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에라 파타고니아에서 사흘째이다. 아침부터 서둘렀다. 조반 후 승합차를 타고 9번 도로(Ruta 9)를 따라 토레스 델 파이네 공원 밖으로 나갔다.아르헨티나 국경을 향해서 북동쪽으로 21㎞를 달렸다. 세로 기도 마을(Villa Cerro Guido)에서 내렸다. 건물 여러 채가 황량한 초원에 덩그러니 모여있다. 마을이 텅 비었다. 사람 흔적도 찾을 수 없다. 코로나가 퍼지던 시기여서인가.하얀 페인트칠을 한 건물에 ‘SUM Esuela Cerro Guido’라고 쓰여있다. 스페인어로 ‘세로 기도 학교의 다목적 시설’이란 뜻이다. 이
파타고니아를 생각하면 무엇보다 파란 하늘과 파란 호수와 파란 빙하가 떠오른다. 남미를 대표하는 절경이라는데 그게 전부일까.천고마비의 계절이 오면 한반도 하늘도 이곳만큼 아름다울 때가 있다. 비가 막 그친 초여름 시애틀의 화창한 하늘보다 더 청명하다고도 할 수 없다. 그레이 호수(Lago Grey)에서 만난 빙하나 토레스 델 파이네 삼각봉 아래의 에메랄드빛 호수도 알래스카의 빙하나 캐나다 로키산맥의 밴프나 재스퍼 국립공원 내 호수보다 더 푸르다고 할 수 없다.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보려고 지구의 반 바퀴를 돌아서 이곳에 왔을까. 토레
파타고니아에 바람이 분다. 강풍이 불 때는 몸을 낮추어야 한다. 그래서인지 파타고니아의 건물은 땅바닥까지 바짝 엎드렸다.지난 한 해 견뎌내기 힘든 강풍과 마주했다. 인생에서 크고 작은 위기야 항시 오기 마련인가. 지나가는 바람의 의미를 어떻게 깨달을까.토레스 델 파이네(Torres del Paine) 국립공원에는 바람이 사시사철 분다. 지구상에서 제일 센 강풍이란다. 계절을 가리지 않는 편이다. 여름에 해당하는 1월과 2월에는 잠잠할 때도 있다. 관광객이 찾는 시기다.이 초원의 지평선 너머에 타워의 삼각봉이 송곳니를 뒤집은 모양으로
삶은 여행이다. 여행은 또한 삶의 연속이다. 트래블 저널리스트가 금과옥조로 여겨야 할 공준(公準·postulate)이다. 일상적 비즈니스와 여행을 분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별히 해외여행은 일반인의 삶과 연결될 때 더욱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괴테도 일상에 지쳤을 때 베네치아와 피렌체, 로마, 나폴리로 여행을 떠나 작가로서 영감을 다시 얻게 되는 을 저술했다. 그리고 “여행은 도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떠나기 위해서 간다”는 명언을 남긴다.엔데믹이 되면서 해외여행 기회가 다시 찾아왔다. 하지만 달러 강세와 세계 곳곳
최근 정기연주회에서 테너 위정민 세종대 교수가 신파조로 “아 ~ 것은 ~ 것이었던 것이다”라며 한국 근대사의 애환과 함께 주옥같은 가곡을 소개했다. 서울예고 출신의 중진 성악가들이 ‘목련화’부터 시작해 ‘비목’ ‘얼굴’ ‘가고파’를 거쳐 ‘그리운 금강산’까지 불러 젖혔다. 이 가곡을 들으면서 이번에 방문했던 칠레의 대통령 집무실인 모네다궁이 떠올랐다. 여러 우여곡절을 거친 칠레의 근대화와 민주화가 우리와 너무 비슷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모네다궁은 산타 루시아 언덕에서 내려다 보는 산티아고 다운타운에 있다. 네모반듯한 평
아, 산티아고! 산뜻하다. 가히 ‘남미의 유럽’이라 불릴만하다. 어디서나 유럽인 혹은 미국인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칠레의 관문인 코모도로 아리투로 메리노 베니테스 국제공항에서 자동차로 30분 달려 산티아고 도심을 지나 숙소인 라스 콘데스에 들어섰을 때의 첫인상이다.칠레의 수도는 산티아고이다. 하지만 “산티아고는 칠레가 아니다(Santiago no es Chile)”라는 말이 회자된다. 여행가이드인 호세 리부이가 파타고니아에서 수 차례 강조했다. 비슷하게 “라스 콘데스는 산티아고가 아니다”라고도 한다. 빈부격차에 따른 특정 지역에
작은북 소리가 들려온다. 스네어 드럼(Snare Drum)의 바스락거리는 음색이다. 조용히 반복되는 리듬 속에서 과나코가 캥거루처럼 철조망을 가뿐히 뛰어넘는다. 윤동주가 이곳에 와서 밤하늘의 별을 셌을까. 백마 탄 이육사가 광야에서 목 놓아 우는가. 파타고니아의 드넓은 초원에 태고의 바람이 분다.마에스트라 김봉미가 최근 롯데 콘서트홀에서 지휘한 라벨의 볼레로(Bolero)라는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으면서, 남아메리카 땅끝 마을의 전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회색의 대초원이 “169회나 반복되는 작은북의 리듬”처럼 한없이 아른거린다. 볼레
조셉 칸 (Joe Kahn)씨가 뉴욕타임스의 새로운 편집인 (executive editor) 으로 내정됐다. 57세인 그는 현재 이 신문의 편집국장 (managing editor) 으로 일하고 있다. 그의 편집인 내정을 보도한 4월 22일자 타임스 기사에 따르면, 칸국장은 이 신문의 서열 2위 편집책임자다. 현직 편집인은 딘 베케이 (Dean Baquet) 씨다. 그는 2014년 5월부터 편집인 직을 맡아 65세인 올해 6월까지 근무한다. 65세는 뉴욕타임스가 규정하는 편집인 정년 나이다. 베케이 편집인은 8년 정도, 뉴욕타임스의
미국 언론이 혁신의 정답처럼 얘기될 때가 많다. 학술적으로 반박하면 할 말은 없지만, 적어도 미디어 비평지에 나오는 전문가와 학자의 코멘트를 보면 비슷한 논조다. 거칠게 요약하면 퀄리티저널리즘을 통해 유료 독자를 발굴하라, 미국 유력지를 보라는 이야기로 요약할 수 있지 않나 싶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이번 시리즈를 준비하면서 필자에게 많은 조언을 했던 이가혁 JTBC 기자(전 팩트체크팀장) 역시 “미국 언론을 정답처럼 여기는 경우가 많고, 나 역시 그랬다”면서 “하지만 이곳 역시 치열한 고민이 이어지는 현재 진행형이었다”고
사라 먼치는 나이(40세)에 비해 다양한 경력을 쌓았다. 미국 미주리 출신으로 애리조나에서 대학을 나왔다. 이후 애리조나리퍼블릭의 스페인어 신문 ‘라보스’를 거쳐 본지 격인 애리조나리퍼블릭으로 스카우트됐다. 이후에는 정치권에서, 또 공무원으로도 일한 적이 있다. 모교인 애리조나주립대에서 저널리즘스쿨 강사로 근무하면서, 기사작성법 등 기초 과목을 가르치는 한편, 학생들을 데리고 브라질 올림픽 현장 취재를 나갔다. 지금은 비영리기관의 홍보컨설팅을 하는 회사에서 일하는 한편, 애리조나리퍼블릭에서 종합 1면 등 지면을 편집한다. 자신이 창
새롭게 창립한 언론 매체에서의 일은 고되다. 전례가 없고 새로운 사람끼리 모여 손과 발을 맞춰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다른 사람이 누릴 수 없는 경험이 생기기도 한다.한국에서도 종합편성채널이 생긴 10여 년 전, 개국 멤버는 새로운 방송국 설립을 위해 고생을 많이 했지만 그만큼 새로운 시도와 노력을 많이 했다. 이들에게는 다양한 기회와 가능성이 많았을 것으로 생각된다.파키스탄 방송기자 아넘 하니프 역시 비슷하다. 2015년 개국한 네오뉴스에서 뉴스 프로듀서로서 밤새면서 일한 날이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새로운 방송을 만든 경험이
모하메드 아스뮤 바 기자는 서부 아프리카에 있는 시에라리온의 앵커다. 공영방송인 시에라리온브로드캐스팅코퍼레이션(SLBC)에서 독한 질문을 많이 하면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그는 시에라리온기자협회 사무총장이기도 하다. 2019년 현지 신문사의 편집국장이 혐의 없이 경찰에 구류됐을 때나 2020년 기자들이 대통령실 경호원에게 폭력을 당했을 때도 비판하거나 기자 석방에 앞장섰다. SLBC는 2010년부터 공영방송이 됐다. 내전 이후, 유엔 등이 참여한 진실화해위원회의 권고에 따라서다. 전에는 관영방송(시에라리온브로드캐스팅시스템‧SLBS
미국은 세계 최대 언론 시장으로 꼽힌다. 세계적인 저널리즘스쿨도 여럿 있다. 이 때문에 연수나 취재차 미국을 찾은 기자가 많다.필자가 공부하는 험프리 프로그램에서도 여러 나라 기자를 만날 수 있다. 공영방송 앵커도 있고, 팩트체크 교육자도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탈출한 기자가 있었지만 인터뷰에는 실패했다. 서면 인터뷰를 승낙했지만 결국 답변이 오지 않았다. 언젠가는 인터뷰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필자가 만난 기자 중에 방글라데시 영자지 부장인 엘리타 카림이 있다. 방글라데시 언론계에서는 꽤 유명 인사다. 위키피디아에는 ‘가수, 저널리
앞서 소개한 롭 헤이스 교수가 미국 지역신문의 호황기를 겪은 선배 세대 기자였다면, 닉 팰선 기자는 지역신문의 변혁을 몸으로 느끼고 향후 발전 방향을 고민하는 세대다. 올해로 23년차로 리하이 밸리 라이브라는 온라인 매체의 편집국장이다.우선 이 매체의 성격과 디지털퍼스트 전략에 대해 알아둘 필요가 있다. 리하이밸리라이브의 전신인 익스프레스타임스는 펜실베이니아주에서 필라델피아 북서부에 있는 ‘리하이 밸리’ 지역(이스턴, 베들레헴, 앨런타운)을 커버하는 지역 대표 일간지다. 1855년 이스턴데일리익스프레스라는 제호로 창간했다.회사는 이
초년병 시절 선배들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농담처럼 들었다. “다른 걱정 없이 기사나 평생 쓰다가 은퇴했으면 좋겠다.” 드물지만 없지는 않다. 언론사에서 매년 한두 명씩 정년 퇴임하는 기자가 가끔 보인다. 어떤 기자는 현장 기자로 일하다가 저널리즘 교육자로 변한다. 일부는 두 가지를 겸한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베들레헴에 있는 노스햄턴커뮤니티칼리지에서 학생들을 지도한 롭 헤이스 교수는 기자와 저널리즘 교육자로 평생 일했다. 그는 1974년부터 2000년까지 미국 펜실베이니아 이스턴에 있는 일간지 익스프레스타임스에서 일했다. “진정한 미국
베이징(北京)이란 한자어는 북쪽의 수도를 나타낸다. 난징(南京)은 남쪽의 수도, 시안(西安)은 서쪽의 수도를 칭한다. 베이징은 한때 연경(燕京)으로 불렸다. 춘추전국시대에는 연(燕)나라의 수도였다.금(金)과 원(元)에 이어서 명(明)과 청(淸), 그리고 현재 중국의 수도이다. 명의 영락제가 난징에서 베이징으로 지금부터 600년 전인 1421년에 천도했다. 천년 중국을 이해하려면 베이징을 보란 말이 있다. (이유진, ‘중국을 빚어낸 여섯 도읍지 이야기’, 5쪽)방문객으로 중국 천년의 역사를 베이징 고궁에서 엿볼 수 있다. 천안문(天安
성공의 비결을 말할 때 ‘운이 좋았다’는 말은 관용구처럼 한다. 하지만 정말 노력을 많이 해서 자신이 쟁취했다면 어떨까. 현재는 교수로 봉직하는 CNN 앵커 출신인 수전 리소비츠가 그런 사람이다.“나는 내가 운을 만들었다(I made my luck)”는 말을 캐치프레이즈처럼 했다. 좋은 기사, 좋은 리포트를 계속해서 만들다 보니 경제 기자로 이름을 날렸고 회사가 앵커를 시켜주더라는 꿈 같은 이야기다.요즘 들어 한국에서는 언론계에서 기자직 인기가 예전만 못한 것이 사실이고, 젊은 기자들이 이직이나 전직을 알아보는 예가 적지 않다. 이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현직 기자에게 인기가 많았지만 많은 언론 지망생에게 필수 시청 영화로 꼽혔다. 2015년 작품으로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0년 영화제에서 다시 한번 소개됐다. 이 영화는 미국의 유력 일간지로 꼽히는 보스턴글로브의 탐사보도 담당 스포트라이트팀이 가톨릭교회 보스턴교구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사건을 취재하는 과정을 다룬다. 2003년 퓰리처상을 받은 탐사보도 취재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는데, 영화에는 실제 기자의 캐릭터가 등장한다. 보스턴글로브의 취재 과정에서 중심에 있었던 기자는 당시 스포트라이트팀장이던 월터 로빈슨
최근 미국 피닉스 도심 한복판에서는 러시아 기자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1인시위를 벌였다. 며칠 뒤 그는 우크라이나인들과 함께 시위하는 한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도 활발한 반전 의견을 냈다. BBC 러시아 서비스에서 일하는 밀라나 마자에바 기자. 마자에바 기자는 당초 미국에서 1년간 공부를 마친 뒤 올해 6월 귀국 예정이었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모든 것이 바뀌었다. 미국의 주요 미디어에서 협업 제안이 들어와 취재에 들어가는 한편, 다른 한 유력지에는 칼럼을 써서 보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우크라이
세계 최초의 기자는 누구일까. 언론학자들은 일반적으로 페이디피데스를 꼽는다. 기원전 490년에 페르시아와의 마라톤 전투의 승리를 아테네 시민에게 전달하고 숨을 거뒀다. 올림픽 마라톤 게임의 기원이다.조선의 건국이념에는 작개언로(作開言路)가 있다. 언로를 만들고 크게 열어서 민정을 살피겠다는 유교의 통치 철학이다. 이를 구현하는 언론 삼사로 사간원, 사헌부, 홍문관을 두었다. 이 삼사는 ▲ 주위 환경을 감시하고 ▲ 사회 제 세력을 연결하며 ▲ 세대 간 문화를 전승하는 근대적 언론의 역할을 담당했다.조선의 종군기자로는 임진왜란의 실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