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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모태 미스핏(misfit)이 멜버른의 앨리스가 되기까지
김예슬 기자 | 승인 2019.01.20 22:02

인터뷰를 요청한 지 41시간이 지나서였다. 2018년 10월 31일 오후 4시 21분 답장이 왔다. “호주에서는 네이버 메일을 거의 안 써서 확인이 늦었어요. 카카오톡으로 이야기하면 더 좋을 것 같아요! :-)”

에세이집 ‘이민을 꿈꾸는 너에게’의 박가영 작가(35)와의 메신저 대화는 이렇게 시작됐다. 이 책은 2018년 8월 10일 출간 이후로 3주 만에 2쇄를 찍었다.

스물여섯 살. 취업전쟁이 두려웠고, 도피처가 필요했다. 그래서 워킹홀리데이로 호주에 갔다. 직접 모은 돈으로 어학연수를 하면서 요리직업학교에서 공부했다. 여러 직장을 거쳐 멜버른에 정착해서 호텔의 조식뷔페 셰프로 일하게 됐다.

하루는 베트남 쌀국수 식당이 매물이 나왔다고 해서 구경을 갔다. 알 수 없는 서류에 서명하고 보니 ‘정식 계약서’였다. 그렇게 4년 전, 한식 비스트로 ‘수다(SUDA)’를 열었다. 카카오의 ‘브런치(Brunch)’에 글을 쓰게 된 건, 8년간의 이민과정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 박가영 작가의 모습 (사진제공=박가영)

“책에 멜버른 풍경사진이 나오잖아요. 그걸 찍은 수빈이가 원래 저희 가게 아르바이트 직원이었거든요. 자주 사진을 찍어서 브런치에 올리더라고요. 그러다 알게 됐죠.”

전단지 알바, 백화점 주차 도우미, 웨딩홀 서빙. 박 작가는 한국에서 17살 때부터 ‘알바몬’으로 살았다. 그러다 호주에 와서 요리와 사랑에 빠졌다. 멜버른에 자리를 잡고 영주권을 따기까지 정신없이 살아오면서, 우울과 무기력이 찾아왔다고 했다.

외로울 때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해서 글을 올렸다. “평소에 생각했던 것들을 우울할 때, 주로 새벽에 하나씩 써서 올렸어요.” 브런치 댓글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메시지를 통해 독자와 소통했다. ‘브런치북 프로젝트’에서 은상도 받았다.

그저 글을 쓰는 게 좋았다. 창작물보다는 힘을 뺀 에세이가 편했다. 대학도 겨우 졸업한 터라 공모전은 남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 출간 제의를 받아 작가로 거듭났다. 구독자는 4954명.

브런치에 연재한 매거진이 5권이다. 그는 책 곳곳에 사진을 넣었다. 이제 사진작가가 된 김수빈 씨를 통해 본 멜버른이 그저 좋아서 그랬단다.

브런치 필명도, 호주에서 쓰는 이름도 ‘앨리스’다. 이유를 물었다. “그 질문 많이 받았는데, 그냥 필리핀에서 어학연수할 때 선생님이 지어줬어요. 별거 없죠?” 10년째 앨리스로 살면서 그는 이제 ‘박가영’과 ‘앨리스’가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그는 브런치에서 독자와 소통할 때 반말을 쓴다. “제가 이민 전문가는 아니고, 오지랖 넓은 누나나 언니 정도니까…. 편하게 읽으라고 편하게 쓴 거죠.” 마음정리를 위해 글쓰기를 시작했지만, 이제는 조언이 필요한 누군가를 위해 글을 쓴다. 처음부터 출간을 염두에 뒀다면 문어체로 썼을 거란다.

“학창시절 내내 정말 힘들었어요. 모든 걸 경쟁을 통해 얻어야 한다는 게 슬펐죠.” 책의 도입에서부터, 그는 자신을 ‘모태 미스핏(misfit)’으로 칭했다. 한국의 교육 시스템, 노동, 사고방식에서 벗어난 지금은 행복에 가까운 삶을 산다. 그럼에도 여전히 겉돈다고 느낀다.
 
“호주인 사이에서도 그래요. 저는 이민 1세대고, 아직 이방인이니까! 그런데 한국에 가도 검은 머리 외국인 취급을 받기 일쑤에요.” 태어나서 어느 곳에 딱 들어맞는다고 생각했던 적이 없다. 그래서 이방인이자, 관찰자로서의 삶을 즐기기로 했다.

2017년 12월 21일, 브런치에 두 번째 매거진 연재를 시작했다. ‘네가 궁금한 그들의 이민 이야기’는 멜버른에 사는 한국인 18명의 이야기를 담는다.

네 번째로 소개했던 박성일 PD는 호주 공영방송국 SBS(Special Broadcasting Service)에서 ‘SBS 한국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박 작가가 멜버른에서 만난 소중한 사람 중 하나다.

“멋있고 간지(?) 나는 분이에요. 권위세우는 그 어떤 어른보다.” 그는 작년 8월 19일 SBS 라디오 스튜디오에 초청돼 박 PD를 처음 만났다. 훨씬 어린 자신의 말을 귀담아 들어줬다. 한국과 호주의 한인 사회에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40대 남성상이었다. 배울 점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에, 오히려 한 수 배우게 됐다.

최근 곤혹스러운 일이 생겼다. 책을 소개하는 기사가 네이버 메인에 올라가면서다. “책 내용에 대한 평가보다, 제 외모에 대한 평가가 더 많았어요.” 비하와 혐오발언도 섞여 있었다. 그저 한 일로 평가받고, 노력해서 오른 위치로 칭찬받고 싶었을 뿐인데.

“여기는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온 사람이 많아요. 그래서 상대방을 차별하거나 무례를 저지르는 것에 상당히 조심스러워요.” 상대가 느끼는 불편에 민감성을 계속 유지하기란 분명 힘들고 귀찮은 일이다. 그러나 반드시 필요한 태도라고 했다.

박 작가는 2018년 10월, 오랜만에 고국 땅을 밟았다. 서울 마포구 찌라살롱에서 예정된 북토크를 위해서였다. “떨어져 있으면 애틋한데, 또 오래 있다 보면 싸우게 되는 가족 같다고 할까요?” 이젠 멜버른에서 구할 수 없는 한국음식이 없다. 오히려 한식을 더 자주 먹게 됐단다. 텔레비전도 실시간으로 시청하다보니, 모르는 방송 프로그램이 없을 정도라고.

올해로 셰프 생활 10년차에 접어들었다. 사업을 한지는 5년이다. 그는 주변 도움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거라고 했다. 특히 수다(SUDA)의 성공에는 사업 파트너인 솔트(SALT) 팀의 공이 컸다고 했다.

▲네모(NEMO)에서 회의 중인 박가영 작가와 팀원들 (사진제공=박가영)

그는 새로운 레스토랑을 준비하는 중이다. 이제는 셰프 자리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고 싶다고 했다. “제 자리는 같이 일하고 있는 동생들이 맡겠죠. 몇 년 안에 이루고 싶은 건, 멜버른 구석에 작은 책방 하나를 차리는 거예요!”

한쪽에는 한국책을 진열하고 싶다고 했다. 자기계발서보다는 좋아하는 한국소설 위주로 꾸미고 싶단다. 장강명 황정은 김영하 정세랑 박서련, 박민정…. 그 중에서도 장강명 작가를 정말 좋아한다고 말했다.

브런치에 연재한 매거진 대부분은 멜버른과, 이민생활 이야기다. 도전하는 마음으로 에세이가 아닌 단편소설을 써 보고 싶어 한다. “언젠가 시간이 많아지면요. 꼭 출판하려는 목적이 있는 건 아니고요!” 멜버른에서 본 특이한 사람들의 삶을 기록하기 위해서다.

한국의 박가영은 멜버른의 앨리스로 새롭게 태어났다. 그동안의 삶을 표현해 달라니, “인생 재밌게 흘러가네!”란다. 이제는 요리에서 벗어나, 인생에서 또 다른 의미를 찾아보고 싶기도 하다.
 
그는 앞으로도 배우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그냥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 중이다. 요즘 들어 체력의 한계를 느끼게 됐지만, 안주하고 싶지는 않다. 한계를 계속 깨려고 노력할 거라고 밝혔다.

박 작가에게 호주는 기회의 땅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멜버른에 정착했다. “타인의 기준에 맞추는 삶, 계속되는 경쟁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으니까요. 존재로서의 가치를 인정받는다는 느낌?”

그에게 이민은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곳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인터뷰가 끝난 지 일주일. 멜버른 도심에서 남성이 흉기를 들고 난동을 부렸다. 4명의 사상자가 생겼다. 박가영 작가에게 연락했다. “저는 괜찮아요! 그런데 세상이 험하게 돌아가네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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