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과 상처는 여전하다

세월호를 향한 지나친 관심과 도를 넘어선 비난, 그리고 배가 인양되는 과정은 유가족의 심리상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유가족에게 “아이를 팔아 잇속을 챙기려고 한다”는 비난, 오뎅 먹는 사진을 올리며 “친구를 먹었다”고 했던 단원고 교복차림 학생의 발언은 유족의 가슴을 후볐다.

인양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방송에서 배의 인양을 다루는 뉴스는 애써 고통을 견디는 유가족의 마음을 참사 초기로 돌려놓았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마음과 몸의 아픔을 겪는 듯 했다.

“아이가 사라진 게 믿기지 않아요. 아직도 학교에서 돌아올 것 같은데…. 당연히 안 오는 거 아는데 그냥 기다리게 돼요.” 그들은 소화 장애와 두통을 호소했다. 남은 사람들은 여전히 고통 속에 살아간다.

고려대 안산병원의 윤호경 교수(정신건강의학과)는 세월호를 대하는 사람들이 어떤 태도를 지녔으면 좋겠는지 덧붙였다.

“전달이 좀 됐으면 좋겠어요. 사람이 처한 상황마다 다른 거고…. 자기가 겪어보지 않은 거에 대해서 함부로 얘기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또 느꼈어요. 자기가 겪은 게 아닌 데 왜 그렇게 하느냐 그만해도 되지 않냐 이렇게 하는 건 정말…. 차라리 말을 아끼는 게 낫지 그런 식으로 하는 건 2차, 3차로 더 상처를 주는 거기 때문에 그런 것은 정말 조심했으면 좋겠습니다.”

▲ 4‧16기억교실에 있는 추모문구.

안산온마음센터장인 고려대 고영훈 교수(정신건강의학과)도 공감의 마음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세월호 초기 때부터 국가나 정부에 대한 불신이 있어서 그것들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4년 정도 시간이 흐르면서 유가족에게 변화가 생겼다고 밝혔다.

“센터를 긍정적으로 이용한다고 해야 할까, 센터에 대한 생각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고 해야 할까. 그런 쪽이 사실 진전이 있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의 말에 따르면 유가족이 애초에 ‘온마음센터’를 믿지 않았다고 한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공공기관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일부는 과거 정부의 세월호 관련 구조부터 현재까지, 정부가 방해를 하거나 도움을 주지 않으려는 의도를 갖고 있을 거라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의 치료는 상담을 하는 입장에서 크나큰 시련이었다.
 
그러나 그는 유가족이 치료를 포기하지 않도록 계속 접촉하며 마음을 열게 했다고 덧붙였다. 물론 정부가 바뀌고, 조금이나마 해소 과정에 접어든 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다고 말했지만, 유가족에 대한 그의 태도는 확고했다. 그는 방어적인 태도를 지니고 치료를 거부하고 밀어낸다고 하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이어 유가족들을 괴롭게 하는 건 ‘진전이 없는 세월호 관련 사업들’이 아닐까라는 의견을 보이기도 했다. 유가족이 추모 공원을 세운다든지 여러 가지 사업을 진행하려고 하는데, 진전이 없다고 말했다.

고 교수는 지역주민과의 이해관계라던가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갈등이 대표적인 원인이라고 했다. 이런 점이 유가족을 가장 힘들게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여러 관점에서 봤을 때 필요한 것이 많은데, 지금은 공감을 제일 필요로 하지 않나 싶어요. 시민도 그렇고 여론이 유가족에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라서. 사실은 그런 부분이 상처를 많이 줄 수 있죠.”
 
마음토닥정신의학과의원 김은지 원장은 오랜 시간 세월호 유가족을 관찰했다. 그 과정을 지나면서 내린 결론은 그들에게 너무 의학적인 잣대를 들이대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유가족에게 필요한 점, 그들이 변화하는 방향은 의학이나 논리로 설명할 수 있는 정형화된 길은 아니라고 했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하나의 방향으로) 가는 건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을 해요. 거기에는 인간으로서 감당할 수 없는 범위, 그런 것들에 관련된 겸손함이 우리에게 필요한 거죠. 예측 할 수 없기 때문에 무한한 가능성이 있고, 그런 것들을 미리 정하지 않고 이들이 갈 수 있는 만큼 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해요.”

아이들은 계속 자란다

시간이 지나면서 유가족의 상처는 아물어 간다. 최호선 대전보건대 장례지도과 교수는 요즘 유가족이 명절이 되면 작은 선물을 보내거나 자신의 안부를 묻는다고 했다.
 
“이 사람들이 상대방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그 다음에 챙기고, 뭘 사러가고 해야 되잖아요. ‘저 사람은 뭐가 필요할 거 같아’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마음의 틈이 조금씩 생겼다는 의미죠.”

최 교수는 유가족의 재사회화 과정을 돕는다. 사별한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상태로 삶을 재구성하는데, 이를 재사회화라고 한다. 그림 그리기는 재사회화를 위한 방법의 하나. 유가족은 아이와 자기 자신을 그린다고 한다. 이를 통해 살아가는 힘을 다시 얻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두 어머니를 만난 일을 떠올렸다. 그들은 딸을 그렸다. 한 아이의 어머니가 물었다.
“저는 최고 예쁜 색으로 (우리 딸을) 칠할 건데, 그래도 되나요?”
“전 노란색도 너무 싫어요. 너무 많이 봐서….”
“그럼요. 마음대로 해도 돼요.”

그러자 그들은 알록달록한 색으로 딸의 모습을 채웠다.
“우리 애는 분홍색을 좋아했어요.”
“우리 애는 민트색을 좋아했어요.”

두 어머니는 두 손에 그림을 든 채 웃었다. 그림 속 아이들도 환하게 웃었다.

최 교수는 이들이 밖에서는 웃지 못한다고 했다. 유가족이 (혹시 미소라도 지으면) 어떻게 저렇게 웃느냐는 식으로 주변에서 얘기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웃을 수 있어야지. 다음을 살 수 있어요.”

마지막으로 최 교수는 유가족을 있는 그대로 봐주기를 당부했다. “슬픔도 회복되는 단계가 있어요. 다양하게 표현되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그대로 자연스럽게 봐주세요. 상대방에게 어떤 기대 같은 거 하지 말고.”

그는 유가족이 항상 존경스럽다고 했다. 계속 요구하고 투쟁하여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그는 그들을 보면, 힘든 일이 있어도 계속 일(상담하는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들의 의지와 노력이 그를 움직이는 원동력인 셈이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그는 제주도로 간다고 했다. 또 다른 세월호 피해자를 만나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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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유가족은 광화문 광장 앞을 지키고 있다.

잊지 말자 하면서도 잊어버리는, 또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그날의 상흔을 갖고 남은 이들은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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