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수완박은 모두 반대, 검찰개혁 방향은 다양해

 

"검수완박 졸속 입법을 저지하고 진정한 검찰 개혁 입법을 촉구하는 시민의회의 개회를 선언합니다. 땅땅땅"

지난 4월 28일 오후 2시 시민의회가 열렸다. 국회가 아니었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대한변호사협회(변협)회관 14층 대강당에서다. 시민의회 의장을 맡은 변협 회장 이종엽 변호사가 의사봉을 세 차례 두드렸다. 시민의회는 실시간으로 유튜브에 생중계됐다. 시민의회는 검수완박 입법(검찰청법 개정안,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시민과 변호사들이 목소리를 내기 위해 기획했다. “형사 사법체계는 신중하게 사회적 합의를 통해 만들어가야 한다.” 변협 박상수 부회장의 말이다. 그는 이어서 “변호사, 시민, 전문가들이 너무 서둘러 추진되는 검수완박 입법의 문제점을 알리기 위해 시민의회를 개최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 시민의회 의장을 맡은 이종엽 변협 회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 시민의회 의장을 맡은 이종엽 변협 회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필리버스터는 국회에서 소수파가 다수파의 독주를 막기 위해 장시간 연설 등을 하며 의사진행을 고의적으로 방해하는 행위를 말한다. ‘국민을 위한 검찰개혁 입법 추진 변호사-시민 필리버스터’는 4월 28일부터 5월 6일까지 대한변협회관 14층 대강당에서 진행된다. 필리버스터는 모두 유튜브를 통해 중계될 예정이다. 첫 날인 28일엔 9명의 연사가 참여했다. 권성희·박상수 변협 부회장, 신인규·원영섭 변호사, 서민 단국대 교수, 홍승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연기·박경호·김소연 변호사 순이었다. 오후 2시에 시작된 필리버스터는 한 명당 약 30분씩 오후 6시 30분까지 이어졌다.   

연사들은 모두 검수완박 입법을 반대했다. 그러나 각자가 주장하는 검찰개혁 방향은 다양했다. 이 기사는 필리버스터를 통해 연사들이 검수완박 입법에 반대하는 이유들을 정리했다. 그들이 생각하는 국민을 위한 검찰개혁 방향도 추가 취재했다. 추가 취재는 연설 후 연사 6명을 대면 또는 전화 인터뷰를 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필리버스터에선 검찰개혁 방향성을 간략하게 설명하거나 다루지 않았기 때문이다. 

▲ 필리버스터가 시작되기 20분 전 변협 대강당의 모습.
▲ 필리버스터가 시작되기 20분 전 변협 대강당의 모습.

■ 검수완박을 반대하는 이유 ① - 수사 공백 우려

“한 여성이 수영을 못하는 자신의 남편을 계곡에 떨어지게 해 살인을 저질렀다는 계곡살인 사건이 있습니다. 당시 영장담당 검사는 경찰의 변사사건 보고를 기록으로만 보고 경찰의 내사 종결 의견을 그대로 따라 내사 종결을 했습니다.”

원영섭 변호사가 검수완박에 반대하며 말한 사례다. 그는 경찰의 수사만으로는 범죄 사실을 제대로 밝힐 수 없다며 이 사례를 들었다. 사건 발생 2년 10개월이 되어서야, 계곡살인사건의 피의자들은 살인 혐의로 구속됐다. 원 변호사는 경찰과 검사가 제대로 보완수사를 했다면 피해자의 억울한 죽음은 더 일찍 드러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또 수사 미비로 범죄자를 놓치면 그 범죄자에게 다른 범행을 해도 드러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검찰청법 개정안은 지난 4월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형사소송법 개정안엔 경찰로부터 송치 받은 사건에 대해 검사의 보완수사권을 ‘동일한 범죄 사실의 범위 내’로 한정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별건수사를 제한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항이다. 

권성희 변협 부회장은 이 조항이 수사공백을 야기할 수 있다며 반대했다. 성착취나 보이스피싱 같이 배후세력이 있는 민생범죄가 있다. 그런데 ‘동일한 범죄 사실’로 검찰의 보완수사 범위를 제한하면 검찰이 배후사정을 발견해도 배후세력을 밝히기 위한 수사를 하기 어려울 수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배후사정이 발견되어도 쟁점만 첨부한 채 경찰에 사건을 다시 돌려 보내야 하기 때문에 범죄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는 치명적 문제가 있다.” 권 부회장의 말이다. 

■ 검수완박을 반대하는 이유 ② - 수사 지연 우려

연사들은 검수완박 입법이 통과되면 수사가 지연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박상수 변협 부회장은 변호사들에게 가장 큰 문제를 물어보면, 검경수사권 조정 이후 수사 지연 문제를 꼽는다고 했다. “수사권 조정이 된지 1년 4개월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수사지연 문제를 평가하고 보완하려는 노력이 없었다”며 “그런 상황에서 검수완박을 추진하면 수사지연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고 했다.

수사지연 문제는 대한변협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드러난다. 지난해와 올해 3차례 걸쳐 전국의 변호사를 상대로 실시한 ‘형사사법제도 개선을 위한 설문조사’를 보자. “고소사건 진행 중 경찰 수사 단계에서 조사가 지연되거나 연기된 사례를 직접 경험한 적이 있는지”에 73.5%가 동의했다. 또한 “경찰 수사단계에서의 형사고소 사건이 적정한 기간 내에 처리되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82.5%가 아니라고 답했다. 경찰 수사 지연의 핵심 원인으로 “경찰의 수사역량 부족”과 “경찰의 과도한 사건 부담”이 각각 72.5%, 62%였다. 현 상황에서 검수완박을 진행할 경우 수사지연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는 말이다. 

▲ 권성희 변협 부회장이 필리버스터 연설을 하고 있다. 
▲ 권성희 변협 부회장이 필리버스터 연설을 하고 있다. 

■ 검수완박을 반대하는 이유 ③ - 권력 부패 견제 어려워

권력의 부패를 처벌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도 검수완박을 반대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였다. 권성희 변협 부회장은 “검찰의 직접 수사범위에서 선거 범죄를 삭제하는 것은 6개월의 단기 공소시효 적용을 받는 선거 범죄를 암장시킬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며 “(검수완박을 추진하는 건) 국민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국회의원의 이익을 위한다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현재 본회의에 상정된 검수완박 법안인 형사소송법 개정안에는 고발인이 경찰의 수사절차에 이의신청을 하는 걸 금지하는 내용이 들어있다. 박상수 대한변협 부회장은 이 조항이 재벌과 대기업의 부패를 견제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고 했다. 박 부회장은 “고발사건에 대해 이의신청을 할 수 없으면 공정위가 재벌이나 대기업의 담합이나 승계 등 경제범죄에 대해 전속고발권을 행사했을 때, 경찰이 사건을 불송치하면 이의신청을 할 수 없다”며 “그렇게 되면 재벌과 대기업들의 경제범죄를 견제하기 어렵다”고 했다.   

검수완박은 검찰 수사력을 활용하지 못하게 하는 범죄방치법이란 지적도 있었다. 신인규 변호사는 “검찰 개혁은 권력의 부패가 있을 때, 권력에 맞서 수사력을 발휘하고 객관적인 진실을 찾아내 죄가 있는 권력을 처벌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며 “검찰이 수사를 못한다는 비판은 들어보지 못했는데, 검찰이 잘했던 영역을 무력화시키는 방향으로 가면 권력 부패를 방치할 수 있다”고 했다. 

■검찰개혁 방향 ① - 시민참여로 검찰을 민주적 통제

연사들은 모두 검수완박을 반대했다. 그렇다면 검찰개혁은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가. 이를 연사들에게 대면 또는 전화로 질문했다. 우선 검찰개혁을 위해 시민참여를 통한 민주적 통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권성희 변협 부회장은 6대 중요범죄에 대한 검찰 수사권을 그대로 유지하되, 시민 통제의 방안으로 수사와 기소영역에서 대배심제도와 검사장 직선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검사장 직선제로 검찰이 여론의 눈치를 보며 수사나 기소를 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는 질문에 김 부협회장은 검사장 직선제를 해도 국민투표처럼 전체적으로 하지는 않을 것 같다며, 누가 뽑는지 어떤 범위를 뽑는지 정하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했다. 또한 검사장 직선제를 했을 때 검사장의 임기가 정해져 있으면, 검사의 양심에 따라 자유롭게 수사를 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또한 수사와 기소 과정에서 시민들이 피의자의 구속 및 기소 여부 등을 결정하는 대배심제는 형사사법 권력에 대한 시민 통제방안이라고 했다. 

원영섭 변호사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수사권을 빼앗는 것은 대안이 될 수 없다고 했다. 수사권을 다른 기관에 줘도 그 기관에서 정치적 편향성의 문제가 다시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안으로는 기소심의위원회처럼 대배심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즉 검사 안에서 비(非)검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말이다. 

▲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가 필리버스터 연설을 하고 있다. 
▲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가 필리버스터 연설을 하고 있다. 

■ 검찰개혁 방향 ② - 검찰 인사권 독립을 위한 제도마련

검찰개혁에서 중요한 건 검찰 인사권 독립을 위한 제도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검찰청법 제 34조에 따르면 검사의 임명과 보직은 법무부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한다. 홍승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찰개혁의 기본 방향은 검찰의 인사권 독립”이라고 했다. 검찰제도에 대해 말이 많은 건 주로 정치권하고 연결돼 있다는 점 때문이며 검찰의 정치적 독립을 위해선 인사문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현재 검찰의 주요 보직을 임명할 때 청와대가 깊이 관여하는 것이 관행처럼 되어있다는 문제를 지적했다. 검찰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프랑스의 승진 심사위원회를 모델로 삼아 인사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했다. 프랑스는 독립기구인 승진심사위원회에서 검사의 인사를 결정한다.  

검찰총장에게 검사 임명권을 줘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김연기 변호사는 “검찰총장이 검사를 임명할 수 있는 권한을 갖도록 해 검찰의 인사권을 독립시켜야 한다”고 했다. 현재 검찰에서 문제가 되는 건 권력수사나 하명수사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검사 인사의 독립성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검찰총장에게 검사임명권을 주는 것이 검찰 공화국을 만들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김 변호사는 사법부 등 다른 제도에 의해 검찰의 권한이 견제될 수 있다고 했다. 검찰이 기소하면 사법부가 유무죄를 판단하고 불기소할 경우 재정신청 절차가 있으며 필요에 따라 헌법소원도 할 수 있다고 했다. 박경호 변호사는 “판사는 대법원장이 임명하고, 공수처 검사도 공수처장이 임명한다”며 “검사 인사를 대통령이 행사하는 데 검사장 빼놓고 적어도 평검사 인사들은 검찰총장에게 넘겨야 한다”고 말했다. 

■ 검찰개혁 방향 ③ - 정치문화와 관행 중요, 현상유지 필요

검찰개혁을 위해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보장을 위한 정치문화와 관행이 중요하다는 입장도 있었다. 신인규 변호사는 “제도에 대해선 크게 문제 삼고 싶지는 않다”며 “검찰의 중립성을 위해선 정치권과 검찰의 관행적인 부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치권력과 검찰집단을 구별해서 봐야한다며 정치권력이 인사와 제도로 검찰을 통제하는 건 맞지만, 민주적 통제를 넘어 검찰을 사유화하려고 하면 안 된다고 했다. 15년 전만 해도 정치권은 개별사건에 대해 일일이 논평을 많이 안 했는데 요즘엔 매 사건 마다 기소단계 그리고 재판 후에 판사들에 대한 비판과 개혁이 필요하다는 의견 등이 나온다고 지적했다. 검찰집단에선 검사들이 스스로 정치권력에 줄을 대거나 오해를 살 만한 행동을 하는 걸 자제해야 한다고 했다.

연사로 참여하지 않았지만 필리버스터 현장에서 만난 김기수 변호사는 “개헌을 통해 국가권력 시스템을 전체적으로 다시 짜지 않는 이상, 현상유지가 필요하다”고 했다. 현 상황에서 검찰 수사기능을 없애면 경찰이 수사권과 정보기능을 모두 장악할 수 있다. 그러면 경찰이 경찰 인사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치권력과 유착할 수 있어 부패 수사가 방치될 수 있다고 했다. 기둥이 썩었다고 기둥을 뽑아버리면 집이 무너질 수 있다면서 검찰의 문제가 있어도 검찰 수사권을 박탈하는 것에 반대했다. 김 변호사는 “1차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의 권한을 내려놓는 것이 적절했다”며 “시행한지 1년 4개월 밖에 되지 않았는데 검수완박을 하는 건 문제”라고 했다. 

변협 회장 이종엽 변호사는 검찰개혁의 방향성을 묻는 질문에 “대한변협 차원에서 검찰개혁을 위한 성명서를 발표했다며 검사장 직선제와 수사, 기소 배심제를 도입하는 민주적 통제장치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검찰개혁의 방향성이 다양하다는 질문에 “합리적으로 접근을 하면 검찰개혁 방향에 대한 의견수렴이 가능할 것 같다"면서도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니 쉽게 합의가 잘 안 되는 면이 있지만 그럼에도 합의를 위해 노력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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