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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의 어제 그리고 오늘 ② 말이 통하지 않는다
김수아‧김정현 기자 | 승인 2021.06.27 20:33

 

경기 안산시의 온누리M센터에서 미얀마인 망 씨를 만났다. 한국에서 20년 살았다. 그를 통해 미얀마인 7명과 대화했다. 6명은 한국에 온 지 3년이 되지 않는다.

“회사에서 사장님 등 이해가 안 갈 때가 많고 한국어를 못하니까 자신감이 떨어진대요.” 미얀마인의 고충을 망 씨가 통역했다.

평소에 통역이 없다면 어떻게 소통하는지 물었다. “언어 때문에 많이 힘들어요. 배우고 싶은데 우리 다 근로자라 시간이 없어요. 나오라고 하면 가서 일해야 해요.” 안산시에서 외국인을 위해 한국어 프로그램을 마련했지만 참여할 수 없다. 시간을 내기가 힘들어서다.

온누리M센터는 온누리교회가 외국인 근로자를 돕기 위해 세웠다. 법률상담, 의료, 언어 교육 등. 지난해부터 코로나 19로 한국어 교육을 포함한 프로그램 운영이 어려워졌다.

미얀마인은 토픽(TOPIK) 한국어 능력 시험 1급을 취득해야 근로자 비자를 받는다. 온누리M센터 김의겸 목사는 “교류할 때 언어 때문에 문제가 되죠. 사실상 우리가 영어 잘한다고 해서 미국에 가면 얼마나 고생합니까”라고 말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임금을 못 받아도 따지기 어렵다. 망 씨는 “문제가 생겼을 때 도와줄 센터가 더 생기면 좋겠다. (7명 중 1명이) 지금 임금이 두 달 밀렸는데 받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외국인 근로자를 돕는 센터가 있어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당장 도울 사람이 없다.

그래도 그들은 안산시가 편하다고 했다. “안산에 오고 싶다. 다른 곳은 다 한국인인데 여기는 다 외국인이라 마음이 너무 편하다.”

안산시는 다른 지역보다 도움을 얻기가 쉽다. 외국인이 많아서다. 미얀마인은 “안산에 (외국) 가게나 공장이 많고, 외국인이 다 같이 사니까 물어볼 사람도 많아서 좋다”고 했다.

▲ 안산이슬람센터

‘ANWAR’S HALAL MART.’ 향신료가 가득했다. “(카레) 주황색이 조금 더 맛있어요. 무슬림 아니어도 다 먹을 수 있어요.” 모하마드 사하아름 씨가 유창한 한국어로 말했다. 그는 한국어를 포함해 8개 국어를 한다.

사하아름 씨는 1996년 처음 한국에 와서 2003년부터 안산시에 살았다. 2004년 한국으로 귀화했다. 당시 ‘광림텍’이라는 회사에서 플라스틱 사출 기술자로 근무했다. 통역 일도 했다. 그가 도왔던 파키스탄과 스리랑카 사람이 종종 찾는다.

“여기 파키스탄 가게 많은데, 나한테 오는 거 보면 고맙다고 오는 것 같아요.” 어느 파키스탄인은 사하아름 씨에게 통역 도움을 받았다. 그 후 매달 이곳에 들러 할랄 음식을 산다.

사하아름 씨는 안산시 공공기관에서 통역을 요청받을 때가 있다. 그에 따르면 원곡동에 사는 방글라데시인 중에서 통역이 가능한 사람은 10명 정도다. 그는 통역을 하고 수당을 받았다. 지금은 돈을 받는 통역은 하지 않는다.

작년에 교통사고를 당하고 사업에 집중하기로 했다. 주변에서는 아직도 부탁한다. 2주 전에는 부산에서 임금을 받지 못한 노동자를 도왔다. 거리가 멀어 직접 가지 않고 부산의 노무사를 연결해줬다.

▲ 안월의 할랄마트

사하아름 씨도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 광림텍의 공장장으로 근무하면서 다른 외국인에 비해 월급을 2~3배 받았다. 한세준 씨가 소개했다.

한 씨는 원곡동 ‘해피스타 푸드 앤 트레블’을 운영한다. 사하아름 씨는 2002년 방글라데시 영사관에서 한 씨의 아내를 만났다. 한 씨는 아내에게 사하아름 씨의 연락처를 전달받고 일자리를 소개했다.

사하아름 씨는 공장장으로 일하다가 2006년에 한 씨와 사업을 시작했다. 할랄 음식 식자재 가게는 장사가 잘됐다. 원곡동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택배도 보냈다. “오늘도 원래 택배 보내는 날인데 석가탄신일, 휴일이라 많지 않죠. 지난주 라마단 끝나고는 바빴어요.”

지금은 단원구의 34평 아파트에 산다. 코로나 19로 아내와 아들이 방글라데시로 돌아가기 전까지 함께 살았다.

그는 외국인을 자주 돕는다. “여기 처음 오면 먹을 것 없어서 제가 식품 12만 원어치 보내주고 그래요.” 월세를 내기 힘든 외국인이나 새로 이주한 외국인의 적응을 돕는다고 했다.

언젠가 외국인을 도와줬더니 취업하고 20만 원을 보냈다고 한다. 사하아름 씨는 돌려줬다. “안 줘도 되는데, 내가 다음에 다 자리 잡고 달라고 했어요.” 그는 중동이나 아프리카에서 난민 비자로 들어온 외국인이 특히 어려움을 겪는다고 했다.

취재팀은 원곡동에서 “언어가 안되니까”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언어 장벽은 외국인 사이에 무관심을 만든다. 무관심은 편견으로 이어지기 쉽다.

신화여행사 직원은 모두 중국 동포다. 중국인의 비자와 외국인등록증 업무를 돕는다. 외국인이 어떻게 지내는지 직원에게 물었다. 그는 “동남아 사람은 잘 모른다”고 했다.

다문화 어울림공원에서 만난 중국 동포 박순화 씨도 마찬가지다. “같이 살긴 살아. 우리 동에 이슬람, 방글라데시, 이런저런 사람 살아. 그런데 말을 할 줄 몰라서 안 통하지.”

한세준 씨는 방글라데시에서 왔다. 한국인 아내와 결혼하고 귀화했다. 그는 “(중국 사람이) 다른 나라 사람에게도 관심 있을 수는 없죠. 소통 안 되니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 사람은 그들끼리 지낸다고 했다.

중국인 김용 씨는 원앰 인력 사무소에서 일한다. 외국인 근로자의 일자리를 주선한다. 동남아 근로자는 쓰지 않는다고 했다. 접촉도 자주 하지 않는다. “깜쟁이나 베트남, 필리핀 이런 애들이 많아. 주말 되면 걔네는 회사에 있다가 다 나오는데, 교류는 잘 안 해.”

그는 러시아, 우즈베키스탄인도 대화가 잘 안 된다며 불평했다. 반면 “조선족은 한국말을 잘하지는 못해도 기본은 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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