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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의 어제 그리고 오늘 ③ 한국인이 떠난다
김정현‧김수아‧이세희 기자 | 승인 2021.06.27 20:31

 

경기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에서 한국인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공원에 모여 대화하는 사람은 대부분 외국인이었다. 취재팀은 소수자가 된 느낌이었다. 원곡동의 한국인은 외국인을 어떻게 생각할까.

다문화 어울림공원으로 가다가 한국인 상인 부부를 만났다. 20년째 주말마다 원곡동에서 옷을 판다. 앞쪽 매대부터 천장까지 옷이 가득했다. 아이나 여자 옷은 거의 없었다. 손님은 주로 공단에서 일하는 남성 근로자다.

부부는 2000년대 초반까지 외국인이 드물었다고 회상했다. 그 후 5년 만에 외국인이 많아졌다고 했다.

▲ 안산시 다문화거리의 공원

원곡동유리샷시 사장 이상돌 씨(63)는 45년 전, 안산시에 왔다. 정부가 안산시를 신공업도시 후보지로 지정하고 반월공단 개발을 시작할 때 정착했다.

지금은 상가건물 1층에서 유리 점포를 운영한다. 2층과 3층은 월세방이다. 대부분 외국인이 지낸다. 취재팀이 명함을 건네자 이 씨는 냉커피를 주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씨는 약속을 잘 지키고 예의 바르다고 외국인을 평가했다. 일부 한국인은 상품을 주문하면 잔금을 제대로 치르지 않았다. “외국인은 100원 단위까지 대금을 다 치러요. 어떤 면에선 한국인보다 낫죠.”

방역 수칙도 외국인이 더 철저하다고 말했다. 코로나 19 환자와 밀접 접촉했으면 알아서 자가격리를 한다. 다른 사람에게 폐 끼치는 행동을 자제한다. “외국인 세입자 집의 문을 두드리면 아무 소리도 내지 않다가 내가 멀리 떨어진 후 인사를 해요.”

부흥철물 사장 박광섭 씨는 원곡동에 15년 살았다. 외국인이 많아서 느끼는 불편은 없다고 했다. 아내는 부동산을 운영한다. 외국인이 방을 구하려고 찾아오는데 갈등이 거의 없었다. 박 씨는 손님으로 오는 외국인은 착하다고 했다.

박 씨는 7~8년 전을 떠올렸다. 원곡동에서 싸움이 자주 발생했다. “어느 나라 애들이 그랬다더라.” 동네에 소문이 돌았다. 편견이 생겼다. 치안이 좋아지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고 했다.

하지만 편견이 없다던 그도 외국인이 적은 학교로 자녀를 보냈다. “솔직히 우리 애가 외국 애들하고 수업받는 건 나도 싫어서.” 자녀가 한국 아이들과 어울렸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백두부동산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외국인 애들이랑) 말도 안 통하고 외국인끼리 모여서 시끄럽대. 공부가 안된대.” 그는 중년 여성이었다.

원곡동의 초등학교는 다문화 학생 비율이 높다. 원곡초는 한국 학생이 10%도 안 된다. 어느 한국인 부모는 결국 외국인이 적은 곳으로 떠나면서 자녀 학교를 옮겼다. 원곡초는 학년마다 12개 학급이 있었는데 지금은 3~4개 학급만 있다. 한국인이 많이 떠나서다.

▲ 원곡동 거리에는 외국어 간판이 많다

원곡동 주민은 끼리끼리 사는데 익숙해 보였다. 한국인과 외국인이 나뉘고, 외국인은 국적별로 나뉜다.

명동부동산의 정희섭 씨는 초등학교 때부터 안산시에 살았다. “(원곡동에서는) 밤에 맨날 음악 소리, 기타 소리 들리고, 하지 말라고 해도 해요.” 동네가 시끄러워서 떠났다. 지금은 초지동에 산다. 한국인이 많은 동네라고 했다.

그는 원곡동에서 10년간 부동산을 운영했다. 한국인보다 외국인을 많이 만난다. 며칠 전에 인도네시아 사람이 사는 집에 갔다. “싱크대를 갈아줬는데 바퀴벌레 산이 이렇게…. 그 사람들은 프라이팬에 바퀴벌레가 들어가도 그냥 먹어요. 한국 사람은 상상도 못 해요.”

정 씨는 방글라데시와 스리랑카 출신을 꺼렸다. “그 사람들은 안 좋은 것만 많이 배웠어요. 월세를 미뤄요.” 경험을 많이 했다고 했다.

원엠 인력사무소 김용호 씨는 안산에 산 지 8년이 넘었다. 외국인은 여전히 공공의식이 부족하다며 불평했다. “외국인은 분리수거도 안 하고 쓰레기를 마음대로 버린다.”

조금씩 나아졌지만 벌금제도 덕분이라고 했다. 한번은 외국인이 주차금지구역에 마음대로 주차해서 화가 났다. 심지어 전화 번호판도 뒤집어놨다. 눈살을 찌푸리는 일이 반복되면서 불만이 커졌다.

김 씨는 안산시가 한국인에게 각박하다고 했다. 정책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법이라는 게 누구한테나 똑같아야 하는데 여기는 외국 사람이 많으니까 외국 사람한테 조금 더해주고….”

“외국인 교포 할머니, 할아버지 여기 많잖아. 전부 다 기본수당 받고 여기 와 있잖아. 자녀도 다 주고.” 서울공인중개사 사장 김의진 씨는 외국인에게만 돈을 준다며 얼굴을 찌푸렸다. 김 씨는 원곡동의 한국인에게 불만이 많을 거라고 말했다.

예수영광교회 박재홍 목사는 “원곡동은 한국인이 살기엔 탐탁지 않은 곳”이라고 했다. 그는 이곳에 약 8년 살았다. 내국인으로서 소외감을 느꼈다. 근처 보건소에 갔다가 바로 나와야 했다. 한국인은 안 받는다고 했기 때문이다.

은행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외국인의 외환 송금 업무를 한다. 박 씨는 은행에서 일반 업무를 볼 수 없었다. 불만을 가진 한국인이 하나둘씩 원곡동을 떠났다고 했다.

조정연 씨(70)는 원곡동에서 35년 동안 가방가게를 했다. 다문화 거리 초입의 ‘신도DC랜드.’ 여행용 가방을 사는 중국인, 시계 약을 바꾸려는 러시아인. 외국인 손님이 많다.

그러나 조 씨는 외국인과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 아니라고 했다. “진지하게 마음을 주고받지는 못하지. 모든 게 다르니까. 문화까지 교류해가면서 대화하고 싶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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