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타고니아 산야의 과나코
▲ 파타고니아 산야의 과나코

작은북 소리가 들려온다. 스네어 드럼(Snare Drum)의 바스락거리는 음색이다. 조용히 반복되는 리듬 속에서 과나코가 캥거루처럼 철조망을 가뿐히 뛰어넘는다. 윤동주가 이곳에 와서 밤하늘의 별을 셌을까. 백마 탄 이육사가 광야에서 목 놓아 우는가. 파타고니아의 드넓은 초원에 태고의 바람이 분다.

마에스트라 김봉미가 최근 롯데 콘서트홀에서 지휘한 라벨의 볼레로(Bolero)라는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으면서, 남아메리카 땅끝 마을의 전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회색의 대초원이 “169회나 반복되는 작은북의 리듬”처럼 한없이 아른거린다. 볼레로의 클라이맥스처럼 빙하가 흐르는 토레스 타워가 에메랄드빛 호수 끝에 우뚝 서 있다. 지구상에 이런 멋진 풍경이 있을까.

토레스 타워는 세 봉우리의 산이다. 사우스 타워가 2248m, 센터 타워가 2800m, 노스 타워가 2350m이다. 삼각의 봉우리가 이번 여행의 최종 목적지인 토레스 델 파이네(Torres Del Paine) 국립공원의 상징물이다.

▲ 토레스 타워  
▲ 토레스 타워  

파타고니아는 칠레의 중남부와 아르헨티나의 최남단 지역에 걸쳐있다. 남미 대륙의 땅끝 마을에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이 있다.

서울을 떠나 지구의 반 바퀴를 돌아서 이곳에 도착했다. 비행 거리만도 족히 2만 마일이 넘는다. 새해 아침을 미국 워싱턴DC에서 보냈다. 이후 다섯 남매가 칠레 여행을 위해 시애틀에서 뭉쳤다.

큰형은 새해 벽두부터 병원을 비울 수 없다고 했다. 코로나 정국에 ‘팀 닥터’가 필요하다는 형제의 성화로 출발 이틀 전, 시애틀에 도착했다. 둘째 형수는 출발 하루 전의 PCR 테스트에서 양성으로 나타났다. 비행기 표를 사놓고도 여행에 합류할 수 없었다. 결국 칠레 여행에는 4형제와 큰누나가 참여했다.

파타고니아는 지형적으로 여러 가지 면에서 알래스카와 비슷하다. 미주대륙의 서부는 파나마 운하를 중심으로 남북이 대칭적이다. 중심부에는 넓은 사막이 펼쳐진다. 중반부는 울창한 산림지역이 걸쳐있다. 이어서 남극과 북극에 가까운 양쪽 끝 지역에 드넓은 초원과 빙하가 쌓인 산악지대가 펼쳐진다. 알래스카가 미주대륙의 북쪽이라면 파타고니아는 남반부에 자리함이 주요한 차이다.

우리가 찾은 파타고니아의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은 칠레의 남쪽 끝에 있다. 남극대륙과 가장 가까운 지역이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 하늘은 맑았고 가랑비가 뿌렸다. 초여름 날씨였는데 다소 추웠다. 확 트인 평야에서 청량한 바람이 우리를 맞았다.

시애틀 집에서 1월 10일 아침 일찍 출발해 시택(Seatac) 공항에서 오전 11시 55분에 텍사스 댈러스행 아메리칸 에어라인을 탔다. 그날 저녁 8시 45분, 댈러스-포트워스(DFW) 국제공항을 이륙해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 11일 오전 9시 2분에 도착했다. 시애틀에서 산티아고 공항까지 꼬박 하루가 걸렸다. 안데스산맥으로 둘러싸인 분지인 산티아고에서 2박을 했다.

▲ 하늘에서 내려 본 산티아고 분지
▲ 하늘에서 내려 본 산티아고 분지

칠레는 어떤 나라일까. 한국이 칠레를 포함한 중남미 15개국과 외교관계를 맺은 지 올해로 30년이다. 그런데도 칠레가 남미국가이고 우리가 포도주를 대량으로 수입하는 나라 정도로만 기억했다. 한국이 1998년의 외환위기에서 벗어나 자유무역협정(FTA)을 처음 체결한 국가다.

무엇보다 칠레는 태평양 연안국가로 세상에서 가장 긴 나라이다. 남북의 길이가 자그마치 4630㎞다. 개성 아래 휴전선부터 한반도의 땅끝 해남까지가 400㎞ 정도다. 남한 길이의 11배가 넘는다. 안데스산맥이 칠레와 아르헨티나를 가른다. 칠레 면적은 한국의 7배로 7567만 ㏊다. 그 넓은 땅에 2000만 명 남짓이 거주한다.

구리와 리튬의 매장량 및 생산량은 각각 세계 1, 2위를 차지한다. 리튬은 4차 산업혁명의 원자재로 배터리와 반도체에 사용된다. 교육열이 높고 자원이 풍부해 남아메리카에서는 가장 부유한 나라에 속한다. 우리처럼 정치 민주화와 평등에 대한 열망이 높다. 자연을 사랑하는 국민의식이 높음을 이번 여행에서 깨달았다.

대한민국을 세계의 중심으로 본다면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파타고니아의 남부는 서울에서 지구촌의 남동부 끝에 있는 지역이다. 파타고니아를 다녀오지 않고는 남미 여행을 했다고 말할 수 없으리라. 해남을 가지 않고 국토 순방을 했다는 논리다.

▲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
▲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

산티아고 공항에서 1월 13일 오전 8시, 남미 최대항공사인 라탬(Latam) 에어라인을 타고 3시간 25분을 날아서 파타고니아 남부의 관문인 푼타 아레나스 공항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승합차로 4시간을 달렸다. 티에라 파타고니아 숙소의 매니저와 직원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다음 편에서는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를 소개한다. 이어서 5박 6일의 토레스 델 파이네 탐방기를 펼쳐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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