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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24시 (14) 피고인 ① 호소
이세희‧박선정 기자 | 승인 2021.03.21 19:11

 

판사가 “OOO 씨!”라고 외쳤다. 피고인이 방청석에서 일어났다. 흰색 와이셔츠에 깔끔한 남색 정장. 그는 두 손을 무릎에 올리고 변호인과 눈을 맞췄다.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제가 말하면 안 되나요?” 피고인이 증인석을 쳐다봤다. 변호인이 쏘아붙이자 증인이 흥분했다. 변호인은 “제가 질문하면 답하시면 됩니다”라고 말했다.

증인은 검사와 차분하게 대화할 때와 달랐다. “(피고인 때문이 아니라) 기존 사업에 지장이 갈까 봐 못 한 것 아닙니까?” 변호인이 지적했다. 증인의 얼굴이 붉어졌다. 신경전으로 법정 안에 긴장감이 맴돌았다. 서울중앙지법 서관 525호에서 2월 18일 열린 사기 사건 공판.

피고인은 2017년 자신이 특허를 낸 미용 기술이 있다며 증인에게 아카데미를 수강하라고 재촉했다. 계약금을 내면 특허 기술을 독점으로 사용하게 해주겠다는 조건이었다. 세계 최초라고 했다.

증인은 미용 종합학원을 운영했다. 피고인을 믿고 1000만 원을 입금했다. 피고인은 2018년부터 특허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고 했지만 증인은 시술 기계를 받지 못했다. 증인은 피고인을 ‘감독님’이라고 불렀는데 말을 더듬으며 피고인이라고 정정했다.

증인은 모든 질문에 혼자 답했다. 변호인은 증인이 대답을 주저할 때를 노렸다. 피고인은 입을 꾹 닫고 변호인에 의지했다. 피고인에게는 그를 보호하는 사람이 있지만 증인은 그렇지 않았다.

재판이 끝나고 스토리오브서울 취재팀은 2층 로비로 갔다. 피고인이 변호인과 함께 있었다. 둘은 대화하며 법원 밖으로 나갔다.

▲ 서울법원종합청사 앞의 피고인 긴급호송 차량

이에 앞서 취재팀은 1월 20일 오전 서관 4번 출입구 앞에 도착했다. 교도관 3명이 수갑을 찬 남성을 데리고 출입구로 다가왔다. 그는 정면을 응시하며 걸어가다가 출입구 앞을 보고는 고개를 숙였다.
 
법원에서 만난 피고인의 모습은 다양했다. 누구는 사복을 입고 법정에 나타났다. 누구는 수갑을 차지 않았다. 판사가 피고인이라고 부르지 않으면 방청객이나 변호사로 착각할 정도였다.

1월 29일 서관 506호. 법정 앞이 북적였다. 법정 경위가 이름을 불렀다. “OOO 씨.” 그러자 앉아있던 남성이 일어나서 “네”라고 대답했다. 그는 깔끔한 남색 코트를 입었다. 법정에 들어가길래 취재팀도 따라갔다.

“피고인 OOO 씨.” 그가 방청석에서 일어나 피고인석으로 갔다. 죄목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카메라로 여성의 신체를 몰래 촬영한 혐의였다.

일부 피고인은 재판출석을 피한다. 2월 26일 오후 2시, 5층 복도 끝의 519호 법정 앞이 소란스러웠다. “학생들은 시간을 맞춰서 왔는데 가해자가 시간을 안 맞춰 오는 게 말이 돼요, 이게?”

피해자 어머니가 불만을 드러냈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기소된 피고인은 출석하지 않았다. 재판이 30분 연기됐다. 피해자 어머니는 흥분해서 집으로 돌아가려 했다. 변호인은 “피고인이 안 와도 진행한다고 하니까”라며 달랬다.

검사가 복도로 나와 말했다. “이렇게 흥분하시면 안 되고 차분하게 얘기하셔야 합니다.” 이어 “탈탈 털어버리고 이제 오늘로 끝인 거야”라며 피해자를 달랬다. 잠시 후 법정 경위가 피해자를 따로 데려갔다. 피고인이 출석하면 마주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재판이 열렸다. 판사는 피고인의 소재를 물었다. “피고인은 연락 안 되죠? 그럼 피고인 불출석해서 공판을 연기합니다.” 피해자 어머니가 짧은 한숨을 쉬었다. “근데 오늘 목격자 증인을 소환해놓은 상태니까 안 할 수는 없고….” 판사는 고민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목격자 증인신문은 원래대로 하기로 했다. 판사는 증인이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증언하도록 피해자와 그의 어머니를 잠시 퇴정시켰다. “검사님 특별한 이의는 없으시죠? 변호인도?” 판사는 증인 보호를 위해 재판을 비공개로 돌렸다. 취재팀도 법정을 나갔다.

서관 2층 6번 출구 앞이 시끄러웠다. 취재진에게 “누가 오느냐”고 물었더니 “홍문종 의원”이라고 대답했다. 홍문종 전 의원의 1심 선고 공판 날, 2월 1일이었다. 그는 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잠시 후 6번 출구에서 기자 3명이 나와 “징역 4년이래!”라고 외쳤다. 홍 전 의원이 검은색 반코트를 입고 나타났다. 기자 20여 명이 뒤따랐다. 홍 전 의원은 빠른 걸음으로 법원을 빠져나갔다. 기자들이 질문하자 홍 전 의원은 “가만히는 안 있을 겁니다”라고 했다.

▲ 홍문종 전 의원이 기자들에게 둘러싸였다.

2월 2일 서관 422호 법정.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기소된 2명의 재판에서 판사는 출석 없이 선고한다며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했다. 폭행으로 기소된 2명도 불출석했는데 판사는 이들의 항소 역시 기각했다.

피고인이 지각하는 일도 있었다. 2월 18일 525호에서 판사는 한숨을 쉬었다. “OOO 씨 나왔나요?”라고 물었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아서다. 그는 다른 재판을 먼저 진행했다.

구속 기소가 되면 수형복을 입고 구치소에 수감된다. 재판을 받을 때는 교도관이 이끌고 법정으로 들어간다. 1월 29일 508호 법정 앞에서 피고인 2명을 봤다. 각각 하늘색과 녹색 계열의 수형복을 입었다.

피고인석 옆에 문이 하나 있다. 판사가 피고인 이름을 부르자 교도관 2명이 하늘색 수형복을 입은 피고인을 데리고 들어왔다. 교도관은 수갑을 풀어줬다.

법정에 들어오는 모습은 저마다 달랐다. 누구는 두 손을 모으고, 누구는 차렷 자세를 취했다. 누구는 고개를 숙이거나 누구는 고개를 빳빳하게 들었다.

취재팀은 2월 25일에 재판 15건을 방청했다. 그중 5건이 성범죄였다. 피고인은 2019년 12월 모바일 게임에서 만난 피해자에게 자신의 신체 사진을 전송하고 성적 행위를 하도록 유도했다.

2020년 1월 8일에는 피해자 집을 찾아가 수면용 안대를 씌우고 성폭행했다. 그리고 핸드폰으로 사진을 촬영해 카카오톡으로 전송했다. 피해자는 13세 미만 아동이었다.

피고인은 최초 조사에서 미성년자인 사실을 몰랐다고 했다. 그는 전자발찌를 찬 채로 범행을 저질렀다. “재범 위험성이 높다”고 판사가 말했다. 변호인은 “선처를 해 주시길…”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다른 피고인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으로 기소됐다. 그는 판사의 말이 끝나기 전에 자리에 앉으려고 했다. 판사는 “아, 앉으시면 안 돼요”라고 했다.

피고인은 같은 군부대의 간부와 2019년 7월 13일 술집에서 피해자를 만났다. 모텔에 가자고 했으나 거절당했다. 피해자가 만취하자 모텔로 데려갔다.

피해자를 두고 모텔 키를 갖고 돌아갔다가 다음날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잠자던 피해자에게 자신의 신체를 접촉했다. 또 피해자의 신체를 핸드폰으로 몰래 촬영했다. 검사는 징역 5년을 구형했다. 변호인은 “초범이고 범행 당시 나이가 만 20세였다”며 집행유예를 요청했다.

판사가 발언 기회를 줬다. 피고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목소리가 떨렸다. 자신의 행동이 “비 인류적”이라고 했지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도록 한 번만 용서해달라”고 했다. 그는 “피해자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꼭 하고 싶다”며 흐느꼈다.

1월 21일 509호에서 방청한 재판 6건 중에서 3건도 성범죄 사건이었다. 법정 경위가 복도에서 피고인을 불렀다. 그는 버스 안에서 여성 승객의 가슴을 주물렀다. 그는 부끄럽다, 죄송하다고 말했다.

다음 재판은 버스가 아니라 지하철에서 일어난 범죄를 다뤘다. 피고인이 코트를 입고 법정으로 들어갔다. 여성 승객에게 자신의 신체를 비볐다. 그는 혐의 중 일부만 인정했다. 여성 탈의실을 훔쳐보다가 기소된 피고인은 “가정이 무너질까 무섭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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