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티아고 전경 
▲ 산티아고 전경 

아, 산티아고! 산뜻하다. 가히 ‘남미의 유럽’이라 불릴만하다. 어디서나 유럽인 혹은 미국인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칠레의 관문인 코모도로 아리투로 메리노 베니테스 국제공항에서 자동차로 30분 달려 산티아고 도심을 지나 숙소인 라스 콘데스에 들어섰을 때의 첫인상이다.

칠레의 수도는 산티아고이다. 하지만 “산티아고는 칠레가 아니다(Santiago no es Chile)”라는 말이 회자된다. 여행가이드인 호세 리부이가 파타고니아에서 수 차례 강조했다. 비슷하게 “라스 콘데스는 산티아고가 아니다”라고도 한다. 빈부격차에 따른 특정 지역에 대한 거부감이다. 칠레인의 평등의식도 엿볼 수 있다.

칠레는 행정구역상으로 북쪽에서 남쪽까지 16개 레전으로 구분된다. 이 중에서 RM은 산티아고 레전 메트로폴리타나(Región Metropolitana de Santiago)의 약자다. 유일하게 태평양 연안과 접하지 않는다. 각 레전은 프로빈시아(Provincia)로 나뉜다. 전국적으로 자치 주 형태의 56개 프로빈시아와 346개의 코무나(Comuna)가 있다. 즉 전국이 레전, 프로빈시아, 코무나 순으로 연결된다.

산티아고 RM에는 산티아고를 포함해 6개 프로빈시아가 있다. 산티아고 프로빈시아에는 칠레 최초의 도심인 산티아고 센트로(Centro)를 중심으로 37개의 코무나가 있다.

▲ 칠레는 16개 레전으로 구성된다. (출처=칠레 관광청)
▲ 칠레는 16개 레전으로 구성된다. (출처=칠레 관광청)

우리가 2박 3일 묶었던 라스 콘데스는 산티아고 도심의 북동쪽에 있다. 인구는 25만 명으로 용산구 크기이다. 거리는 버려진 쓰레기나 담배꽁초 하나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깨끗했다. 마치 홋카이도 삿포로처럼 주위가 청결하고 잘 정돈됐다. 숙소 주변을 산보할 때 기분이 좋아졌다. (참조, 스토리오브서울, 심재철 교수의 세계 여행기 28편)

외국인도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지역이란다. 그래서인지 ‘그링고랜디아(Gringolandia)’로 불리는 미국인을 쉽게 만났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어바인(Irvine) 도심처럼 새롭게 정돈됐다.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만큼 산뜻하다.

산티아고의 부자는 안데스산맥의 기슭인 라 데에사, 로 바르네치아, 산타 마리아 드 만케우에 등의 업타운으로 이동 중이란다. 남가주 LA의 부촌이 산동네인 베버리힐스와 벨 에어 그리고 태평양 연안 언덕인 팔로스 버디스에 형성된 모양새와 비슷하다. 이곳의 산티아고 상층부는 라스 콘데스와 그 주변의 로스 도미니코스, 엘 골프, 바타구라와 프로비덴시아 코무나에서 활동한다.

산티아고 상업지역은 라스 콘데스를 관통하는 아포킨도 애브뉴를 따라 활성화됐다. 숙소인 하얏트 센트릭에서 나와 아포킨도 애브뉴를 따라 남서쪽으로 걸으니 산타 루시아 힐(Santa Lucia Hill)이 나타난다. 이 언덕의 북서쪽에 마포초 강이 흐른다. 산티아고 센트로가 1541년부터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칠레의 수도로 그때부터 481년 동안 진화했다.

▲ 산타루시아 언덕의 원주민 나무조각상
▲ 산타루시아 언덕의 원주민 나무조각상

산티아고 도심 주변은 산해튼(Sanhattan)이라 불린다. 산티아고와 맨해튼의 합성어이다. 이곳에 프로빈덴시아와 엘 보스케 코무나가 있다. 산티아고의 64층의 랜드마크인 그랜 토레 산티아고(Gran Torre Santiago) 빌딩이 여기에 자리 잡았다. 겉모습은 잠실에 있는 롯데월드타워처럼 둥근 타원형이다. 2016년에 완공됐다. 이곳 전망대는 ‘스카이 코스타네라(Sky Costanera)’로 불린다. 남미에서 가장 높은 빌딩으로 300m다. 주위 건물과 조화를 이루며 위압적이지 않아서 좋다.

평양 대동강 옆에 올라간 류경 호텔이 330m이다. 완공해 놓고도 붕괴 위험으로 비어있다고 한다. 타이베이에는 101층의 마천루가 있다. 첨탑까지 합쳐 높이가 자그마치 509m이다. 그곳을 10여 년 전에 방문했는데, 건물의 반이 비었다.

산티아고 레전에는 칠레 인구의 3분의 1이 넘는 712만 명이 거주한다. 아르헨티나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와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와 함께 남미를 대표하는 3대 도시이다. 칠레 국내 총생산의 약 45%가 산티아고 RM에서 나온다. 이곳에 칠레의 증권거래소가 있다. 내년에는 팬 아메리카 대회가 열린다.

산티아고는 안데스산맥의 분지에 자리해 스모그 현상이 자주 일어났다. 1980년대와 90년대는 매우 심각했다. 여러 극약 처방을 했다. 주말을 제외하고 저감 장치가 없는 차량의 도심 진입을 금지했다. 기준치인 1㎥에 미세먼지가 300마이크로그램(㎍)이 넘으면 비상경보가 울렸다. 이때는 자동차의 절반 정도가 운전할 수 없다(수잔 로라프와 로라 카마초, 노지영 번역, <지구촌 문화충격 탈출기, 칠레>, 198쪽). 수도권 공기가 깨끗해진 이유다.

▲ 산티아고 야경과 그랜 토레 산티아고 빌딩(출처=뉴욕타임스) 
▲ 산티아고 야경과 그랜 토레 산티아고 빌딩(출처=뉴욕타임스) 

칠레는 한국과 비슷한 측면이 많다. 교육열이 높다. 문자 해독률이 90% 이상으로 남미에서 가장 높다. 쿠데타가 성공해 17년간이나 폭력적인 군부 권위주의 체제가 유지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이 잡혔고, 경제는 고속 성장한다. 한국처럼 식민지 시대를 거쳐 독립과 내전, 사회적 분쟁과 갈등으로 얼룩진 역사를 안고 산다.

단일민족이란 자부심까지 비슷하다. 칠레인 주류는 메스티소(mestizo) 혈통으로 분류된다. 메스티소란 유럽인과 남미 원주민이 섞인 인종적 분류이다. 유럽계 이민자와 마푸체와 피쿤체족을 포함한 다양한 원주민이 함께 살았다. 그런데도 ‘유럽계 칠레인’이란 단일민족 의식 속에서 산다(Roraff & Camacho, 2005). 다른 남미국가에서는 찾을 수 없다. 칠레인 대다수가 400년 동안 외부 세계와 단절된 채 독자적으로 살았기 때문일까.

우리처럼 법이나 규정 찾기를 좋아한다. 국민성이 정직한 편이다. 신념이 강하고 약속을 잘 지킨다. 공산당 후보와 단일화해 진보적 인민연합이 여러 차례 집권했다. 그럼에도 국민의 상당수는 보수적인 편이다. 노벨 문학상을 두 번 수상할 정도로 문화수준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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