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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4주기 기획 ③ 남겨진 사람들, 그리고 우리 ㊤
이수연‧이정민 기자 | 승인 2018.09.30 19:14

생을 펼치지 못한 학생들의 시신이 병원에 안치됐다. 학생의 어머니는 빈소에 들어서면서 쓰러졌다.

세월호 참사 이후, 고려대 안산병원의 모습이다. 봄은 언제나 찾아왔지만, 그날 이후의 시간은 전과 같지 않았다. 그렇게 흘러갔다. 4년이….

발자취를 따라가다

경기 안산 단원구에 있는 ‘4‧16기억교실’을 찾았다. 7월 16일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2년이 채 되지 않은 기자에게 교실은 친숙했다.

줄지어 서있는 책상과 의자, 교탁과 칠판. 그러나 기억교실에는 주인을 잃은 책상, 사물함만이 남았다. 더 남은 것이 있다면 유가족과 생존자를 비롯한 방문객들이 남긴 사진과 노란 리본 물결들 그리고 기억의 흔적들.

‘어제 꿈에는 00이가 와줬어. 잊지 않고 와줘서 고마워. 아직도 00이가 돌아올 것 같은데 아무것도 못한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버틸 수 있게 우리 00이가 엄마 도와줘’

책상 위 방명록에 적혀있던 메시지다. 시간이 지났지만, 이들은 가슴 속에 자식을 묻고 살아간다.

▲ ‘4‧16기억교실’ 2학년 4반의 모습. 방문객이 남긴 추모품이 가득하다.

이렇게 살아가는 이들을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다. 유가족과 생존자를 담당하는 심리상담사들이다. 그 중 한명을 7월 20일 대구 수성구 범어동의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마음으로라도 미안하다고 말해줄 수 있어서 좋았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상장례학, 그리고 심리학을 공부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 진도 팽목항으로 떠났다. 4년 전, 그곳에서 57명의 숨진 희생자들을 닦이고 담요로 감싸주었다.
 
최호선 대전보건대 장례지도과 교수. 그는 2014년 4월 말부터 현재까지 한 달에 한 번, 세월호 유가족들을 보는 중이다.
 
“만남에는 시기가 있어요. 3주기, 4주기와 같은 기념일이 되면 많이 연락이 와요. 모두 별개의 아픔이에요. (유가족은) 아픔의 정도나 슬픔의 정도가 다 다르고 표현하는 방식도 달라요.”

누군가 손길을 내밀었다

그는 팽목항에 처음 갔을 때를 떠올렸다. 일상에서 사람들이 의지하는 종교나 상담센터 같은 게 전부 소용이 없는 상태. 전문가마저 할 일이 없었다고 했다. 무거운 분위기만이 감돌뿐이었다.
 
현실을 부정한 채 힘들어했던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예상치 못한 이별이었기 때문이다. 자기가 잘못해서 아이가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 자책하는 부모도 있었다고 한다.

몇날 며칠 아이의 이름만 울부짖을 뿐이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위로가 된 것은 한 가지. 사람들의 온정, 등 한번 두드려주는 일이었다.
  
“유가족 엄마들이 가끔 이렇게 말해요. 정신없이 계속 울고 지낼 때, 억지로라도 죽 떠먹여준, 이름도 모르고, 누군지도 모르는 자원봉사자들이 자신들을 살게 했다고.”

한번은 최 교수에게 새벽 5시쯤 연락이 왔다. 세상을 떠난 학생의 어머니였다. “우리 애 많이 컸겠지요? 지금쯤 교복 바꿀 때도 됐을 텐데...”라며 아이의 모습을 생각했다. 여전히 아이는 어머니의 마음속에서 자랐던 모양이다.
 
7월 20일, 고려대 안산병원에서 윤호경 교수(정신건강의학과)를 만났다. 그는 세월호에 대해 유가족의 시선에서 고민한 흔적이 엿보이는 사람이었다.

유가족은 참사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고, 믿고 싶지 않아 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점차 시간이 지나며 모든 상황에 대해 인지하고, 급성 스트레스 반응을 보이는 환자가 많아졌다.

쓰러지는 유가족도 많았다. 시간이 지나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가도, 증상이 다시 나빠지는 사례도 나타났다. 윤 교수는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기념일 반응’을 예로 들며 말을 이었다.

“좋은 기념일이라는 것도 있지만,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은 그 무렵이 되면 본능적으로 마음과 몸이 아파진다. 세월호는 큰 사회적 이슈였기 때문에 방송에서 보여 지고 자극이 되는 기사들이 많고 하니까 생존자 분들이 더 아파하신다.”

그는 트라우마가 이렇게 오래가는 줄을 몰랐다고 이야기했다. 대개 트라우마를 지닌 사람들의 3분의 2정도는 다행히 안정을 찾고, 특정 수준에서 심해지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세월호 유가족은 달랐다.

“근데 이 경우는 조금 다른 것 같아요. 그래서 아무래도 자극이 되는 요소가 너무 많아가지고….”

윤 교수를 만나기 하루 전, 마음토닥정신의학과의원 김은지 원장을 만나기 위해 경기 고양시에 다시 갔다. 김 원장은 2014년 7월 1일부터 현재까지 세월호 생존자와 유가족을 만났다.

그는 자신이 치료한다기보다 유가족이 스스로 치유해가는 과정을 지켜보고 필요한 게 있으면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생존자들이 살아간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스트레스 장애가 있든, 약을 먹든, 심리치료를 받든 간에 어쨌거나 친구를 만나면서 살아가고 있잖아요. 저는 그게 늘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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