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타고니아를 생각하면 무엇보다 파란 하늘과 파란 호수와 파란 빙하가 떠오른다. 남미를 대표하는 절경이라는데 그게 전부일까.

천고마비의 계절이 오면 한반도 하늘도 이곳만큼 아름다울 때가 있다. 비가 막 그친 초여름 시애틀의 화창한 하늘보다 더 청명하다고도 할 수 없다. 그레이 호수(Lago Grey)에서 만난 빙하나 토레스 델 파이네 삼각봉 아래의 에메랄드빛 호수도 알래스카의 빙하나 캐나다 로키산맥의 밴프나 재스퍼 국립공원 내 호수보다 더 푸르다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보려고 지구의 반 바퀴를 돌아서 이곳에 왔을까. 토레스 델 파이네는 아메리카 대륙의 다른 국립공원과 무엇이 다를까. 푸른 산 빙하의 삼각봉 이외에 도대체 무엇이 있을까.

▲ 푸른색의 뿔들이란 의미의 쿠에르노스 델 파이네 
▲ 푸른색의 뿔들이란 의미의 쿠에르노스 델 파이네 

파타고니아는 안데스산맥을 사이에 두고 칠레와 아르헨티나에 걸쳐있다. 한반도의 다섯 배인 100만 ㎢가 넘는 대평원이다. 칠레 쪽은 사시사철 바람이 불기로 유명하다. 과나코(guanaco)가 무리를 지어 뛰노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토레스 델 파이네의 베이스캠프를 드나들 때마다 철조망으로 구획이 나뉜 활량한 초원에서 우리를 맞이한다.

과나코는 어떤 동물일까, 챗GPT를 쳐본다. 남미 대륙의 “안데스산맥 지역에서 서식하는 산양의 한 종류”로 소개한다. 틀렸다. 다리가 길어서 산양과는 모습이 전혀 다르다. 낙타과다. 오히려 페루의 국기에 등장하는 비쿠냐와 비슷하다면 모를까.

파타고니아에 오기 직전에 워싱턴 DC의 동물원에서 본 라마나 알파카와도 모습이 달랐다. 라마보다는 체격이 작고 알파카나 비쿠냐보다 크다. 네이버 지식백과에는 “한 마리의 수컷과 여러 마리의 암컷, 그리고 15개월 이하의 새끼들로 평균 16마리로 구성된 가족 무리를 이룬다”고 소개한다.

그래서인지 수십 마리의 과나코가 떼를 지어 파타고니아 초원인 팜파스(Pampas)를 뛰어다닌다. 단독으로 살아가는 수컷도 있다. 아버지 과나코다. 때가 되면 아내와 자녀로부터 떠난다. 홀로 해발 4천 미터 높이의 고산지대에 오르기도 한다.

▲ 과나코는 군집 생활을 한다.
▲ 과나코는 군집 생활을 한다.
▲ 아버지 과나코가 홀로 산등성이에 오르는 모습
▲ 아버지 과나코가 홀로 산등성이에 오르는 모습

과나코의 천적은 퓨마(puma)다.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최상위 포식자다. 남미의 ‘낙타 사총사’인 과나코, 라마, 알파카, 비쿠냐를 잡아먹는다. (출처, 과나코·라마·알파카·비쿠냐, 알쓸신잡 블로그) 캐나다 서부에서부터 남미의 땅끝인 파타고니아까지 아메리카 대륙에 넓게 퍼져 산다. 북아메리카에서는 쿠거 또는 마운틴 라이언으로도 불린다. 야행성이다. 낮에는 잘 움직이지 않는다.

파타고니아에는 퓨마를 찾아 나서는 관광코스가 있다. 토레스 전망대까지 트레킹할 때, 아침 일찍 이들을 만났다. 멀리 떨어진 언덕 위에서 퓨마가 웅크리고 있단다. 조용하란다. 멀어서인지 내 카메라에는 잡히지 않았다. 이외에도 안데스 콘도르와 마젤란 기러기가 파타고니아 호수 위를 유유히 날거나 계곡 사이의 강으로 급강하한다. 댕기 모습의 오리도 홀로 물질을 한다.

남미 여행 중에 칠레 쪽 파타고니아에 하루나 이틀을 머무를 수 있다면 단연코 쿠에르노스 델 파이네(Cuernos del Paine) 등산 코스를 추천한다. 첫날은 공원 입구의 숙소에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데스크의 도움을 받아 5일간의 일정을 짠 후에 사르미엔토 호수 길을 거닐었다. 저녁을 일찍 먹은 후에 창문 밖으로 토레스 삼각봉의 파노라마가 펼쳐지는 호사스러운 방에서 충분히 쉬었다. 둘째 날은 조찬을 하고 곧바로 쿠에르노스 델 파이네를 찾았다.

▲ 초원에서 바라본 쿠에르노스 델 파이네
▲ 초원에서 바라본 쿠에르노스 델 파이네

쿠에르노는 스페인어로 ‘뿔’이란 뜻이며 쿠에르노스는 복수형으로 ‘뿔들’이다. 우리말로는 ‘푸른색의 뿔들’이란 명칭의 산봉우리이다. 본봉(Cuerno Principal, Main Horn)은 2600m, 북봉(Cuerno Norte, North Horn)이 2400m, 앞에 보이는 동봉(Cuerno Este, East Horn)은 그보다 낮은 2200m이다. 베이스캠프에서 승합차를 타고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 입구에서 내린 후에 쿠에르노스 전망대까지 2시간을 걸었다.

상어 이빨 모양의 쿠에르노 본봉을 보고 가이드 안내에 따라 이 공원에서 가장 큰 폭포인 살토 그렌데까지 걸었다. 그곳에 도착하니 먼저 온 승합차 기사가 토스트와 야채 샐러드, 치즈와 과일을 그릇에 담아 야외 테이블 위에 펼쳐놓았다. 군침이 돈다.

▲ 파타고니아 들판의 오찬
▲ 파타고니아 들판의 오찬

여기저기 흩어진 호수에서 뱀이 기듯이 꾸불꾸불한 강을 따라 흘러 내려온 물이 살토 그렌데란 댐으로 모여서 페오(Pehoe) 호수로 떨어진다. 나이아가라 폭포같이 웅장하지는 않다. 하지만 산 빙하가 황막한 광야를 적시는 모습이 신기롭다. 여러 파이네 강을 따라 흐르는 물이 모여서 폭포수가 된다. 이 살토 그렌데에서 쿠에르노스 전망대까지 1시간 거리라고 표지판이 가리킨다. 스페인어로 트래킹 “난이도가 낮다(DIFICULTAD: BAJA)”로 쓰여있다.

토레스 델 파이네에는 여러 개의 호수가 있다. 이 호수나 저 호수나 비슷하다. 우리가 묶은 롯지 앞의 사르미엔토 호수가 낯이 익어서인지 그래도 인상적이다. 쿠에르노스 산봉우리 앞에 있는 노르데스콜트(Nordenskjold) 호수와 넷째 날에 찾은 그레이 호수가 파타고니아의 W자 트래킹 코스에 포함된다.

▲ 파이네의 빙하가 녹아 폭포수가 된다. 
▲ 파이네의 빙하가 녹아 폭포수가 된다. 

사람은 걸을 때 “삶의 미망(迷妄)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다. (작자 미상, <을숙도 여정에서> 인용) 일상생활에서 우울하거나 걱정거리가 있다면 정신 건강학적으로 걷는 것이 최선책이 될 수 있다. 완만한 코스를 걸으면서 “우리는 무엇을 찾기 위해 파타고니아까지 왔을까”라는 엉뚱한 생각이 든다.

다섯 형제가 지구의 땅끝 공원에서 오롯이 일주일을 보냈다. 형제애가 돈독해지며 삶의 기쁨이 충만해진다. 벤처 기업가인 조카가 이 여행을 권유하고 후원해 의미가 더욱 깊다. 잠언에 따르면 “친구는 사랑이 끊어지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까지 위하여 났느니라.” (A friend loves at all times and a brother is born for adversity, Proverbs 17:17) 

쿠에르노스의 봉우리를 바라보면서 토레스 델 파이네의 진가를 헤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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