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구 서숙자 씨(62)는 평소처럼 신사굿모닝마트에서 저녁 찬거리와 집 앞에 심을 고추 모종 한 봉지를 샀다. 양손 가득 짐을 들고 마트 앞, 상신초등학교 입구 정류장에서 은평 10번 마을버스를 탔다. 5월 3일 오후 6시였다.버스를 타자 안내방송이 나왔다. ‘이곳에서부터는 경사가 아주 심한 구간을 운행하오니 손잡이를 꼭 잡아 주시기 바랍니다.’버스는 긴 오르막을 올랐다. 과속 방지턱을 두 번 지나 조금 경사가 완만해지나 했더니 다시 가팔라지기를 반복했다. 끝날만한데 끝나지 않는 오르막을 오르니 행운슈퍼 정류장이 나왔다. 서
안방에서 고성이 멈췄다. 어머니가 문을 열고 나왔다. 외숙모와 말다툼을 했던 모양이다. 어머니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계집애가 뭔 말 하는지도 모르겠어.”외숙모 부부에게는 아이가 2명 있었다. 한국말이 서툴면서 아이를 어떻게 키우냐며 어머니는 못마땅해했다. 또 시누이를 어려워해야 하는데 위아래가 없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어머니는 화풀이하는 내내 손을 떨었다.두 사람이 화해하도록 외삼촌이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살면서 명절에 오지 않았다. 외숙모는 그때부터 기자의 가족과 연을 끊었다. 결혼한 지 8년이 되던 해
경기 안산시의 온누리M센터에서 미얀마인 망 씨를 만났다. 한국에서 20년 살았다. 그를 통해 미얀마인 7명과 대화했다. 6명은 한국에 온 지 3년이 되지 않는다.“회사에서 사장님 등 이해가 안 갈 때가 많고 한국어를 못하니까 자신감이 떨어진대요.” 미얀마인의 고충을 망 씨가 통역했다.평소에 통역이 없다면 어떻게 소통하는지 물었다. “언어 때문에 많이 힘들어요. 배우고 싶은데 우리 다 근로자라 시간이 없어요. 나오라고 하면 가서 일해야 해요.” 안산시에서 외국인을 위해 한국어 프로그램을 마련했지만 참여할 수 없다. 시간을 내기가 힘들
경기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에서 한국인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공원에 모여 대화하는 사람은 대부분 외국인이었다. 취재팀은 소수자가 된 느낌이었다. 원곡동의 한국인은 외국인을 어떻게 생각할까.다문화 어울림공원으로 가다가 한국인 상인 부부를 만났다. 20년째 주말마다 원곡동에서 옷을 판다. 앞쪽 매대부터 천장까지 옷이 가득했다. 아이나 여자 옷은 거의 없었다. 손님은 주로 공단에서 일하는 남성 근로자다.부부는 2000년대 초반까지 외국인이 드물었다고 회상했다. 그 후 5년 만에 외국인이 많아졌다고 했다. 원곡동
중년 남성이 경기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 공원 앞에서 취재팀을 반겼다. 문화인류학과 학생이냐고 물었다. 안산시 외국인주민정책과의 박재현 주무관. 대학교수와 문화인류학과 학생이 연구나 과제 때문에 매주 찾아와 인터뷰를 요청한다고 했다.그는 안산시를 치안이 안정된 도시라고 설명했다. 원곡동 일대를 순찰할 때는 곤봉을 휴대하지 않았다. 규정상 입던 방검조끼도 부임 1주일 후 벗었다.로보캅 순찰대는 안산시가 2008년 만든 치안봉사 단체다. 안산시 단원구와 상록구에 각각 210명씩, 2인 1조로 학교 인근과 공원을 순찰한다. 초중고 주변의
안산다문화교회 박천응 목사(59)는 원곡동의 변화를 오래 지켜봤다. 2006년 6월 원곡동에서 ‘국경없는마을’ 운동을 시작했다. 그는 안산시 다문화 정책이 다수자 중심이며 내·외국인이 서로 존중하는 공간은 아니라고 주장했다.“(안산시 다문화 정책은) 이주민이 한국 사회에 어떻게 잘 적응하는가를 다문화로 본다. 관리와 정책의 대상으로서의 다문화인 셈이다.”박 목사는 여성가족부가 추진하는 ‘다양한 가족’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1인 가정, 한부모 가정 등 여러 형태의 가족을 인정하겠지만 실제 추진하는 내용을 보면 그게 아니라는 얘기.
물안경을 쓴 여성이 낫을 들고 바다로 들어간다. 물속은 에메랄드 빛깔. 울퉁불퉁한 바위 옆으로 미역이 보인다. 물고기는 카메라에 놀라 반대 방향으로 도망친다. 부력 기구인 테왁과 해산물이 가득한 망사리가 눈에 띈다.여성은 수면 위로 올라와 입을 벌리고 숨을 내쉰다. 바다로 매일 아침 출근하는 제주 이호바다의 2년 차 해녀, 이유정 씨. 취재하러 제주로 갔는데 날씨 탓에 물질이 어렵자 이 씨는 기자를 위해 전날 영상을 보여줬다.요즘 해녀의 모습이 궁금해서 인스타그램으로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는 바로 수락했다. 5월 16일, 종일 따라
“그냥 한국 와서 살았으면 좋겠어….” 한광자 씨(77)는 최근 3개월 동안 마음 편히 잠든 날이 없다. 미국 뉴욕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딸이 걱정돼서다. 3월 16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백인 남성의 총기 난사로 한인 여성 4명을 포함해 아시아계 6명이 목숨을 잃었다.뉴스를 보자마자 한 씨는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화음이 울리는 동안 침을 세 번 삼켰다. 딸이 전화를 받자 한 씨는 “미국은 무서우니 밖에 나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한 씨는 TV 뉴스를 볼 때마다 한숨을 푹푹 쉬고 가슴을 쓸어내린다. 미국에서
피고인 조주빈, 강종무. 서울중앙지법 서관 2층 로비에서 두 이름을 우연히 봤다. 1월 20일, 오늘의 공판 안내 게시판에서였다.사건명은 유사강간 등 범죄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스토리오브서울 취재팀이 재판 방청기를 쓰려고 법원을 두 번째로 찾은 날이었다.취재팀은 n번방과 박사방 사건을 작년 3월에 처음 알았다. 언론 보도를 통해서다. 운영자는 미성년자 성착취물을 제작해 텔레그램 채팅방을 통해 배포했다. 26만 명이 보려고 참여했다고 했다.주변 사람 중에서 텔레그램 가입자가 있으면 의심하라고 했다. ‘알고
최주연(26) 씨는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시간을 내서 독서하기가 쉽지 않았다. 1주일 목표를 정해서 읽으려 했지만 혼자서 했던 약속이라 자주 어겼다.그는 SNS에서 알게 된 앱 ‘챌린저스’를 다운로드했다. 2주 동안 주 5일 이상 책을 읽겠다는 약속에 돈 1만 원을 걸었다. 퇴근하고 다른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도 인증이 생각나서 자리에 앉아 책을 폈다.읽기 전의 1쪽, 마지막으로 읽은 1쪽. 사진 2장을 앱에 올렸다. 인증만을 위해서 자리에 앉았다가도 막상 앉으면 5~10쪽씩 읽게 됐다. 습관의 힘이다.그는 3월 1일부터 14
자출족(자전거 출근족)인 이임광 씨(58)는 지난해 12월 청계천 자전거도로로 출근하다 사고를 당할 뻔했다. 보행 중인 중년 여성을 피하려다 중심을 잃으면서다.자전거도로가 차도보다 15㎝ 이상 높아 이 씨는 발을 헛디디고 차도로 넘어졌다. 손으로 바닥을 짚고 몸을 빠르게 일으켰다. 이 씨는 아찔했던 상황을 회상하며 “버스나 트럭 등 큰 차량이 지나갔다면 중상 내지는 사망 정도의 사고가 났을 것”이라고 말했다.서울시가 개편에 나선 청계천 자전거도로가 여전히 위험하다. 자전거도로가 인도와 같은 높이로 설치되면서 사고 가능성이 높다.서울
뒤바뀐 공간장애인 단체들은 서울 강서구에 2024년 준공 예정인 ‘어울림플라자’에 대해 주객이 전도됐다고 지적했다. 4년여의 협의 끝에 사업이 진행되는 점은 환영하지만 장애인을 위한 공간이 줄었기 때문이다.어울림플라자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이용하는 전국 최초의 복합 문화복지 공간이다. 장애인 연수시설과 장애인치과병원, 도서관, 체육센터, 공연장, 수영장 문화센터가 들어선다.서울시는 2013년 지방 이전이 확정된 강서구 등촌동의 한국정보화진흥원 부지를 매입하고 ‘서울 장애인플라자’ 건립을 계획했다. 주차장 확대 등 주민 요구를
“지금 방청석에 앉아 계신 분들은 다 어떻게 오셨죠?” 2월 16일, 서울중앙지법 서관 523호에서 박현숙 판사가 질문했다.경위가 “방청하러 오신 분들이에요”라고 대신 대답했다. 뒤를 돌아보니 남성이 메모를 열심히 했다. 법정 문을 나서면서 그에게 물었다. “방청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법률소비자연맹 봉사하러 왔어요.” 지구과학교육을 전공하는 정근규 씨(22)는 작년 여름부터 연맹의 봉사자로 법정을 모니터링한다. 겨울방학 동안 1주일에 두세 번 법원을 방문한다.재판이 열리는 동안 방청석에서 내용을 받아 적는다. 가장 중요한 점은
최서범 씨(20)는 올해 경기도 시흥의 대학에 입학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입학 전날까지도 학교 입학처 홈페이지에 정시 추가 모집 창이 올라왔다. 추가 모집은 보통 2차 또는 3차에서 끝난다고 알았는데 최 씨가 입학한 대학의 추가 모집은 수시 5차, 정시 6차까지 열렸다.이유는 나중에 알았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어느 교수가 “올해 지방대는 미달이 많이 났다. 어떤 학교는 장학금을 주는데도 미달”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기서도 열심히 공부하면 좋은 곳에 취업할 수 있다”고 했다.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따르면 올해 전국
정신장애인은 조현병과 조울병, 분열정동장애로 1년 이상의 치료를 받고도 일상생활을 혼자 하기 힘들다. 주민센터와 구청은 장애인복지를 안내하는 1차 기관이지만 정신장애인은 재활시설을 찾기까지 발품을 팔아야 한다.김재완 씨(48)는 서울시 은평구의 동주민센터 3곳을 3월 4일 방문했다. 갈현1동주민센터에 들어가서 장애인복지과로 향했다. 정신재활시설이 주변에 있는지를 묻자 공무원이 를 펼쳤다. 서부장애인종합복지관의 전화번호가 있었다.정신장애인이 갈 수 있냐고 물었는데 공무원은 전화해야 안다고 말했다. 불광1동과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온라인에서 물건을 구매하거나 음식을 배달시키는 시민이 늘었다. 일회용품 배출량이 증가한 이유다.환경부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생활폐기물의 하루 평균 발생량은 5349t으로 재작년 같은 기간보다 9.4% 늘었다. 생활폐기물에서 종이류는 23.9% 증가했다.통계청의 2020년 10월 통계를 보면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14조 2445억 원으로 전년의 같은 달보다 20.0% 증가했다. 그중 배달 음식은 전년 대비 같은 달보다 71.6% 증가했다.배달음식 수요가 늘수록 배달 용기에 사용하는 플라스틱은 15%, 비닐은 1
선처하면 정말 반성할까. 취재팀은 재범을 저지른 피고인을 만났다. “앞으로는 유혹에 안 빠지고 열심히 살겠습니다.”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기소된 피고인의 말이다.판사는 “예전에도 마약 관련 실형을 받았고, 또 하면 실형이 더 높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 텐데 다시 범죄를 저지른 특별한 계기가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피고인은 “친구가 유혹했다. 유혹을 못 참고 또 저질렀다”고 했다.검사는 징역 2년, 추징금 30만 원을 구형했다. 피고인은 “매일 반성하고 있습니다. 사회 복귀를 위해 약물 치료도 받고 열심히 살겠습니다”라
판사가 “OOO 씨!”라고 외쳤다. 피고인이 방청석에서 일어났다. 흰색 와이셔츠에 깔끔한 남색 정장. 그는 두 손을 무릎에 올리고 변호인과 눈을 맞췄다.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제가 말하면 안 되나요?” 피고인이 증인석을 쳐다봤다. 변호인이 쏘아붙이자 증인이 흥분했다. 변호인은 “제가 질문하면 답하시면 됩니다”라고 말했다.증인은 검사와 차분하게 대화할 때와 달랐다. “(피고인 때문이 아니라) 기존 사업에 지장이 갈까 봐 못 한 것 아닙니까?” 변호인이 지적했다. 증인의 얼굴이 붉어졌다. 신경전으로 법정 안에 긴장감이 맴돌았다.
압수수색은 영장이 있거나 당사자가 동의하면 증거물을 수색하고 압수하는 절차를 의미한다. 검찰이 모든 사건에서 압수수색을 하지는 않는다. 혐의가 어느 정도 인정되고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거나 피해가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면 법원에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한다.스토리오브서울 취재팀은 재판을 보면서 압수수색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을 들었다. 서울중앙지법 서관 523호에서 ‘정진웅 검사 독직폭행 사건’ 재판이 1월 20일 있었다. 사건명은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이다.독직폭행은 법률 용어다. 재판, 검찰, 경찰 기타 인신구속에
검사는 피고인의 죄를 입증하려고 한다. 피고인과 변호인은 죄를 인정하지 않거나 형량을 낮추려고 한다. 법정에 긴장감이 감도는 이유다.서울중앙지법 서관 412호에서 피고인 조주빈과 강종무의 재판이 열렸다. 1월 20일, ‘N번방’ 사건이었다. 유사강간 등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이다. 조주빈 씨(일명 박사)는 2019년 8월부터 2020년 3월까지 박사방 범죄수익 1억 800여만 원을 은닉한 혐의다. 강종무 씨(일명 스토커)는 2019년 12월, 가상화폐 환전 업무를 맡았다. 환전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개인정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