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정 조사관은 미국 드라마를 보며 검시에 흥미가 생겼다. 드라마에서는 한 편마다 사건 하나를 해결한다. 현실에서는 이런 속도와 명쾌함이 별로 없다. 해답을 내놓지 못할 때가 많다. 그는 “미국 드라마 주인공은 다 천재”라며 웃었다.

그러면서 “항상 모든 게 찜찜하다”고 했다. 비슷한 사건에서 검시결과가 달리 나오면 특히 그렇다. 제대로 봤는지 늘 질문하고 의심하며 공부하는 이유다. 요즘 그는 일본 법의학자 니시오 하지메 책(죽음의 격차)을 읽는 중이다.

▲ 이미정 조사관의 책장. 과학수사에 도움이 되는 책이 대부분이다.

한국의 과학수사대는 사람으로 운영된다고 이 조사관은 말했다. 실력 있고 일 처리 빠른 인재가 이끈다는 얘기다. 막대한 예산을 지원받는 외국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그는 지난해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에서 일주일 간 강의했다. 좋은 장비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기술은 뒷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한국의 과학수사요원이 훨씬 섬세하고 치밀하며 공부를 많이 한다고 했다.

한국 과학수사대가 처음 발견하고 시도했지만 기술을 미국에 빼앗긴 적이 있다. 손가락을 뜨거운 물에 담가 팽팽하게 만들어 지문을 뜨는 ‘보일링 기법’이다. 2004년 동남아 지진 쓰나미 당시, 전 세계 경찰에게 가르쳤지만 미국이 먼저 발표하고 특허권을 가졌다.

이 조사관은 이렇게 말했다. “당시 일을 반면교사 삼아 경찰조직이 변하기 시작했다. 연구 및 논문작성을 많이 해서 세계적으로 우수성을 알려야 한다. 동일 사건에 동일한 장비를 가지고 수사하면 우리나라가 더 잘할 것이다.”

▲ 아랍에미리트 경찰에게 혈흔형태의 분석법을 설명하는 모습(강원경찰청 제공)

그는 언론에 대한 얘기도 했다. 기자들이 박식하지만 전문지식을 이해하려는 욕구가 있는지, 보도하기 전에 깊은 고뇌를 하는지 의문이라고 평가했다. 취재를 통해 알아낸 내용을 적절히 요약하지 않거나 왜곡해서 보도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원주경찰서에서는 기자가 과학수사대 사무실에 들어왔다. 제한구역이라 안 되는데도 범행에 이용된 칼을 수거했다고 들었다며 찍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증거물을 노출시킬 수 없다”며 밀어내자 기자는 “가만히 안 있겠다”고 했지만 별다른 일은 없었다고 한다.

이 조사관은 죽음에도 격차가 있다고 했다. 가난한 사람은 고독사하는 경우가 많다. 가족이 장례치를 형편이 안 되면 인수를 포기한다. 부자는 좋은 병원에서 치료받다가 가족이 바라보는 가운데 삶을 마무리한다. 과학수사에서는 똑같이 봐야 한다고 이 조사관은 생각한다.

“(죽음의 유형을 떠나) 가장 중요한 건 사망자에 대한 존중이다. 생명의 탄생을 귀하다고 생각하듯이 삶을 마감한 이들을 적절히 예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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