)는 “플라스틱 컵보다 (환경에) 덜 유해하게 느껴져서 잠시 사용하기에는 편리하고 괜찮은 것 같다”고 했지만 대화 말미에는 “장기적으로 (종이컵보다) 더 좋은 대안이 있지 않을까?”라며 고민하는
한림대 2학년 권선영 씨(20)는 시험을 보다 갑작스러운 허리 통증을 호소했다. 오른손잡이 기준 책상에서 글씨를 쓰기 위해 몸을 기울여야 했기 때문이다. 30분이 넘는 시간 동안 불편한 자세로 있어 허리에 무리가 온 탓이다. 그는 부정행위로 의심 받을까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왼손잡이라면 대부분 한 번씩 겪는 경험이다.영국 ‘왼손잡이 협회(Left-Handers Club)’에 따르면 전 세계 왼손잡이 비율은 약 10%고, 한국갤럽에 따르면 우리나라 왼손잡이 비율은 만 20세 이상 3.9%다. 10% 이하의 적은 수치가 왼손잡이도
중학생 실내화, 하이힐, 효도신발. 1평 남짓한 현관에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인 신발이 뒤엉켜있다. 간이 신발장에는 100켤레 넘는 신발이 빼곡하다. 거실로 들어가면 식당에 어울릴 듯한 긴 식탁이 가운데 보인다.부엌에서 아빠는 국을 뜨고 삼촌은 밥을 푼다. 7명 가족 모두가 음식과 식기를 옮긴다. 명절 아침과 비슷한 장면. 직장인 이주현 씨(26)에게 일상적인 풍경이다. 아내와 사별 후 아이들을 혼자 키워야 했던 삼촌네와 이 씨 가족이 함께 살았던 11년째 계속된 모습. 대학생 유민아 씨(25)는 알람 대신 거실에서 들려오는 시끌벅적
“자기 치마가 너무 짧은 거 아니야?”“내 치마 길이가 왜?”“아니, 다른 사람들이 쳐다보잖아.”“내 치마길이가 어떻든 쳐다보는 사람이 문제 있는 거 아니야?”1년 정도 교제 중인 박주연(23) 씨와 명민호 씨(24세)는 최근 같은 주제로 부딪히고 있다. 싸움의 시작은 가수 ‘설현’이었다. 오랜만의 데이트에 신나서 초밥을 먹고 영화를 보기로 했다. 박 씨가 “페미니스트의 면모를 보이는 설현이 멋있어”라고 말하면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홍대몰카사건, 혜화역 시위, 성범죄로 이어졌다. 페미니즘에 관한 토론은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에 자주
추억과 상처는 여전하다세월호를 향한 지나친 관심과 도를 넘어선 비난, 그리고 배가 인양되는 과정은 유가족의 심리상태를 더욱 악화시켰다.유가족에게 “아이를 팔아 잇속을 챙기려고 한다”는 비난, 오뎅 먹는 사진을 올리며 “친구를 먹었다”고 했던 단원고 교복차림 학생의 발언은 유족의 가슴을 후볐다.인양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방송에서 배의 인양을 다루는 뉴스는 애써 고통을 견디는 유가족의 마음을 참사 초기로 돌려놓았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마음과 몸의 아픔을 겪는 듯 했다.“아이가 사라진 게 믿기지 않아요. 아직도 학교에서 돌아올 것 같은
생을 펼치지 못한 학생들의 시신이 병원에 안치됐다. 학생의 어머니는 빈소에 들어서면서 쓰러졌다.세월호 참사 이후, 고려대 안산병원의 모습이다. 봄은 언제나 찾아왔지만, 그날 이후의 시간은 전과 같지 않았다. 그렇게 흘러갔다. 4년이….발자취를 따라가다경기 안산 단원구에 있는 ‘4‧16기억교실’을 찾았다. 7월 16일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2년이 채 되지 않은 기자에게 교실은 친숙했다.줄지어 서있는 책상과 의자, 교탁과 칠판. 그러나 기억교실에는 주인을 잃은 책상, 사물함만이 남았다. 더 남은 것이 있다
2018년 5월 1일, 4월 23일, 3월 6일… 지난 3월부터 5월까지 ‘2호선’이 한 포털 사이트(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른 날짜다. 해당일 지하철 2호선 운행이 심각하게 지연됐기 때문이다. 위 날짜처럼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오를 정도로 연착 정도가 심각하지 않아도 출근 시간인 오전 8시에서 9시 반까지 열차 지연은 흔한 일이다. 특히 이 시간대는 역사와 열차 내 사람이 많아 이동조차 힘들다. 출퇴근 시간마다 붐비는 지하철을 지옥에 비유하는 ‘지옥철’이라는 말이 통용될 정도다. 지
서울지하철 5호선 신길역에서 휠체어 리프트로 이동하던 장애인이 추락해 사망했다. 작년 10월의 일이었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연대)는 리프트(경사형 휠체어 리프트)를 철거하고 승강기를 설치하라고 서울시에 요구했다.취재팀은 공공기관의 승강기, 휠체어 리프트. 계단, 화장실 등 장애인 편의시설이 어떻게 설치되고 운영되는지를 살펴봤다. 서울의 구청건물 10곳을 대상으로 했다. 기준은 서울시가 마련한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매뉴얼’이었다.휠체어 리프트는 강서구청, 영등포구청, 은평구청에 설치됐다. 은평구청의 휠체어 리프트는 승강기형
최근 한국에서 난민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상했다. 제주도에서 예멘인 549명이 난민 신청을 했기 때문이다. 난민 문제는 한국 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다. 유엔주재 교황청 대사 베르나르디토 아우자 대주교가 지적했듯 난민 문제는 국제적 문제이자 인류 보편의 문제다. 난민 문제를 폭넓게 이해하려면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의 시각도 참고해야 한다. 스토리 오브 서울은 국제 사회가 한국 난민 문제를 보는 시각을 파악하기 위해 총 36건의 외신 기사를 분석했다. 연합뉴스가 제주도에서 난민 신청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보도를 한 5월 2일부터 8월
‘난민대책 국민행동’을 통해 들여다본 난민 반대 정서지난달 발생한 ‘제주 30대 여성 실종 사건’의 범인이 예멘 난민이란 소문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그들의 범행으로 의심할만한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실종 여성으로 추정되는 시체의 정확한 사인조차 밝혀지지 않았다. 제주도에 머무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난민이 범죄자로 의심받는 상황이다. 이와 같은 ‘루머의 확산’은 난민에 대해 곱지 않은 국민 정서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여론은 난민에 우호적이지 않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7월
“소아암, 백혈병 어린이를 위해 조혈모세포 기증신청 받습니다. 함께 나누십시오~.” 한국조혈모세포은행협회의 홍보행사에 찾아갔다. 서울지하철7호선 가산디지털단지역, 5월 31일이었다. 역 안에선 조혈모세포 기증을 홍보하는 목소리가 들렸고, 형광색 조끼를 입은 자원봉사자들이 팸플릿을 나눠줬다.조혈모세포는 피를 만드는 어머니 세포를 말한다. 골수나 제대혈 속에 있다. 조혈포세포를 이식하면 재생 불가능성 빈혈이나 백혈병을 치료할 수 있다. 조혈모세포를 기증하려면 공여자와 수혜자 사이에 비혈연간 조직적합성 항원(HLA‧Human
폭염이 계속되면서 한강공원이 붐비기 시작했다. 서울시 한강사업본부에 따르면 올해 4월 이용객은 486만 7322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8배 늘었다. 올 여름에는 더 많은 시민이 한강을 찾을 전망이지만 진드기의 위험성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문제가 되는 진드기는 작은소피참진드기. 동물의 피를 빠는 참진드기 25종 중 하나로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SFTS)을 옮길 수 있다. SFTS는 2013년 국내에서 처음 발병했다. 감염되면 고열, 구토, 설사 증상이 나타난다.지난해 11월 한강공원에 작은소피참진드기가 서식한다는 보도가
테아라로아123: 226일만의 고백세계적인 장거리 트레일 뉴질랜드 테아라로아.6,041km의 길을 한국인 세 번째로 완주한 이가 있으니 문예진(26세/여) 씨다. 170cm의 큰 키에 태권도 공인 3단, 국내 여러 산 등반으로 단련된 그녀. 이처럼 강인한 예진 씨지만 123일간의 테아라로아 완주 과정에서 말 못할 아픔을 겪었다. 바로 성적인 위협을 받았던 것. 사건 발생 후 226일 만에 그 일을 털어놓으면서 트라우마 극복에 한 발 다가간다. 예진 씨의 고백을 통해, 여성들이 종종 맞닥뜨리게 되는 성적인 위협에 공감해볼 수 있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