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언론이 혁신의 정답처럼 얘기될 때가 많다. 학술적으로 반박하면 할 말은 없지만, 적어도 미디어 비평지에 나오는 전문가와 학자의 코멘트를 보면 비슷한 논조다. 거칠게 요약하면 퀄리티저널리즘을 통해 유료 독자를 발굴하라, 미국 유력지를 보라는 이야기로 요약할 수 있지 않나 싶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이번 시리즈를 준비하면서 필자에게 많은 조언을 했던 이가혁 JTBC 기자(전 팩트체크팀장) 역시 “미국 언론을 정답처럼 여기는 경우가 많고, 나 역시 그랬다”면서 “하지만 이곳 역시 치열한 고민이 이어지는 현재 진행형이었다”고 말했다. 

미국 톱 매체 기자가 아니라 소위 ‘나머지 세계’ 기자와 이야기할 때는 한국 현실이 그리 나쁘지 않게 보일 때가 있다. 필자가 공부했던 애리조나대만 하더라도 국내 주요 언론사의 매출이나 처우, 광고 및 구독 현황을 들으면 부러워하는 눈빛을 쉽게 볼 수 있다. 어떤 1년 차 미국 기자는 “내가 한국 매체로 가면 안 되느냐”는 농반진반으로 말했다. 동유럽이나 개발도상국 기자는 말할 것도 없다. 

시리즈를 마치며 각국 언론인과의 만남에서 느꼈던 미래전략과 생존에 대한 키워드를 공유하고자 한다. 

① 퀄리티 저널리즘 

퀄리티 저널리즘과 탐사보도가 질적 저널리즘뿐만 아니라 양적으로도 얘기가 된다는 월터 로빈슨 보스턴글로브 대기자의 이야기가 가장 머릿속에 남는다. 탐사보도에 국한하지 말고, 어떤 특종이나 아젠다를 바탕으로 의제와 독자의 공분을 이끈다면 클릭이나 광고 등 양적인 측면에서 승산이 있다는 이야기로 풀이될 수 있다. 데이터저널리즘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유료 독자층을 키우는 샌프란시스코크로니클 역시 좋은 사례다. 

② 프리-미엄과 회원제 

한국 언론, 그중에서도 주류 언론의 현실은 ‘미지근한 주전자’로 요약할 수 있다. 그동안 호시절을 누렸고 아직은 무난한 상황 속에서 버티는데, 미래는 갑자기 추워지거나 매우 뜨거워 버틸 수 없다는 이야기다. “힘이 있을 때 혁신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대부분 공허한 구호로 그치고 “그래서 우리는 안 된다”거나 “지면 위주의 사고를 바꾸지 못했다”는 푸념이 나온다.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렇다고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 미국에서는 사모펀드가 지역신문을 인수해 돈이 되는 부동산 등 자산을 몽땅 팔아치우고 직원을 정리해고한 뒤 재매각해 이익을 남기는 일이 눈에 띄고 있다. 구조조정으로 비용을 줄이는 언론사도 쉽게 볼 수 있다. 다른 한 편에서는 독자를 한 명이라도 더 유치하기 위해 소위 프리-미엄(free-mium) 전략을 쓰는 곳도 있다. 그렉 버튼 애리조나리퍼블릭 편집국장 겸 USA투데이 서부취재본부장에 따르면 디트로이트프리프레스 등이 대표적 사례다. 

▲ 애리조나리퍼블릭 본사 
▲ 애리조나리퍼블릭 본사 

국내에서도 프리-미엄까지는 되지 않지만 무료 회원에게만 심층 기사를 제공하는 시도를 찾아볼 수 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그렇다. 조선일보는 충성도 높은 독자층을 바탕으로 회원제(로그인 월)를 만들었다. 하루에 5건 이상의 기사를 읽으려면 회원 로그인을 해야 한다. 가입자에게는 뉴스레터를 서비스하면서 회원을 유지하고 확대하는 전략을 쓴다. 중앙일보 역시 ‘나는 고발한다’ 등 오피니언에서 강점을 나타내며 회원을 모으는 중이다. 또한 팩플, 헬로패런츠 등 회원전용 콘텐츠를 강화하는 점이 눈에 띈다. 한국경제도 로그인 월 도입에 들어갔다. 

③ 니치 마켓과 미디어 스타트업 

미국 저널리즘스쿨 산책에서 제레미 캐플란 교수가 말했던 포인트이기도 하고, 이번 시리즈에서 닉 팰선 리하이밸리라이브 편집국장이 말했던 방향이기도 하다. 쉽게 말해 세부적인 분야에서 나만, 아니면 우리 매체만 쓸 수 있고 타깃 독자가 원하는 기사를 쓴다면 독자가 돈을 주고 구독한다는 이야기다. 일반적인 종합뉴스가 아니라 ‘니치 마켓’을 대상으로 하는 기사가 된다는 뜻이다. 독자 밀착뉴스를 추구하는 ‘세도나 레드 록 뉴스’ 등이 자신 있게 유료화를 내세우는 방법도 비슷한 맥락이다. 

니치 마켓 타깃 뉴스 서비스는 기성 언론의 수익 구조에서 볼 때는 금액이 미미하다는 점이 문제다. 저널리즘 관점에서는 부정적인 사례지만, 수익만 놓고 보면 일부 미국 사모펀드처럼 오래된 지역신문을 인수해 부동산 사업과 구조조정을 하는 편이 돈이 될지 모르겠다. 국내에서도 많은 언론사가 버티컬 서비스를 내세우는 사내 벤처를 출범했지만 꾸준히 잘 되는 곳은 손에 꼽힌다. 여기에 대해서는 미국 언론인도 속 시원한 답을 내놓지는 못했다. 일부 미국 지역신문에서는 부고 기사를 수익과 연계하지만, 이 역시도 국내의 서울 및 지역 유력지에서는 미미한 수익모델이 아닐 수 없다. 

또 해외라고 해서 미디어 스타트업에 어려움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필자와 함께 공부했던 구글 뉴스룸 리더십 프로그램의 아시아태평양지역 펠로우 중에서도 국내 수준에서 따라할 만한 프로젝트는 두세 건 정도로 꼽힌다. 그중에서도 일부는 자국 상황이 녹록지 않아 애로사항이 있어 보였다. 이에 대해 어느 아시아 지역 기자는 “광고나 후원 시장이 매우 열악하고, 해외 지원을 받으면 정치적 공격을 받을 수 있어 수익화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④ 프리랜스와 N잡의 도래 

국내 언론사에서는 젊고 유능한 인재의 유출이 문제다. 당장 언론사 노동조합의 노보만 보더라도 젊은 기자의 사표를 다루는 기사가 자주 나온다. 한국 언론계는 정규직 위주이고, 기자가 편집국 밖에서 무언가 일을 하는 모습이 아직은 남의 일이라는 인식이 있다. 

반면에 해외에서는 기자 처우나 직업적 안정성이 한국보다 더 떨어지는 곳도 많다. 미국에서도 프리랜서 기자가 적지 않다. 한국 역시 프리랜스나 소위 ‘N잡’으로 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사라 먼치 기자의 사례를 소개한 이유다. 10여 년 전, 편집국 기자를 자문했던 노무사가 “미래의 기자는 지금의 기자만큼 행복할 수 없다”고 했다. 매년 점점 더 현실로 다가오는 말이다. 

이 글을 송고하기 며칠 전, 동료 기자들과 송별 모임을 하기로 했다. 어느 기자가 뉴욕타임스에서 갑자기 기사를 써달라고 해서 취재를 해야 한다며 올 수 없다고 연락했다. 프리랜서로서 이번에 기사를 미룬다면 앞으로 또 기회가 올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얼굴을 보지 못하고 작별해서 아쉬웠지만 그의 상황에 충분히 공감했다. 

달라진 환경에는 분명히 기회가 있다. 예전처럼 언론환경이 ‘호시절’이었다면 뉴미디어나 30대의 미디어 스타트업 최고경영자(CEO)가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혜안과 노력이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뉴욕타임스가 될 수 없다. 가능했다면 혁신보고서가 외부에 알려졌던 8년 전, 이미 따라 했을 것이다. 환경이 너무 다르고 독자층과 행동 양태가 다르다. 게다가 한국 언론은 포털 환경과 비교적 안정적인 광고‧구독 시장을 누렸던 것도 사실이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한국 언론만의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한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 고민은 현장 기자 모두의 과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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