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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플, 사랑과 전쟁
홍세미 기자 | 승인 2018.10.28 18:43

 

“자기 치마가 너무 짧은 거 아니야?”
“내 치마 길이가 왜?”
“아니, 다른 사람들이 쳐다보잖아.”
“내 치마길이가 어떻든 쳐다보는 사람이 문제 있는 거 아니야?”

1년 정도 교제 중인 박주연(23) 씨와 명민호 씨(24세)는 최근 같은 주제로 부딪히고 있다. 싸움의 시작은 가수 ‘설현’이었다. 오랜만의 데이트에 신나서 초밥을 먹고 영화를 보기로 했다. 박 씨가 “페미니스트의 면모를 보이는 설현이 멋있어”라고 말하면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홍대몰카사건, 혜화역 시위, 성범죄로 이어졌다.
 
페미니즘에 관한 토론은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에 자주 오르내리는 ‘워마드’와 ‘메갈’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갔다. 명 씨는 “솔직히 일베나 메갈이나, 똑같은 거 아니야?”라고 했다. 언쟁은 끝이 나지 않았다. 결국 두 사람은 영화는커녕 초밥도 다 먹지 못한 채 일어나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금융기관에서 근무하는 이모 씨는 만 3년을 만난 남자친구와 올 4월 헤어졌다.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이 씨와 그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남자친구는 다툼이 잦았다. 결정적으로 헤어진 계기는 결혼과 자녀계획 문제였다. 남자친구는 행복한 결혼생활에 대한 얘기를 계속 꺼냈다.
 
그러나 결혼을 해서 아이를 갖는 일이 이 씨에게는 마냥 반가운 소리가 아니었다. 한국사회에서 여성이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가 쉽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이 씨는 지금의 직장에 힘들게 들어갔다. 어렵게 얻어낸 결과를 단순히 남자친구가 원하는 결혼과 아이 때문에 포기하는 건 곤란하다고 여겼다. 어느 날 쇼핑몰에서 데이트를 하던 중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왔다.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지만, 내 커리어와 입장을 존중해준다면 고려해볼게,”
“너는 너무 어렵게 생각해, 너무 비관적이야.”
“뭐가 비관적이야. 다 내가 겪을 일들인데, 너야 말로 너무 피상적으로 생각하는 거 아니야? 아이가 마냥 귀여운 줄 알아?”
“응.”
이날을 끝으로 둘은 헤어졌다.

수많은 커플이 싸우는 중이다. 페미니즘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나의 언니 혹은 누나, 나의 동생, 나의 어머니, 나의 여자친구, 나의 친구들이 불편함을 느낀다. 그리고 불편함에 대해 호소한다. 페미니즘은 워마드에서 과격한 목소리를 내는 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미 많은 여성의 일부가 됐다.
여성들은 가장 가까운 사람 중 한 명인 남자친구와 이런 불편함을 공유하려고 한다. 그러나 많은 남자친구들은 페미니즘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평생 차별과 혐오가 일상이었던 여성과는 다르게, 남성이 이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수많은 커플이 싸운다.

▲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여성학 서적의 출판이 증가하는 중이다. (출처=국민일보)

이혜원 씨와 백인태 씨는 2년을 교제하며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었다. 올해 4월부터는 달라졌다. 이 씨가 페미니즘을 접하면서부터였다. 둘은 여성인권에 대해 견해가 다르다. 특히 워마드에 대해 이야기 할 때마다 의견대립이 심했다.

백 씨는 ‘공격적인 페미니즘과 그렇지 않은 페미니즘을 구분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또 평화로운 방법이 메시지를 보다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고 했다. 이 씨는 달랐다. 이미 평화적인 방법은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그래서 워마드와 메갈리아가 등장한 배경을 익히 알았다.

백 씨가 그렇게 이야기 할 때마다 이 씨는 인권운동을 어떻게 평화롭게 좋게 하느냐고 물었다. 싸움이 언제나 같은 패턴으로 반복되면서 둘은 많이 지쳤다. 페미니즘 서적을 같이 읽자고 했지만 문제는 쉽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화여대 백경흔 교수(여성학과)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남성으로서 누리는 특권이 없음에도 여성이 여성이기 때문에 차별받는다는 주장을 남성이 납득하지 못하면서 커플의 갈등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백 교수는 여성에게는 사회경제적인 변화로 인한 차별과 여성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차별이 가중된다고 했다. 덧붙여 성차별이 모두 해결된 것 같은 착시현상은 착시현상일 뿐이며, 청년세대로서 함께 겪는 세대억압과 성차별의 문제를 분리해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취업을 앞둔 대학교 4학년 지모 씨 또한 남자친구와 페미니즘을 두고 여러 번 다퉜다. 하나은행 여성차별채용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언쟁이 시작됐다. 이후로는 비슷한 주제를 피하게 됐다. 지 씨는 두려웠다고 한다.
 
“남자친구를 아직 좋아하는데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제가 지쳐서 헤어질까봐 무서웠어요. 주변에 이미 이 문제로 헤어진 친구가 세 명이었거든요.”
 
어느 날, 남자친구가 변하기 시작했다. 조남주 작가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으면서였다고 한다. 남자친구가 생각하지 못했던 어려움이 여성에게는 일상임을 깨달았다. 이후로 지 씨와 남자친구는 완전히는 아니지만 싸움의 끝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교육을 받고 자랐다. 많은 통계들은 그렇지 않다는 수치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은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페미니즘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커플들은 오늘도 싸운다.

남자친구의 변화에 지 씨는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앞으로도 분명 둘 사이에 의견 차이가 있을 거라고 예상하지만, 이야기하기를 멈추지는 않겠다고 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지금 남자친구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을 못 만날 것 같아요. 그렇게 사랑했던 사람이랑도 결국 이 문제로 싸우다 헤어졌다는 사실에.”

『세상에는 이상한 남자가 너무 많고 자신도 많이 겪었다고, 이상한 그들이 문제지, 학생은 잘못한 게 없다는 여자의 말을 듣는데 김지영 씨는 갑자기 눈물이 났다. 꺽꺽 울음을 삼키느라 아무 대답도 못하는 김지영씨에게 전화기 너머의 여자가 덧붙였다. “근데, 세상에는 좋은 남자가 더 많아요.”

소설 ‘82년생 김지영’에 나오는 내용이다. 여성은 끝까지 목소리를 내야한다. 남성이 그 목소리에 조금 더 귀 기울여준다면, 전쟁은 끝이 나고 사랑만 남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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