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다문화교회 박천응 목사(59)는 원곡동의 변화를 오래 지켜봤다. 2006년 6월 원곡동에서 ‘국경없는마을’ 운동을 시작했다. 그는 안산시 다문화 정책이 다수자 중심이며 내·외국인이 서로 존중하는 공간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안산시 다문화 정책은) 이주민이 한국 사회에 어떻게 잘 적응하는가를 다문화로 본다. 관리와 정책의 대상으로서의 다문화인 셈이다.”

박 목사는 여성가족부가 추진하는 ‘다양한 가족’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1인 가정, 한부모 가정 등 여러 형태의 가족을 인정하겠지만 실제 추진하는 내용을 보면 그게 아니라는 얘기.

개선 방법은 없을까. 빅데이터 분석 사이트 ‘섬트렌드(SOMETREND)’에 따르면 다문화는 걱정되다, 힘들다, 황당하다, 범죄, 불법 등 부정적인 단어와 함께 주로 사용됐다.

이런 이미지를 개선하려고 안산시는 다문화가 아니라 상호문화에 눈을 돌렸다. 유럽평의회와 유럽연합이 2008년부터 주관한 도시 계획 프로그램이다.

안산시는 지난해 2월 상호문화 도시로 지정됐다. 세계에서 137번째, 아시아에서는 일본의 하마마쓰에 이어 두 번째다. 상호문화 도시 지수에서는 100점 중 80점을 받았다. 규모가 비슷한 도시 26개 중 4위였다.

취재팀은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안산시 외국인주민정책과에 자료를 요청했다. 상호문화 도시 선정 준비계획 및 설문 지표와 답변을 받았다. 자료에 따르면 다문화가 부정적인 언어로 전락해 편견과 오해를 낳자 안산시는 2019년부터 변화를 준비했다.

상호문화 도시 신청 절차는 다음과 같다. 유럽평의회와 유럽 연합에 프로그램 참여 의사를 제출한다. 연회비는 5000유로(한화 680만 원)이다.

유럽평의회가 제공하는 상호문화지표 90개에 답변을 작성해 보내면 실사단이 방문해서 평가한다. 코로나 19로 실사단이 입국하지 못하고 서류로만 평가했다.

지표별 분석 총평을 보면 기업 및 노동, 미디어 및 커뮤니케이션, 상호작용 분야에서 100점 만점을 받았다. 언어는 59점, 의지는 58점, 신규 이주민 환대 분야는 57점으로 낮았다. 참여 분야는 45점이었다. 외국인의 행정 참여와 문화 융합을 위한 정책은 미흡하다는 뜻이다.

▲ 반월공단 골목

이화여대 다문화연구소 장한업 교수는 10년 이상 상호문화를 연구했다. 그는 다문화 정책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이 1970년대부터 수십 년간 단일민족과 단일 의식을 강조하면서 외국인이 들어오면 한글을 가르치고 한복을 입혔다. 안산시도 마찬가지.

다문화가 동화와 공생이라면 상호문화는 인정과 상생이다. 안산시가 상호문화 도시 평가에서 4위를 했다고 보도자료를 내놓자 장 교수는 놀랐다. 점수와 순위를 매기기는 하지만 도시 간 경쟁을 위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장 교수는 순위를 내세우는 홍보에 우려를 나타냈다. “점수를 쉽게 거론하고 공포하는 정책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상호 문화 도시가 지향하는 것과 다른 왜곡이다.”

취재팀은 유럽평의회 이바나(Ivana) 대표에 이메일을 보냈다. 그는 상호문화 도시가 사회 구조와 문제를 파악하고 위험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로그램의 목적은 다양성이 공존 수준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주민이 현지 언어를 배우도록 하고, 지역 주민이 이주민의 언어적 다양성으로부터 혜택을 받도록 하는 것이 (안산시와) 함께 다루려고 하는 과제 중 하나다.” 그는 코로나 19가 진정되면 안산시를 방문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했다.

취재팀은 5월 19일 마지막으로 안산시에 갔다. 반월공단을 찾아갔다. 공휴일이라 조용했다. 경비원 이상석 씨(82)는 이날도 출근했다가 귀가할 준비를 하던 중이었다. 그는 안산시에서 70년 가까이 살았다.

“그때는(1995년) 안산역에서 이곳(공단)을 바라보면 살벌했어. 아무것도 없었어. 인부가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지낼 수 있는 목조 건물만 지어 놨어.”

공단이 생기면서 외국인이 점점 늘었다. 그는 외국 문화가 불편하지 않았다고 했다. 필리핀 근로자와는 말이 안 통하니까 수화를 많이 했다고 한다.

취재팀은 다문화 특구 거리로 돌아왔다. 처음에는 낯설었던 간판이 이제는 친절한 이정표가 됐다. 길거리 음식에서 나오는 냄새가 향수처럼 느껴졌다. 알 수 없는 말이 음악처럼 들렸다. 거리를 계속 걸었다. 처음보다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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