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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과 인간 <2> 기억하고 기록하겠습니다
특별취재팀 | 승인 2019.02.24 22:50
 
세상이 다 잊어도...엄마는 잊지 않으마. 성수대교 위령비를 떠나려는데 플래카드가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프런티어저널리즘스쿨(FJS)의 13기와 프렙스쿨 주니어반은 엄마의 마음처럼 아픔과 교훈을 잊지 않으려고 <재난과 인간> 기획에 참여한다. 잘못을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성수대교를 찾아간 날은 1월 23일, 강바람이 매서운 겨울이었다. 지하철 분당선 서울숲역의 3번 출구에서 한강공원으로 향했다. 안내판이 보이지 않았다. 서울숲 여기저기를 헤매자 마을 주민으로 보이는 여성이 “이 주변을 잘 아니까 길을 알려주겠다”고 했지만 허사였다.
 
서울숲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강공원으로 내려왔다. 프렙스쿨의 주니어반을 지도하는 송상근 선생님이 작년 기억을 더듬어 터널을 찾았다. 매연을 마시며 500m 정도를 따라갔더니 “여기 있다”는 소리가 들렸다. 모인지 1시간 만이었다.
 
▲ 성수대교 위령비의 전경
성수대교는 1979년 10월 15일 준공됐고, 1994년 10월 21일 붕괴됐다. 사고로 32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쳤다. 위령비 건립기는 유가족과 서울시장의 공동명의로 나온다.
 
“이 사고의 원인이었던 우리 사회의 부실관행을 반성하면서 희생된 영령을 추모하고 안전관리에 대한 의식을 높여나갈 산 교육장으로 활용코자 사고 3주기를 맞아 위령비와 추모 조형물을 세운다.”
 
위령비는 생성과 소멸, 만남과 헤어짐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가로 3.7m, 세로 2m, 높이 4.5m 크기. 서울대 전준 교수(미술대)가 조각을 했고, 무학여고 교사였던 변세화 시인이 비문을 썼다.
 
“여기 통한의 다리 곁-이 증언의 강 언덕에 / 오늘 부끄러이 조촐한 돌 하나 세워 비오니 / 님들의 크신 희생 오랜 날 깨우침 되오리니 / 구천의 영령들이시여. 부디 고이 잠드소서.”
 
▲ 희생자를 추모하는 비문
위령비는 나무에 둘러싸여 잘 보이지 않았다. 주변으로 자동차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성수대교 북단과 강변북로를 잇는 도로가 2005년 개통되면서 외딴섬처럼 갇혔다고 한다. 추모의 공간이 이렇게 외진 곳에 있으니, 재난이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유가족은 다르다. 세상이 다 잊어도...엄마는 잊지 않으마. 엄마들은 성수대교에서 딸을 잃었지만,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시간이 지나도 잊지 않겠다는 마음은 상처 입은 이들의 소망인 듯하다.
 
주니어반 학생들은 1월 19일 ‘기억과 약속의 길’이라는 세월호 순례행사에 참가했다. 단원고의 기억교실과 추모 조형물, 4.16기억전시관, 생명안전공원 부지. 학생들이 생전에 걷던 길을 걸으며 그들의 꿈과 희망을 기억하자는 취지였다.
 
▲ 세월호 순례행사 참가자들이 ‘소중한 생명의 길’을 걷는 모습
기억교실은 학생들이 쓰던 교실을 재현했다. 한고운 학생의 책상에 필름카메라가 보였다. 어머니 윤명순 씨는 “우리 딸이 영상 제작에 관심이 많았어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스스로 공부도 했었는데….” 딸을 대신해 어머니는 사진촬영과 영상제작을 배우는 중이다.
 
추모 조형물 ‘노란 고래의 꿈’은 단원고가 한눈에 보이는 언덕 위에 있다. ‘소중한 생명의 길’(소생길)은 4.16기억전시관으로 이어진다. 피해학생 대부분이 살던 경기 안산시 고잔동의 추억을 담은 곳이다.
 
부모들은 함께 걷던 거리, 같이 손잡고 가던 슈퍼마켓을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어느 유가족은 변해가는 고잔동의 모습에 안타까워하며 이렇게 말했다. “다음 행사 때는 꼭 한두 분씩 더 손잡고 오셔서 아이들이 뛰어다니던 소생길에 노란 우산이 가득했으면 합니다.”
 
유가족의 마음이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고, 누군가의 마음이 모두의 마음을 움직이면 좋겠다. 주니어반 학생들이 위령비와 플래카드 앞에서 했던 소망이자 다짐이다.
 
 
▣ 남동연
고등학교 3학년 수업시간에 세월호 참사를 접했습니다. 또래 친구들에게 일어난 일이라고 믿기지 않았습니다. 뉴스에 나오는 유가족과 단원고 학생의 모습을 보니 가슴이 아파 어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세월호 리본을 지갑에 달고 다니며 잊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정도였습니다. 잊혀서는 안 되는 사건·사고를 재조명할 기회가 5년이 지나 생겼습니다. 참사를 잊지 않고, 참사가 잊히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백승연
성수대교, 씨랜드, 세월호를 겪으며 여기저기에 생채기가 남았습니다. 생채기의 크기와 아픔의 정도는 저마다 달랐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정도의 아픔으로 남았다는 사실을 압니다. 누군가의 상처를 그냥 넘기고 싶지 않습니다. 25년 전, 20년 전, 5년 전의 아픔에 멈춰서 신음하는 이들에게 희망이 되기를,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상처와 아픔을 다뤄야 하는 만큼, 어느 때보다 신중하게 기록하겠습니다.
 
▣ 소설희
성수대교 위령비를 방문하고 세월호 유가족을 만났습니다. 취재를 하며 느낀 점은 세월이 흘러도 아픔과 상처는 여전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분들은 입을 모아서 한 가지를 말했습니다. 안전한 대한민국. 이를 위해 체계적인 시스템과 사회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며, 안전한 대한민국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더 이상 같은 아픔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재난을 기억하고, 또 기록하겠습니다.
 
▣ 오수민
성수대교 붕괴사고는 1994년, 제가 태어나기 전에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위령비 앞에 서니 그날의 참담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딘가를 바삐 향하는 퇴근길 자동차 사이로 위령비가, 그리고 엄마들의 마음을 담은 플래카드가 보였습니다. 희생자와 유가족의 시간이 아직도 그날에 멈춘 듯 했습니다. <재난과 인간> 기획이 희생자를 기리고, 모든 분이 공감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 이주미
“설 연휴 지나고 안산으로 찾아뵐게요.” 세월호 유족을 위해 무료운행 자원봉사를 했던 택시 기사님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흔쾌히 수락하셨고 다른 기사님도 소개하겠다고 말하셨습니다. 그러나 인터뷰는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설명이 부족해서일까요. 유가족이나 생존자에 비해서는 인터뷰가 쉽다는 안일한 마음가짐 때문일까요. 정도가 다를 뿐, 모두가 아픔을 공유한다는 걸 잠시 잊었습니다. 이 일을 교훈 삼아 다시 준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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