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세계 최대 언론 시장으로 꼽힌다. 세계적인 저널리즘스쿨도 여럿 있다. 이 때문에 연수나 취재차 미국을 찾은 기자가 많다.

필자가 공부하는 험프리 프로그램에서도 여러 나라 기자를 만날 수 있다. 공영방송 앵커도 있고, 팩트체크 교육자도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탈출한 기자가 있었지만 인터뷰에는 실패했다. 서면 인터뷰를 승낙했지만 결국 답변이 오지 않았다. 언젠가는 인터뷰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필자가 만난 기자 중에 방글라데시 영자지 부장인 엘리타 카림이 있다. 방글라데시 언론계에서는 꽤 유명 인사다. 위키피디아에는 ‘가수, 저널리스트, 공연예술가, 앵커, 보이스 아티스트’로 나온다.

그는 기자로서도 탄탄한 경력을 쌓았다. 방글라데시 톱 영자지로 꼽히는 데일리스타에서 30대에 최연소 에디터(부장)로 발탁됐다. 젊은 부장으로서 그는 부원들이 경찰서에 구류되면 꺼내오는 등 정신없이 일했다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 엘리타 카림(출처=페이스북)
▲ 엘리타 카림(출처=페이스북)

- 나이가 젊은데(40세) 20년차다.

“정말 어릴 때 편집국에서 일할 기회를 얻어서 그렇다.”

- 언론 입문 계기에 대해 간단히 말해달라.

“2003년 3월 데일리스타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당시 회사에서 문화면을 개설했는데, 대학가에서 영어를 잘하는 젊은이를 찾는다고 했다. 나는 해외에 오래 거주해 영어도 좀 하고, 대학가에서 공연도 해서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 때문에 기자 선배의 추천으로 입사했다. 처음에 견습기자 1년을 하면서 매일 스트레이스 뉴스를 소화했다. 그리고는 대학을 다니면서 신문사를 다녔다.”

- 데일리스타는 어떤 매체인가.

“방글라데시 유력 영자지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신문협회에서 매년 산정하는 급여산정표(Wage Board‧한국의 호봉제 임금표에 해당)가 있다. 이를 따르지 않고 급여를 적게 주는 회사가 부지기수다. 데일리스타는 이 급여산정표를 준수해 임금을 지급하는 몇 안 되는 회사다. 또한 정부 비판 등 성역 없는 보도를 한다. 데일리스타는 본래 영자지이고, 지금도 지면은 영어로만 나온다. 하지만 최근에는 디지털 기사에 한해 모국어인 벵골어로도 기사를 내보낸다.”

- 어느 나라에 오래 살았나.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태어나 19세까지 그곳에 살았다. 아버지가 현지 대학교수로 일해, 그곳에서 함께 지냈다. 내가 살던 때 사우디에서는 외국인이 현지 대학을 가기가 어려웠다. 이에 모국인 방글라데시로 돌아와 대학에 진학했다.”

- 주로 어떤 기사를 다뤘나.

“수습 1년을 마친 뒤에는 주말팀(금요일 발행)에서 6년 넘게 일하면서 긴 호흡의 글을 썼다. 그리고 2010년에는 최연소 부장이 돼 대학 섹션을 만들었다. 대학 섹션은 절반은 학술면 성격이 있고, 절반은 학내 이슈와 교육 문제를 다룬다고 보면 된다. 구독자가 더 많은 일요일에 발행되는 섹션이었다.”

- 대학 섹션은 무엇인가.

“캠퍼스 이슈나 청년 운동, 시민운동을 다룬다. 학술적인 기사와 사회부 기사가 병존하는 섹션이다. 또한 방글라데시에서는 학생이 정치적 외압이나 부정부패 스캔들에 맞서 단식투쟁을 할 때가 있는데, 이런 기사도 담당한다. 일례로 2018년에는 학생 2명이 길에서 사망한 일이 발생해 10대 학생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2주간 시위를 하기도 했다.”

- 시위 현장을 취재하면 기자가 구금되기도 하나.

“물론이다. 새벽에 경찰서에 가서 구금된 팀원을 데리고 나오는 일은 자주 있었다.”

▲ 엘리타 카림(출처=페이스북)
▲ 엘리타 카림(출처=페이스북)

- 가장 기억에 남는 기사가 있다면….

“국경지대에서 납치돼 인도로 팔려가는 소녀에 대한 르포 기사로 국제적십자사의 상을 받은 적이 있다. 3일 동안 밤새가면서 기사를 썼고, 취재 과정 중 23명의 소녀가 구조되는 과정도 목격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당시 그 소녀들이 이른바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학교도 못 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소녀들이 무서워서 낮에는 취재도 거부했을 정도다.”

방글라데시에서도 최근 몇 년 사이 언론 환경이 악화됐다. 2018년에는 기사를 제약하는 디지털보안법(DSA)이 생겼다. 많은 기자가 투옥의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조심스럽게 대화를 이끌어 나갔다.

- 취재하기 안 힘드나.

“힘들다. 우리 매체는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총리 기자회견에 출입도 못 하고 있다.”

- 그러면 기사를 어떻게 쓰나.

“총리 기자회견 등에 한해 통신사 기사를 전재해 기사를 쓴다.”

- 언론 환경이 악화하면 기자직 인기가 줄어들 것 같다.

“약간은 그렇다. 저널리즘스쿨을 나와서 홍보 직무로 가려는 사람이 꽤 있다. 또한 소위 ‘위험한’ 기사를 쓸 때는 더 조심하게 되고, 자기 검열을 하게 되는 경향도 일부 있다.”

- 가수는 언제부터 했나.

“2002년부터 했다. 대학가요제 등에 출전하면서 자연스럽게 가수로 일하게 됐다.”

- 가수가 더 돈을 잘 벌지 않나. 왜 기자직을 꾸준히 하나.

“방글라데시는 저작권법이 잘 완비돼 있지 않다. 가수로서 나도 여러 곡을 불렀고 공연도 오랜 기간 해왔지만, 정작 음원 저작권료는 받지 못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 이후로 공연도 거의 끊겼다. 미국 같았으면 음원 판매 수입으로 꾸준한 돈을 벌었을텐데, 방글라데시는 그렇지 못하다. 이 때문에 방글라데시에서는 가수들이 다른 직업을 겸하는 일이 흔하다. 나는 어릴 적 기자와 가수를 동시에 시작했고, 두 직업 모두 내게는 소중하다.”

카림 기자는 이달 8일 미국 피닉스에서 방글라데시 교민을 대상으로 공연했다. 3월에는 실리콘밸리에서 공연했다. 그는 애리조나주립대에서 저작권법 수업을 들었다. 본국에서 저작권법이 완비되면 아티스트로서 나아갈 길을 준비하는 차원이라 했다.

- 향후 계획은….

“더 많은 젊은 여성이 사회에서 역할을 하도록 힘을 보태고, 언어적 측면에서 강점을 가질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카림 기자는 영어 교육자로도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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