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포트라이트’는 현직 기자에게 인기가 많았지만 많은 언론 지망생에게 필수 시청 영화로 꼽혔다. 2015년 작품으로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0년 영화제에서 다시 한번 소개됐다. 

이 영화는 미국의 유력 일간지로 꼽히는 보스턴글로브의 탐사보도 담당 스포트라이트팀이 가톨릭교회 보스턴교구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사건을 취재하는 과정을 다룬다. 2003년 퓰리처상을 받은 탐사보도 취재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는데, 영화에는 실제 기자의 캐릭터가 등장한다. 

보스턴글로브의 취재 과정에서 중심에 있었던 기자는 당시 스포트라이트팀장이던 월터 로빈슨(76)이다. 교수직을 거쳐 지금은 보스턴글로브의 대기자로 활약한다. 2월 21일 로빈슨 기자를 만났다. 

▲ 영화 ‘스포트라이트’ 포스터 
▲ 영화 ‘스포트라이트’ 포스터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탐사보도 기자인 로빈슨은 “모든 좋은 기자는 다 탐사보도 기자다”는 말로 대화를 시작했다. 독자의 알 권리를 위해 치열하게 취재하는 기자의 본분에 충실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탐사보도 전문기자가 됐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많은 한국 기자는 스포트라이트 영화를 보고, 기사 하나에 몇 달씩 매달릴 수 있는 환경과 지원을 부러워한다. 하루에 지면 기사는 물론, 온라인 속보까지 써야 하는 한국의 일선 기자 현실에서는 더욱 그렀다. 

하지만 로빈슨 기자가 밝힌 수치는 탐사보도가 깊이나 의미 외에도, 양적으로도 꽤 쏠쏠할 수 있다는 새로운 시각을 전해주었다. 스포트라이트팀은 5개월 동안의 사전 취재를 거쳐 1년여 동안 관련 기사를 썼다. 

처음 1년 동안 600개를 썼고, 전체 1년여 동안 900여 개를 썼다고 한다. ‘지쳤다’는 느낌이 들 때까지 말이다. 또 취재팀은 탐사보도 결과를 바탕으로 책을 1권 펴냈다. 로빈슨 기자 자신도 챕터 2개를 직접 작성했다고 한다. 

▲ 로빈슨 기자 
▲ 로빈슨 기자 

국내에서 고참 기자의 강의를 들으면 취재 무용담이 많았다. 무작정 전화를 돌린다던가 흔히 ‘뻗치기’를 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를 듣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로빈슨 기자가 워싱턴 지국 발령 시절, 가장 먼저 한 일이 전화 돌리기라는 이야기가 신선하게 다가왔다. 

“보스턴에서, 보스턴글로브는 제보 전화를 많이 받았다. 하지만 워싱턴에 오자, 이곳에는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 LA타임스, CBS, ABC, CNN, 폭스뉴스, 타임, 뉴스위크에 백악관 출입기자까지 다양한 경쟁자가 있었다. (새로 부임한 백악관 출입기자인) 내게 전화가 올 가능성이 없었다. 그때 백악관 전화번호부를 하나 받았다. 고위 당국자의 자리에 전화를 걸면 비서들이 전화를 받는데, 살펴보니 비서들은 오전 8시에 출근하고 고위 참모들은 오전 6시 30분에 출근을 하더라. 그래서 그 90분을 매일 나만의 전화취재 시간으로 삼았다.” 

당시 로빈슨 기자는 메트로팀, 정치부, 사회부를 거쳐 백악관 출입기자로 발령을 받은 상태였다. 지금의 언론환경과는 차이가 있겠지만, 당시 백악관 비서실 고위 간부가 전화를 직접 받아 취재에 응했다고 한다. 일선에 있는 기자로서 거장의 이런 발언을 듣고 나니 반성이 됐다. 

한국 등에서는 젊은 기자들이 비전의 부재를 이유로 기자직을 버리고 새로운 직업을 찾아 떠나는 것도 사실이다. 유튜브 등의 인기로 기성 언론의 권위가 떨어진 현상도 쉽게 목격할 수 있는 일이 됐다. 

하지만 로빈슨 기자는 “언론의 가치, 저널리즘이 사회에 줄 수 있는 변화의 의미를 믿지 않았다면 저널리즘에 계속 있지 않았을 것”이라며 “나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목소리가 되어 주기 위해 저널리즘을 한다”라고 말했다. 

그중에서 로빈슨 기자는 미국 사회에서 최근 몇 년 사이 활발한 지역 기반 비영리 언론의 가능성을 언급했다. 미국에서는 본래 지역 언론이 번성했지만, 최근 10여 년 사이에 많이 줄었다. 게다가 거대 헤지펀드 등이 지역 언론사를 인수해 구조조정을 하면서 저널리즘의 가치가 많이 퇴색했다는 것이 로빈슨 기자의 분석이다. 

다행히 최근 들어 뉴스가 박물관, 미술관만큼이나 중요한 공공재라는 사실을 알고 비영리 지역 언론의 후원자가 많아졌고, 이들이 지역 사회의 부정부패와 부조리를 밝히는 역할을 한다고 로빈슨 기자는 말했다. 

 

 

 

 

저작권자 © 스토리오브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