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변호사협회 필리버스터 첫날 현장 스케치

 

서울 강남구 대한변호사협회(변협) 14층 강당에서 4월 28일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국민을 위한 검찰개혁 입법추진 변호사·시민 필리버스터’가 열렸다.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에 반대하는 9명의 연사가 연단에 올랐다. 필리버스터는 5월 6일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무제한 선언에 나설 변호사 및 시민께서는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의장을 맡은 이종협 변협 회장의 개회 선언으로 필리버스터가 시작되었다. 첫날 연사 중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를 제외한 8명이 현직 변호사거나 변호사 출신이었다.

▲ 4월 28일 연사. 사진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원영섭 변호사, 홍승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소연 변호사(전 국민의힘 대전시의원), 김연기 변호사 (출처=대한변호사협회 유튜브)
▲ 4월 28일 연사. 사진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원영섭 변호사, 홍승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소연 변호사(전 국민의힘 대전시의원), 김연기 변호사 (출처=대한변호사협회 유튜브)

필리버스터는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되었다. 5월 2일 기준 조회수는 9500회에 이른다. 취재진을 제외한 일반 청중은 없었다. 한 시간 후 대부분의 취재진이 철수하자 현장은 썰렁한 분위기였다.    

오후 4시 40분쯤 김기수 변호사가 현장을 찾았다. 그는 핸드폰으로 ‘김기수TV’ 유튜브 채널을 통해 필리버스터를 50분여 생중계했다. 5월 2일 기준 조회수는 280여 회다. 김 변호사는 인터넷 언론 ‘프리덤뉴스’를 운영해 온 우파 활동가로 알려져 있다. 현장에서 연사 신청을 했으나, 이날 일정이 꽉 차 불발되었다. 대신 5월 3일 연사로 등록했다. 

마지막 연사인 김소연 변호사(전 국민의힘 대전시의원)의 연설이 길어졌다. 김 변호사는 격앙된 목소리로 연설을 이어가며 종료 시각을 10여 분 넘겼다. ‘스토리오브서울’ 취재팀만이 끝까지 현장에 남아 있었다. 

▲ 4월 28일 ‘국민을 위한 검찰개혁 입법추진 변호사·시민 필리버스터’ 현장
▲ 4월 28일 ‘국민을 위한 검찰개혁 입법추진 변호사·시민 필리버스터’ 현장

변호사들은 검찰, 경찰 모두와 일한다. 이들은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어려움을 겪는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2021년 1월부터 검찰의 직접수사 개시 범위는 부패·경제·선거·공직자·방위사업·대형참사 6대 범죄로 축소되었다.    

첫 번째 연사로 나선 권성희 변협 부회장은 현재 경찰의 업무 과중과 수사 지연을 지적하며 “이와 같은 상황에서 검찰 수사권을 완전 박탈하는 내용의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수사 기능을 경찰이 감당할 수 있을지” 우려를 제기했다. “준비되지 않은 졸속 입법으로 인한 피해는 모조리 국민이 떠안을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권 부회장에 따르면 변호사들은 경찰 수사 지연으로 인해 피해받고 있다. 전국의 변호사를 상대로 실시한 4월 변협 설문조사에서 "고소사건 진행 중 경찰 수사 단계에서 조사가 지연되거나 연기된 사례를 직접 경험한 적이 있는지"에 대해 응답자의 73.5%가 "그렇다"고 답했다. 이와 같은 경찰 수사 지연의 핵심 원인으로 대부분의 변호사는 “경찰의 수사역량 부족”(72.5%)과 “경찰의 과도한 사건부담”(72%)을 지목했다. 

원영섭 변호사는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올라온 경찰관의 글을 예시로 경찰 수사 지연으로 변호사들까지 난감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민법 종결 시리즈의 저자이자 국민의힘 윤리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의 경찰청 게시판에 올라온 글 (출처=뉴스1)
▲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의 경찰청 게시판에 올라온 글 (출처=뉴스1)

익명의 경찰관은 “수사권 조정 이후 불필요한 절차가 너무 많아져 업무 과중으로 수사 지연이 심각한 수준이다. 현재 수사관 한 명당 자기 사건 50-200건씩 달고 있고, 수사부서는 순번을 정해 탈출할 만큼 수사 기피가 심각해 현재 경찰 수사 조직은 붕괴하기 직전이다”라고 주장했다. “수사 탈출은 지능 순”이라며 수사 기피 현실을 강조했다. 

“피해자는 신속한 형사구제를 받지 못해서, 억울하게 가해자로 몰린 사람은 수사가 끝나지 않아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원 변호사는 의뢰인의 민원이 들끓어도 변호사들은 수사가 지연되는 이유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최근 ‘계곡 살인’ 사건도 검경 수사권 조정의 폐해를 보여준다고 했다. 피의자 이은해 씨는 내연남 조현수 씨와 함께 2019년 6월 30일 경기도 가평군 용소계곡에서 남편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사건을 지휘했던 영장담당 검사는 경찰의 내사종결 의견을 그대로 따랐다. 원 변호사는 검사가 제대로 보완수사를 했다면 억울한 피해자의 죽음이 밝혀졌을 거라며, 검경의 상호 보완 필요성을 역설했다. 

홍승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특히 법적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경찰의 수사를 우려했다. 그는 “법조인으로부터 수사를 받을 권리는 가장 중요한 인권이다. 법조인이 수사의 주재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저작권 관련 사건이 늘어났던 시기에 경찰관이 수사에 도움을 청했던 일화를 꺼냈다. 경찰관은 “제가 그동안 도둑만 잡아서 저작권은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어요. 책 갖고 계시면 보내주실 수 있나요?”라며 전화를 걸어왔다고 한다.

배임, 기업 범죄 등 경찰이 감당하기 힘든 사건까지 맡기는 것은 그들을 괴롭히는 일이라고 했다. “이미 경찰은 일이 너무 많아서 괴롭습니다. 정치권이 경찰을 그만 좀 괴롭혔으면 좋겠습니다.” 

변호사로 일하며 겪었던 개인적인 경험을 나누기도 했다. 법무법인 이김의 김연기 변호사는 경찰이 보복성 내사를 했다고 주장했다. 이 사례로 경찰에의 권력 집중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는 집합 건물의 관리비 횡령 사건에서 담당 경찰관과 마찰을 빚은 뒤 수사관 교체를 요청했다. 사건은 무혐의 처리됐지만 이후 경찰 내사를 거쳐 피의자가 다시 송치되었다. 횡령 혐의로 기소된 금액이 47억에 이르렀다. 이 사건은 후에 검찰의 보완 조사를 거쳐 기소 금액 1억 7천으로 축소되었고, 법원에서 무죄로 종결되었다. 

“만약 검사가 구체적으로 보완 조사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어땠을까요?” 예외적인 사례지만 검찰과 마찬가지로 경찰에의 권력 집중도 견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사건이 법원까지 가기 전에 “법률 전문가인 검사의 필터링”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소연 변호사는 검경이 범죄를 보호하는 기관으로서 검수완박을 한마음으로 막아야 한다고 했다. “검찰공화국을 막겠다던 검찰개혁의 결과는 범죄공화국으로 귀결될 것입니다.”

“정치경찰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전경찰청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에 민주당 정치인이 관여된 사건에는 봐주기식 태도로 일관했다고 주장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의 측근들이 관여한 2018년 공천 권리금 사건의 폭로 당사자로서 검찰에게 도움받았던 경험도 이야기했다. 

이밖에 박상수 변협 부회장, 신인규 변호사(국민의힘 상근부대변인),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 박경호 변호사(전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가 연사로 나섰다. 모두 30분씩 발언했다. 늦게 도착한 신 변호사를 대신해 10분가량 연단에 선 박 부회장만 예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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