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피닉스 도심 한복판에서는 러시아 기자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1인시위를 벌였다. 며칠 뒤 그는 우크라이나인들과 함께 시위하는 한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도 활발한 반전 의견을 냈다. BBC 러시아 서비스에서 일하는 밀라나 마자에바 기자. 

마자에바 기자는 당초 미국에서 1년간 공부를 마친 뒤 올해 6월 귀국 예정이었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모든 것이 바뀌었다. 미국의 주요 미디어에서 협업 제안이 들어와 취재에 들어가는 한편, 다른 한 유력지에는 칼럼을 써서 보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우크라이나인과 연대를 통해 반전운동에 앞장서는 중이다. 미국과 유럽 각국이 러시아행 항공편을 모두 중단하고 영공 통과를 금지해 돌아갈 방법도 마땅치 않다. 

마자에바 기자는 러시아 국적이지만 내전의 아픔을 몸소 체험한 전쟁 세대이기도 하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테러리스트가 있다’고 알려진 체첸공화국 출신이다. 열세 살 때부터 전쟁을 겪었다. 러시아 정부군과 체첸 반군의 내전은 10년 넘게 지속됐고, 마자에바 역시 자신의 형제가 사망하고 집이 폭격으로 부서지는 트라우마를 겪었다. 

20여 년 만에 다시 겪는 러시아의 침공은 그에게 낯설지 않다고 한다. 마자에바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러시아는 크림반도 병합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형제라고 부르던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있다. 이제는 형제가 아니라 적이 된 상황이다.” 

기자는 3월 3일(미국 시각) 마자에바 기자와 인터뷰를 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후 이틀을 울면서 TV만 지켜봤다는 이야기로 시작했다. 

▲ 마자에바 기자 
▲ 마자에바 기자 

-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됐을 때 어떤 기분을 느꼈나. 

“무력감을 느꼈다. 나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 같았다. 그동안 우크라이나 기자들과도 협력을 많이 했는데, 이제는 러시아가 그들을 공격하는 것 아닌가. 개전 후 이틀 동안은 집에서 울면서 방송 화면만 지켜봤다. 그러다가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전쟁 반대’ 피켓을 만들어서 1인시위를 시작했다. 이후에는 카메라를 들고 우크라이나인 시위대를 찾았다.” 

- 어떤 반응이었나. “왜 당신은 러시아 사람인데 러시아를 비판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을 것 같다. 

“비슷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어떤 사람은 ‘미친 노인네(푸틴)를 멈춰달라’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고, 러시아는 우리 조국을 공격하지 말라는 비판도 받았다. 내가 1인시위를 하고 또 우크라이나인들과 러시아 규탄 시위를 함께 하는 것은 모든 러시아인이 푸틴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은 측면도 있었다. 하지만 한 여성 취재원의 말이 너무 속상했다.” 

- 무슨 말이었나. 

“이번 전쟁으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국 일반인의 삶은 어떻게 바뀔 것 같은지를 물었다. 너를 적으로 보게 됐다. 그게 바뀐 결과라고 답하더라. 할 말을 잃었다. 이런 반응의 취재원에게 나는 체첸 사람이다, 나도 러시아의 공격을 겪었다고 말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나. 정작 나는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는 내 이름으로 임대차 계약도 못 하는 ‘낀 신세’다. 명문화된 법규정은 없지만 집주인이 체첸 출신에게는 집을 빌려주지 않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미국에서는 러시아인이라고 비판받고, 정작 러시아에서는 월세도 못 구하는 신세다.” 

- 그 이후에 다시 시위에 참가했는데…. 

“이후에는 시위대로서 참가했다. 공교롭게도 그때 적으로 보게 됐다는 취재원이 또 있었다. 그때는 나를 반겨주고 안아주었다.” 

- 체첸 내전을 겪은 사람으로서 이번 전쟁과 비교가 될 것 같다. 

“물론이다. 일단 같은 러시아인이 타자를 공격하는 구도가 같다. 하지만 그 대상은 확연히 다르다. 1990년대 체첸 내전에서는 러시아군이 언어와 종교, 문화가 다른 ‘이방인’ 체첸 사람을 공격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크림반도 병합 전까지만 하더라도 형제로 부르던 사람들에게 총구를 겨누는 격이다. 개인적으로는 체첸 전쟁 때 내 친동생이 죽고, 내가 살던 집이 폭격으로 부서지는 일을 겪었다. 그 일과 비교가 많이 된다.” 

- 현재 러시아 상황은 어떠한가. 

“많은 사람이 전쟁에 반대하고 있다. 전쟁 발발 후 시위를 하다가 경찰에 감금된 러시아인이 6000명이 넘는다. 또한 국제 사회의 경제제재로 생필품이 서서히 부족해 지고 있다. 체첸공화국에 있는 내 가족들도 생필품을 확보하느라 힘들다고 한다. 또한 러시아인은 앞으로 국제 사회에서 거부당하는 일이 많아질 것이다. 내 지인 한 명은 스페인에서 호텔 예약을 하려고 했는데, 호텔 측에서 러시아인을 받을 수 없다면서 거부했다고 하더라. 그게 러시아인의 미래가 될 수 있다.” 

- 기자로서 어떤 일을 하려고 하나. 

“우선은 기사를 쓰고 다큐멘터리를 만들려고 한다. 미국의 유력지에 기고문을 보냈는데 실릴지 기다려보고 있다. 다른 유력지에서는 뒤늦게 협업 연락이 와서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우선은 두세 달 정도 여기 남아서 취재를 좀 하고 체첸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그곳에는 내 가족이 있고 엄마도 있다.” 

- 직장인 BBC 러시아 서비스도 영-러 관계 악화로 어려움을 겪을 것 같다. 

“그동안도 꾸준히 압력이 들어왔다. 러시아인 기자 개인을 상대로 ‘적을 위해 일하느냐’는 비난은 기본이었다. BBC를 영국의 선전매체라면서 비판하고 또 압력을 가하는 일은 꾸준했다.” (인터뷰했던 직후인 3일 오후, 러시아 현지에서 BBC.com 사이트 접속이 안 된다는 인디펜던트의 보도가 나왔다. 공식 차단 리스트에는 있지 않지만, 실질적인 차단 조치가 된 것으로 풀이된다.) 

- 이번 전쟁은 어떻게 끝날 것 같나. 

“체첸 내전 당시, 인구 100만 명 중 수십만 명이 참전해 10여 년을 싸웠다. 당시 러시아 정부는 48시간 안에 전쟁을 끝내겠다고 했었다. 우크라이나는 4000만 국민이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고 있다. 많은 생명이 희생되는 기나긴 전쟁이 될 것이다. 피해자는 우크라이나 국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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