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금성(출처=고궁박물원)
▲ 자금성(출처=고궁박물원)

베이징(北京)이란 한자어는 북쪽의 수도를 나타낸다. 난징(南京)은 남쪽의 수도, 시안(西安)은 서쪽의 수도를 칭한다. 베이징은 한때 연경(燕京)으로 불렸다. 춘추전국시대에는 연(燕)나라의 수도였다.

금(金)과 원(元)에 이어서 명(明)과 청(淸), 그리고 현재 중국의 수도이다. 명의 영락제가 난징에서 베이징으로 지금부터 600년 전인 1421년에 천도했다. 천년 중국을 이해하려면 베이징을 보란 말이 있다. (이유진, ‘중국을 빚어낸 여섯 도읍지 이야기’, 5쪽)

방문객으로 중국 천년의 역사를 베이징 고궁에서 엿볼 수 있다. 천안문(天安門‧Tiananmen)이 베이징의 중심부에 위치한다. 천안문 광장은 가로 500m, 세로 880m로 면적이 0.44㎢이다. 여의도 공원의 2배에 가깝다.

그 뒤로 황금색의 자금성(紫禁城)이 자리 잡았다. 자금성의 색깔은 보라색이다. 하늘의 신전인 북극성을 상징한다면 자금성은 중화(中華)를 나타내는 땅의 궁궐이다. 명과 청의 22명 황제가 이곳에서 지냈다.

자금성은 영어로 Forbidden City,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1987년에 등재됐다(참조, 古宮博物院, www.dpm.org.cn). 금단의 성역이란 뜻이다. 자금성은 남쪽의 외조와 북쪽의 내전으로 구분한다. 황제가 외조에서 정사를 살폈으며 내전에 거주했다. 오문에 들어서면 외조삼대전(外朝三大殿)인 태화전(太和殿) 중화전(中和殿) 보화전(保和殿)이 일자로 위치한다.

보화전의 중앙 계단은 답도(踏道)로 불린다. 황제만이 가마를 타고 오르는 계단이었다. 하나의 돌로 거대한 대리석 조각품이다. 운룡대석조(雲龍大石彫)라는 이름이 붙었다. 9마리의 용이 구름 속에서 놀다가 승천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자금성의 대표 건물인 태화전은 황실의 공식행사 장소이다. 내전은 황제와 황족 그리고 환관만이 출입할 수 있었다.

▲ 하늘에서 본 자금성
▲ 하늘에서 본 자금성
▲ 운룡대석조
▲ 운룡대석조

자금성은 1987년에 <마지막 황제>의 무대로 영상화됐다. 서양의 관광객에게 최초로 공개된 시점이다. 첫 장면에서 서태후가 임종을 맞으며 푸이를 황제로 낙점하는 모습이 펼쳐진다. 그렇다면 마지막 황후 역은 누구였을까.

중국의 마지막 황제 푸이(溥儀)는 2살에 자금성에 들어와 열 살이 되는 1912년까지 머물렀다. 그 이후 일제의 괴뢰국인 만주국에서 허수아비 왕으로 지냈다. 소련군에 체포돼 중화인민공화국의 교화대상으로 교도소에서 지냈다. 풀려나서는 정원사로 지내다 생을 마감한다.

영화 <마지막 황제>는 푸이의 자전적 스토리로 1987년에 영화화됐다. 오스카 아카데미상 9개 부문을 석권했다. 국내에서는 군사정권이 막을 내리고 민주화와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진행될 때였다. 중국에서는 1989년 4월에 천안문 사건이 터졌다.

한 청년이 천안문에 진입하는 탱크 행렬을 막아 세웠다. 세계 미디어의 이목이 집중됐다. 그는 물론 그를 짓밟지 않고 장갑차를 세운 탱크 운전병은 어떻게 됐을까. 기자라면 탱크 행렬 앞에 선 청년뿐만 아니라 장갑차를 세운 운전병의 후속담을 취재해야 한다. 마지막 황제보다 마지막 황후에게 더 관심을 가졌던 이유랄까.

20대 시절에 기자로 할리우드에서 여러 유명 배우를 만났다. 당시 <마지막 황제>가 상영되면서 세계적으로 자금성에 관심이 높아졌을 때였다. 마지막 황후역의 조안 첸(Joan Chen‧陳冲)을 인터뷰할 기회가 찾아왔다.

할리우드의 카페에서 조안을 만났다. 아역배우 출신으로 미국에 오기 전에 상하이에서 활동했다고 한다. 대륙에서 사랑을 받다가 <마지막 황제>의 황후로 캐스팅됐다. 당시 26세였다. 몸을 꽉 조이는 청바지에 긴 머리의 여대생으로 나타났다. 캘리포니아주립대 노스리지(Calstate, Northridge)를 다닐 때였다.

영화 속 황후의 모습과 청바지를 입은 모습이 대조적이었다. 미국에서 중국계 연기자로 승승장구해 동양계를 대표하는 여우로 활약했다. 조안은 <색계>에서는 이부인 역할을 했다. 감독으로 메가폰도 잡았다.

자금성을 방문했을 때, 조안의 젊은 시절 모습이 떠올랐다. 젊은 기자역의 그레고리 펙이 <로마의 휴일에서> 외국 공주역의 오드리 헵번을 만났던 장면이 오버랩됐다. 세기적 명화의 촬영 장소가 트래블 저널리즘의 주요 소재로 등장하곤 한다.

워싱턴포스트에 게재된 <올림픽 게임을 이어지게 하자(Let the Games go on)>라는 조안의 칼럼을 찾아 읽었다. 미국에서 2008년 베이징 하계올림픽에 대한 거부 움직임이 있을 때였다. 그는 “중국인으로 세상에 대해 활짝 열린 마음을 갖도록 하자. 올림픽을 국제 정치의 희생양으로 만들지 말자”고 호소했다.

▲ CCTV 방송사가 베이징 다운타운에 있다.
▲ CCTV 방송사가 베이징 다운타운에 있다.

베이징을 찾는 서구 여행객이 <마지막 황제> 상영 이후 급격히 늘었다고 한다. 중국은 황제가 살던 성역을 고궁박물원으로 바꾸었다. 로마의 콜로세움이나 바티칸 성당,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쇤브룬(Schönbrunn) 궁전의 주변에만 가더라도 웅장한 모습에 가슴이 뛴다.

자금성 안을 여기저기 둘러보았으나 준비 없이 봐서인지 큰 감동이 없었다. 오히려 영화 속 첫 장면에서 자금성 내전을 볼 때가 더 황홀했다. 시카고에서 더글러스 맥아더의 환영 행진을 TV로 본 시청자가 현장의 참여자보다 더 감동했던 이치라고나 할까. (Lang & Lang, 1953, The Unique Perspective of Television and Its Effect, American Sociological Review, 18권 1호, 3-12쪽)

자금성은 동양에서는 가장 큰 궁전이다. 동서로 760m, 남북으로 960m로 총면적이 73만㎡로 여의도(290만㎡)의 4분의 1 정도이다. 자금성 안에는 980채의 건물과 8707칸의 방이 있다. 자세히 보려면 하루로 부족하다. 북문을 나서 경산에서 내려다봐야 자금성의 황금색 조화를 느낄 수 있다.

베이징은 세계적인 도시이면서도 넘쳐나는 인구와 하늘은 여전히 매연으로 흐릿하다. 두 차례의 올림픽을 치르면서 다소 좋아졌다. CCTV 방송사를 포함해 여기저기 새로운 마천루가 생기며 하루가 다르게 변한다.

백가대원(白家大院)이란 청조의 정원식 레스토랑에서 2박 3일의 베이징 여행을 마감했다. 고색창연하고 화려했다. 붉은색으로 치장한 중국 황실 분위기에 간단한 공연까지 곁들였다. 코로나 정국이 풀릴 때 인류 역사상 최초로 불을 사용했던 <북경유원인>의 유적지를 포함해 베이징의 명소를 다시 찾아보겠다.

다음 편에서는 코로나 정국을 뚫고 찾아간 칠레의 수도 산타아나와 지구 최남단의 파타고니아여행기를 다루겠다. 밤하늘의 에너지가 강풍을 타고 파타고니아에 모인다고 한다. 과나코가 뛰놀던 원초적 대자연을 상상하니 다시 가슴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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