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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그 후 (2) 더불어민주당과 영남 ② 삼중 당직자
이준엽 기자 | 승인 2020.08.03 11:56

 

대구 민주당원과의 인터뷰에서 홍의락 전 의원(65)이 자주 언급됐다. 대구를 위해 민주당이 일을 참 많이 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를 예로 들었다.

홍 전 의원은 ‘물 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을 대표발의 하는 등 한국물기술인증원을 대구에 유치하도록 도왔다. 산업이 위축된 대구에 중요한 현안이었다.

민주당은 대구‧경북 발전특별위원회를 만들었다. 대구‧경북에 연고가 있는 민주당 의원 20명을 모으고 홍 전 의원이 위원장을 맡았다. 이를 따라 자유한국당도 대구‧경북발전협의체를 만들었다.

그는 이번 총선에서 대구 북구을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정치신인 통합당 김승수 후보가 62%를 득표하고 홍의락 후보가 34%를 득표했다.

유세 현장은 승리했던 지난 총선과 비슷했다. 하지만 전체 상황이 좋지 않음을 홍 전 의원도 느꼈다. 중국을 막지 않아서 대구에 코로나가 퍼졌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그는 패인으로 방어기제를 꼽았다. “대구에서는 열 사람 정도 대화할 때, ‘아 홍의락 일 많이 했다’ ‘사람 괜찮더라’라고 한다. 그렇지만 막판에 누군가 ‘일 많이 하는 거 안다. 아무리 그래도 다르잖아’라고 하면 다 내려앉아 버린다.”

제20대 총선에서는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민주당 경선에서 컷오프되자 탈당했다. 당선되고 복당하지 않았다면 3선 가능성이 더 높지 않았겠냐고 기자가 물었다.
그는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무소속으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국회의원을 하는 거지, 배지 달고 왔다 갔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나.”

▲ 취재팀과 만난 홍의락 전 의원

아침의 버스. 강민구 대구시의원(56)이 인사를 하며 명함을 내민다. 민주당임을 알고도 굳이 묻는 시민이 있다.

“당이 어디라예?”
“엄마들 사랑하고 아버님들 좋아하는 경로당원입니다.”
“무슨 당이예?”
“성 김대관 성당입니다.”

강 의원은 이렇게 말한다. “민주당 의원인데요. 혹시나 편견 있을까 싶어서 이래 얘기 합니더.” 대구에서 민주당 소속임을 밝히려면 넉살이 필요하다. “저는 삼중 당직자입니다. 경로당, 성당, 민주당.”

기자에게 웃으며 말했다. “저는 (그 사람들이 저를) 안 찍는다고 봐요. 그래도 강민구에 대한 욕은 안한다고 봅니다. ‘쟤는 괜찮은 애다’ 이렇게.”
 
그는 2014년 수성구의원으로 당선됐다. 대구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구의원에게 당선되기는 처음이었다. 2018년에는 대구시의원에 당선됐다. 역시 지역구로는 대구 민주당 최초였다.

첫 출마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이라고 말하지 못했다. 2번 당, 김부겸 당이라고 했다. 2012년과 2016년 김부겸 전 의원의 선거에서, 2014년 자신의 선거에서 명함 찢는 시민을 봤다. 만지면 안 되는 물건을 만진 양 화들짝 놀라며 명함을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강 의원은 ‘리틀 김부겸’으로 불린다. 김 전 의원의 권유로 정치를 시작해서다. 이번 총선에서 김 전 의원이 5선에 실패하자 위기감을 느꼈다. “김부겸마저 내칠 정도로 대구 시민의 응어리가 있다면 스스로 헤쳐나갈 수밖에 없겠다.”

5월부터 강 의원은 ‘밍구밍구TV’라는 유튜브 채널을 시작했다. “솔직히 김 전 의원이 당선되면 그늘에서 편안하게 가려는 생각이 없지 않았다.” 그가 멋쩍게 웃었다. 영상에서 나비넥타이를 맨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구독 좀 눌러줘요.”

▲ 밍구밍구TV

김 전 의원의 2012년 선거를 돕기 전까지 강 의원은 정치와 거리가 있는 삶을 살았다. 아버지는 경북 의성 시골의 이발사. 장남인 그를 귀하게 키웠다. 대학 재학 중에 아르바이트를 못하게 했다.

순탄하게 대기업에 입사했다가 사업을 하려고 나왔다. 그런데 실패했다. 40대 중반이었다. 망하니까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너무 나 자신만을 위해 살았나?

자율방범대에 가입하고 복지관에서 도시락을 배달했다. 너무 잘나가는 사람만 바라보며 살았다고 느꼈다. “뒤를 돌아보니까 너무 많은 사람이 있었다.” 힘없고 돈 없고 빽 없는 사람을 위해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부모는 자녀 교육을 위해 대구로 이사했다. 그러나 강 의원은 졸업 후 대구에 머물라고 자녀에게 권하기 어려워졌다. “내 세대만 하더라도 대구에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부산에 없는 고등법원이 대구에는 있었을 정도다.”

그는 대구가 정체된 이유가 정치적으로 편중돼서라고 생각한다. “예산을 주는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 한 당에서만 계속 달라고 하는데, 상대 당이 반대하면 쉽게 주겠나. 양당이 달라고 하면 속된말로 ‘나중에 안 깨지겠구나’하고 쉽게 줄 수 있지 않겠나?”

홍 전 의원도 강 의원처럼 사업가였다.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하며 정치에 뛰어들었을 때, 나이가 오십 줄이었다. 지역감정 해소에 기여하려고 민주당 계열을 택했다.

그는 대구 시민이 ‘사막의 신기루’를 쫓는다고 표현했다. 특정 정당을 계속 밀면 잘 대접해주리라는 막연한 믿음만 가지고 정치를 본다고 했다. “어떻게 보면 참 안됐다. 대구 사람들은 균형 잡힌 양 날개로 살아가는 데서 나오는 이익을, 그 맛을 아직 모른다.”

지역 사업가와 주 52시간, 최저임금에 대해 간담회를 할 때다. 공장주들이 남의 이야기인 양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자신들의 이야기인데. “대구 사람이 나라 걱정을 너무 많이 한다. 삶과 정치를 연결시키지 못한다. 본인 얘기는 잘 못한다.” 홍 전 의원이 답답해하는 점이다.

제21대 총선으로 대구 민주당 국회의원은 2석에서 0석으로 줄었다. 아쉬움이 없냐고 기자가 물었더니 그는 낙선하고 며칠은 당연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거꾸로 편안함을 느꼈다고 했다.

“대구에서 민주당 활동을 하는 데에 대한 정신적인 부담을 그동안 자각하지 못했다. 그 사실을 인정하니 편안해졌다.”

홍 전 의원은 자신의 마음가짐이 처음 정치를 시작할 때와 같다고 말했다. “2003년 당시에 정당 활동을 하면서 국회의원이 될 수 있으리라고 상상할 수 없었지 않나. 개인적인 건강이나 인생에 문제가 없는 한, 경과와 관계없이 현장을 떠날 일은 아니다.”

미래통합당 소속의 권영진 대구시장은 6월 2일 홍 전 의원에게 경제부시장직을 제안했다. 홍 전 의원은 7월 1일부터 대구 경제부시장으로 일한다. 그동안은 당적을 가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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