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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그 후 (8) 더불어민주당과 영남 ⑧ 일체감
권희은·이준엽 기자 | 승인 2020.08.03 11:48

 

경북대 3학년 권혁인 씨(26)가 신입생일 때였다. 택시 백미러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모습을 봤다. 박 전 대통령은 정장을, 육 여사는 한복을 입고 찍은 흑백사진이었다.

“나한테 그 자리는 아빠가 아들 사진을 걸어놓는 곳인데, 박정희 대통령 부부의 사진을 걸어둔 게 신기했다.”
 
경남에서 태어난 그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대구의 정서를 실감했다. 권 씨는 “지금도 택시 타면 박정희 전 대통령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고 말했다.

박정희 대통령 이전의 대구는 보수의 중심지가 아니었다. 해방 이후 30만 명 이상의 동포가 대구에 정착했다. 1956년 대통령선거에서 진보당의 조봉암 후보는 대구에서 72%를 득표했다. 그의 전국 득표율은 30%였다. 

경북대 채장수 교수(51·정치외교학과)는 역사적으로 영남 유림은 주류인 노론과 대립 관계였다고 지적했다. “대구의 보수화는 박정희 정권 이후 지역주의가 경북의 실익과 결합되면서 내재화됐다.”

대통령의 고향이라는 점과 영남이 호남에 비해 우대받는 상황이 맞물리면서 ‘지역적 아비투스’가 형성됐다는 평가다. 아비투스는 무의식적 사회화의 산물을 뜻하는 사회학 용어다.

홍덕률 전 대구대 총장(63)은 대구‧경북 유권자를 움직이는 힘이 ‘박정희 향수’라고 말한다. 경제성장의 성과, 강력한 권위주의 리더십, 반공주의 등 세 가지가 합친 결과라고 본다.

대구 성서공단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김순악 씨(75)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의식을 확인했다. 미래통합당의 오랜 지지자. 그는 박정희 대통령부터 노태우 대통령까지를 인생의 황금기로 추억한다. 장사를 위해 끌던 리어카는 3동 규모 공장이 됐다.

김 씨는 경제성장의 혜택을 입었다고 생각한다. 1970년대에 대구 칠성시장에서 그릇 가게를 했다. 새벽 3시부터 도매상이 찾아와 그릇을 골랐다.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되며 물류비가 크게 줄었다. 잠을 잘 시간이 없어 매출액을 세지 못할 정도.

공장을 연 1980년대는 호황이었다. 물건이 귀해 바이어가 대구 여관에서 자며 새벽부터 줄을 섰다. 경찰, 소방관, 공무원이 공장에 와서 뇌물을 자주 요구했지만 김 씨는 좋았던 시절의 일부로 기억한다.

김 씨는 권위주의가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강압적으로 하니까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 그 시절에 열심히 한 사람은 다 잘 산다.”

강한 반공주의도 드러냈다. “처음에는 입에 새(혀) 같이 해 준다고 하는데 다 빼앗아 가버린다. 그게 공산당이다. 통합당은 공산당은 아니지 않나. (더불어민주당은) 북한에 다 퍼주고, 노조만 최고다. 노조가 성하면 기업이 발전할 수 없다.”

▲ 제21대 총선에서 강민구 대구시의원이 김부겸 후보를 지원하는 모습

박정희 향수만으로는 대구의 정서를 설명하기 어렵다. 채 교수는 대구가 표방하는 보수의 스펙트럼은 아주 좁다고 지적했다. “삼성의 이재용 회장도 박근혜에 대해 불리한 발언을 하는 순간 보수가 아닌 배신자가 된다.”

유승민 조원진 전 국회의원은 범보수 정치인으로 분류되지만 대구에서 힘을 쓰지 못했다. 유 전 의원은 2017년 대선에 출마했는데 자신의 지역구(동구) 득표율이 16%로 홍준표 후보(44%) 문재인 후보(21%)에 뒤졌다. 조 전 의원은 제21대 총선에서 3위에 그쳤다.

이화여대 조기숙 교수(61·국제정치학부)는 통합당에 대한 대구의 지지를 전형적인 정당일체감 사례로 든다. “대구 지역은 지역사회와 언론이 대부분 통합당 중심이기 때문에 20대 때부터 (보수정당에) 정당일체감을 갖게 될 확률이 높다.”

조 교수는 정당일체감의 획득과정을 두 가지로 설명한다.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물려받거나, 20대에 정치적 사건이나 경험으로 인해 특정 정당에 처음 투표하고 2~3회 반복하면서 애착심을 갖는 경우. 이렇게 형성된 일체감은 나이가 들어도 변하지 않는다.

이런 설명을 받아들이면 박정희 향수가 통합당이라는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로 자리 잡았다고 볼 수 있다. 대구에서 요식업을 하는 정재림 씨(35)는 “(대구에) 정치적 성향과 관계없이 미래통합당 지지자가 확실히 많다”고 말했다.

대구 달성산업단지에서 일하는 김성재(43) 제갈상민(44) 씨는 민주당 지지자다. 대구의 유권자 대부분이 통합당 당적만 보고 맹목적으로 투표한다고 김 씨는 생각한다. 선거철에 후보의 정책보다는 당적 위주로 대화가 흘러가는 경우를 여러 번 봤다.

제갈상민 씨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대구를 보수의 중심이라고들 하니까, (보수정당이) 당선되면 지역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 보수정당에 몰표를 주는 식으로 투표한 것 같다.”

이런 점이 민주당 대구시당의 고민이다. 강민구 대구시의원은 “대구 유권자에게 보수정당이란 ‘내 자식’과 같다”고 표현했다.

대구에서의 민주당 득표율은 21대 총선에서 29%였다. 2004년보다 2.1% 포인트 늘었다. 일부 언론이 약진이라고 평가했지만 강 의원은 동의하지 않는다. “16년 동안 2% 포인트 늘었다. 미래통합당은 내 자식이고 민주당은 아무리 잘해도 남의 자식이라 애착도 자체가 다르다.”

반면 젊은 층에서는 통합당 지지층이 적다는 의견도 있다. 대구의 중학교 교사 유근주 씨(28)는 대구 장년층 이상에 맹목적인 보수가 많다고 생각하지만 청년층의 보수화 경향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경북의 은행원 박성희 씨(28)는 재난지원금 업무를 처리하면서 정부 여당에 대한 비판을 많이 접했다. “하여튼 이 정부는…으로 시작하는 대화가 많다. 전 국민에게 나눠준다는 점을 두고 빨갱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여당 비판이 일상”이라고 말했다.

이번 총선에서 대구 북구을에 출마했던 홍의락 전 의원은 “(유권자들이) 홍의락을 지지한다고 말하면 생길 불이익에 대해 염려하기 때문에 지지하더라도 그렇다고 말을 못 한다”고 했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제갈상민 씨 역시 정치 성향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면 바로 빨갱이 소리 들으니까 별로 내색하지 않는다.”

대구대 홍덕률 전 총장은 대구경북에서 진보적 활동을 한다는 것은 평생 주변에서 살아야 하는 선택이라고 말했다. “어느 조직에서도 승진하거나 자신의 능력을 맘껏 펴지 못하는 상황을 각오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평생 외롭고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의미다.”

1980년대부터 동교동계 민주당원으로 활동한 진호만 대구 민주당 중‧남구 부위원장은 정치 활동을 하면서 가족, 친구와 멀어졌다. 8남매 중 막내인 진 씨는 형제와 교류하지 않는다. “내 일(정치활동)을 지지하는 사람이 부모 말고는 없었다.”

경기도 출신의 원태성 씨(30)는 군 복무 시절, 동기와 선후임이 대부분이 영남 출신이었다. 2012년 대선 때 상당수 부대원이 “너 설마 2번(민주당 문재인 후보) 뽑을 생각은 아니지?”라고 말했다. 박근혜 후보를 뽑지 않으면 비정상으로 치부되는 분위기였다고 그는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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