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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과 인간 (4) 추모의 빛과 그늘 ② 씨랜드
남수현 기자 | 승인 2019.03.03 20:02
 
육각형 탑의 윗부분이 보였다. 이제 다 왔다 싶었는데 철제문이 가로 막았다. 주변을 둘러봤지만 다른 길은 없었다.
 
벨을 누르자 직원이 나왔다. 추모비를 찾아왔다고 했더니 “어디서 나오셨냐”고 물었다. 일반 추모객일리가 없다는 생각에서 나온 질문으로 느껴졌다. 추모객의 방문이 일상적이지 않음을 짐작케 했다.
 
2월 20일 찾아간 씨랜드 추모비는 이처럼 관리인의 허가를 받아야만 접근이 가능했다. 대부분의 추모비는 일반에게 개방된 곳에 세워지지만 씨랜드 추모비는 서울 송파구 마천동 송파안전체험교육관 뒤편의 실외 교육장에 자리 잡았다.
 
직원은 “추모비 오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8m 높이의 추모비 주변에는 발길이 보이지 않았다. 탑의 여기저기에 거미줄이 늘어져 있었다. 20년 세월이 흐르면서 씨랜드가 많은 이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진 현실을 보여주는 듯했다. 
 
▲ 씨랜드 추모비가 있는 송파안전체험교육관
씨랜드 화재사고는 1999년 6월 30일 새벽 일어났다. 경기 화성군 서신면 백미리의 씨랜드 청소년수련원에 불이 나서 유치원생 19명과 인솔교사 4명 등 23명이 숨졌다.
 
수련원은 컨테이너를 쌓아 만든 가건물이었다. 벽면은 인화성 물질. 화재경보기와 소화기는 전부 고장났었다. 시설 인허가 과정에서 군청의 비리와 관리부실이 드러났다.
 
지금까지 씨랜드는 누가, 어떻게 추모했을까. 두 딸을 잃은 고석 씨(55) 등 유족은 보상금을 모아 2000년 7월, 한국어린이안전재단을 만들었다.
 
유가족의 기부금에 서울시의 지원을 더해 지금의 송파안전체험교육관인 ‘어린이 안전공원’이 2001년 6월에 생겼다. 어린이 희생자 19명 중 18명의 가족이 송파구 주민이었음을 고려해 추모비를 사고현장이 아니라 송파구에 세웠다. 
 
지금까지 열린 19차례의 추모식 중 1주기와 18주기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어린이안전재단의 주관으로 송파구 추모비 앞에서 열렸다. 고석 대표는 “허가내주지 말았어야 할 시설을 허가 내 준 화성군과 유가족 간의 감정이 처음에는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 씨랜드 화재사고 추모비
2017년에야 추모식이 사고현장 인근에서, 화성시의 공식주최로 열린 이유는 당시 채인석 화성시장이 유족에게 손을 내민 덕분이었다. 18주기 추모식을 화성시에서 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유족이 받아들였다. 채 시장은 취임 이후 꾸준히 추모식을 찾았다.
 
시장이 2018년에 바뀌며 유족과 화성시의 소통이 다시 끊어졌다. 작년 추모식을 유족끼리 서울에서 열었던 이유다. 올해도 화성시가 연락하지 않으면 송파구에서 치를 예정이다. 화성시에 먼저 연락할 생각은 없느냐는 질문에 고 대표는 “안 한다”고 잘라 말했다.
 
유족의 불신에는 이유가 있었다. 채인석 시장은 18주기 추모식을 마치고 현장을 둘러보면서 추모사업 계획을 유족에게 설명했다. 사유지인 씨랜드 부지를 시비로 매입해 330㎡의 추모공간과 인근 해송지대에 청소년수련원을 조성한다고 했다.
 
취재진이 확인했더니 추모사업은 중단이 아니라 지연된 상태였다. 화성시 관계자는 “토지보상 절차와 설계용역 문제로 인해 빠르면 올해 7월, 늦으면 9월에 착공해 완공 시점은 내년 9월쯤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추모공간 위치에 대해서는 같은 부서에서도 말이 엇갈렸다. 처음 통화한 관계자는 “수련원이 있던 땅은 사유지라서 시가 전부 사들이지 못해 인근 솔밭에 지을 예정”이라고 했다. 부지에 대해 자세히 알려고 통화했을 때, 다른 관계자는 “수련원 부지를 매입해 추모공간을 짓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 추모비는 고건 서울시장 시절에 건립됐다. 박경란 시인이 추모시(아이야 너는 어디에)를 썼다.
화성시와의 통화내용을 전하자 고 대표는 “화성시가 부지를 흡수하는 부분을 유족은 모르는 상황이다. 우리가 먼저 요구하지 않은 일을 화성시에서 추진해놓고 시장이 바뀌면서 관심 밖으로 멀어지는 것 같아 씁씁하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씨랜드 사고에는 또 다른, 잊힌 희생자가 있다. 당시 씨랜드에는 화성 마도초등학교 학생 42명도 머물렀다. 이 학교의 김영재 교사가 학생을 모두 구하고 자신은 불길 속에서 숨졌다.
 
그의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추모행사와 장학사업이 한동안 계속됐다. KBS 보도에 따르면 마도초는 2008년까지 영재장학회를 운영했다.
 
취재진이 마도초에 확인했더니 모든 행사와 사업이 중단됐다. 이유와 시점을 아는 이도 없었다. 근무한지 5년 이상이라는 마도초 관계자는 “여기서 일하는 동안 한 번도 그런 행사가 열린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고 대표는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현장에 고급 아파트가 들어서고 성수대교 붕괴사고 추모비는 접근하기 힘든 곳에 생긴 점을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라도 부끄러운 참사를 기억하고 다시는 비슷한 일이 발생하지 않게 최소한의 추모비, 혹은 과거에 이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리는 최소한의 팻말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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