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대선 과정에서 여성가족부 폐지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등장했다. 윤석열 당선인이 선거 운동 기간인 지난 1월 7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여성가족부 폐지’ 7글자 메시지를 띄우면서부터였다. 공약 발표의 배경에는 여론조사가 한몫했다. 국민의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 자체 연구조사 결과 국민 과반이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를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에 찬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후 진행된 여론조사들은 특히 20대에서 여가부 폐지 의견이 가장 높다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 

지난 3월 9일 대선 결과 윤석열 후보가 대한민국의 제20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재명 후보와의 득표 차는 역대 대선 최소인 0.73%포인트 차이였다. KBS·MBC·SBS 방송 3사가 대선 당일 발표한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20대 이하 남성에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58.7%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36.3%를 보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큰 차이로 제쳤다. 반면 20대 이하 여성에서는 이 후보 58.0%, 윤 후보 33.8%의 지지도를 보이며 반대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럼에도 20대 남성은 윤석열 후보에, 20대 여성은 이재명 후보에 표심이 결집된다는 ‘몰표’ 양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대학생 고윤 씨(24·여)는 "이번 선거에서 양측 성별의 40% 가까이가 젠더 프레임과는 다른 선택을 했다“며 "프레임 때문에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가 묻힐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직장인 배상윤 씨(29·남)는 “경제 공약과 후보자의 도덕성을 기준으로 투표했다”며 “젠더별 경향성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현재의 프레임은 과도한 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번 ‘2030 젠더와 대선 기획’은 단편적인 여론조사 결과를 넘어 여가부 폐지 문제와 각종 젠더 이슈에 대한 청년들의 다양하고 진솔한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기 위해 기획됐다. 더 나아가 현재 정치권과 언론 등이 말하는 이른바 ‘젠더 프레임’이 실존하는 것인지 검증해보고자 한다. 이를테면 성별에 따라 여가부 존폐에 대한 입장은 과연 다른지. 그리고 20대 대선에서 젠더 갈등은 정말 중요했는지 알아본다. 마지막으로 이번 기획에서는 우리 사회 젠더 갈등의 실태와 그 원인, 그리고 근본적인 해결책 또한 모색하고자 한다.

2030 젠더와 대선, 청년에게 듣다

  1부: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 어떻게 생각하나요?

  2부: 20대 대선에서 젠더 갈등은 정말 중요했나요?

  3부: 젠더 갈등,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이번 ‘2030 젠더와 대선’ 기획은 총 3부로 구성된다. 1부에서는 청년들이 여가부 폐지 공약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이러한 입장을 취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들어본다. 또한 청년들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제시한 근거들이 과연 사실에 입각한 것인지 팩트체크를 진행한다. 2부에서는 젠더 요인이 여가부 존폐를 둘러싼 입장 및 20대 대선에서 과연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는지 검증한다. 3부에서는 젠더 갈등의 원인과 해결책에 대한 청년들의 심층 토론 내용을 제시한다.

1부 청년에게 듣다 ①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 어떻게 생각하나요?

‘2030 젠더와 대선’ 취재팀은 시민의 소리 패널단 단톡방을 활용해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에 대한 청년들의 생각을 들어보고자 했다. 2월 말 기준 시민의 소리 패널단은 80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성별은 여성 26명, 남성 46명, 성별 미기재 8명으로 남성이 약 58%로 다수다. 연령대는 90년생부터 02년생까지 모두 2030세대다. 특히 95년생~97년생이 전체 비율의 50%로, 20대 중후반이 가장 많다. 패널단 활동은 기본적으로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이루어진다. 프로필 사진과 닉네임을 통해 익명성을 보장하고 있다. 익명 채팅을 택한 이유는 패널들 간 부담 없이 활발하게 의견을 주고받기 위해서다.  

지난 2월 28일 오후 10시. 취재팀은 시민의 소리 패널단 단체 대화방에 질문을 올렸다. “여성가족부 관련 공약,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원활한 토론을 위해 제20대 대선 주요 후보들의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 관련 공약을 요약해 제시했다.

▲ 2월 28일 오후 10시, 패널단에 ‘2030 젠더와 대선’ 첫 질문을 올렸다.
▲ 2월 28일 오후 10시, 패널단에 ‘2030 젠더와 대선’ 첫 질문을 올렸다.

이번 토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패널은 13명으로 여성 6명, 남성 7명, 신원미상이 1명이었다. 연령대는 94년생부터 98년생까지 분포했고, 이 중 96년생이 6명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토론은 2월 28일 오후 10시 35분부터 3월 4일 오전 2시 4분까지 진행됐다. 이 중 토론이 가장 활발했던 때는 3월 3일 오후 11시경부터 4일 새벽 2시경이었다. 한 패널단의 발언 중 “여성시민단체 카르텔”과 “성 관련 범죄의 과도한 피해의식”이라는 표현이 논의를 촉발했다. 거의 세 시간에 걸쳐 8명의 패널단이 참여했다. 패널단은 서로 의견을 펼치고 상대방의 주장에 반박하는 등 토론을 이어갔다.

취재팀은 패널단 내에서 상대방을 향한 비난, 인신공격이 생기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최대한 토론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패널단의 주장에 동의하지 못한다면 토론을 통해 대화를 지속할 것을 요구했다. 활발하게 이어지던 토론은 3월 4일 오전 2시 4분에 종료됐다.

토론의 쟁점들을 정리해보면, 여가부의 필요성 자체에 대한 논쟁. 여성부가 오히려 젠더 갈등을 부추기고 있느냐의 문제. ‘카르텔’ 같은 여성단체 사업에 여성부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한 찬반 논란 등이 있었다. 

여가부 고유 업무 없어 vs 약자 보호와 성평등 실현 위해 필요

여가부 폐지에 찬성하는 측에서는 여가부 고유의 업무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여가부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직업 윤리상 익명을 요청한 아이디 드워프(29·남)는 “애초부터 여가부는 김대중 대통령이 부인 이희호 여사에게 정치적 보상을 해주기 위해 만든 부처”라며 “고유의 업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여가부의 업무는 국가인권위원회, 법무부, 행정안전부, 보건복지부, 교육부 등 다른 부처의 업무를 억지로 끌어온 것”이라 했다. 이준영 씨(28·남) 또한 “현재 여가부가 다루고 있는 청소년, 가족 부문은 보건복지부에서도 충분히 다룰 수 있는 문제”라 언급했다.

반면 사회적 약자 보호와 성평등 실현을 위해서는 여가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문승희 씨(27·여)는 “여가부는 엄연히 사회적 약자로 분류되는 여성, 아동들을 보호하고 그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부서”라고 말했다. 문 씨는 “여가부 존재에 의문을 품는 사람들은 왜 대기업부는 없고 중소벤처기업부는 존재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며, 여전히 우리 사회에 가시적으로 존재하는 성차별의 실체를 모르는 척 하고 있는 것”이라 주장했다. 

여가부 폐지에 반대하는 패널들은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성평등은 실현되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서지윤 씨(28·여)는 “아직도 여성이 승진하기는 굉장히 어려운 구조고, 여성 임원 비율도 5%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강동원 씨(27·남)는 “남성 성폭력 피해보다 여성 성폭력 피해 건수가 압도적으로 많다”고 언급했다. 장윤석 씨(27·남)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명백히 남성보다 불리한 위치에 있다”며 “성평등이 달성되지 않은 한국 사회에서 여가부를 폐지하겠다는 건 성평등이라는 가치에 관심을 두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라 말했다.

▲ 2030 젠더와 대선팀 카카오톡 대화의 찬반 의견
▲ 2030 젠더와 대선팀 카카오톡 대화의 찬반 의견

여가부가 오히려 젠더 갈등 조장 vs 여가부 폐지 공약은 성별 갈라치기

여가부가 오히려 현재의 젠더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주장 또한 제기됐다. 아이디 드워프(29·남)는 “여가부는 갈등의 해소를 목적으로 두는 기관이 아니라, 갈등의 조장과 확대를 목적으로 하는 기관”이라 주장했다. 그는 “지난 정권 5년 간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는 사법 제도에 대한 위협과 문화 콘텐츠에 대한 각종 검열로 한국 사회는 엄청난 갈등과 분열을 겪었다”며 “이로 인한 상처가 가까운 시일에 회복될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준영 씨(28·남)는 “성 관련 범죄의 과도한 피해의식으로 인해 여가부가 담당하는 검열과 규제의 영역이 과도하게 확장되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반면 젠더 갈등을 조장하는 쪽은 오히려 여가부 폐지 공약을 내건 윤석열 당선인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문승희 씨(27·여)는 “해당 공약은 현존하는 남녀갈등을 심화시킬 뿐만 아니라 즉각적인 지지율을 얻기 위한 무모한 발상”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희연 씨(25·여)는 이 공약이 “20대 남성 지지기반을 얻기 위한 갈라치기 같다”고 말했다. 강다은 씨(27·여) 또한 해당 공약이 젠더 갈등을 조장할 수 있다는 데 의견을 함께했다. 이한설 씨(27·여)는 윤 당선인의 여가부 폐지 공약에 대해 “여가부가 하는 일들에 대해 명확히 알지 못한 채 부정적인 일부 남성들의 표를 지나치게 의식한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예산 낭비 등 문제 많아 vs 문제점 많아도 폐지는 무리

일각에서는 여가부 폐지의 이유로 ‘카르텔’과 같은 여성단체 사업에 여성부 예산이 낭비되고 있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이준영 씨(28·남)는 “문재인 정부 들어 여성 시민단체가 카르텔과 같은 구조를 형성했다”며, “문재인 정부의 예산팽창정책에 의해 여가부 또한 다른 부처들과 마찬가지로 예산이 큰 폭으로 향상되었는데 이 중 일부가 여성 시민단체와 관련된 보조금으로 빠져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구선모 씨(27·남)또한 “여성 운동계가 다소 매너리즘에 빠진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구 씨는 “(여가부가) 여성의 복지향상이 아닌 여성운동계의 권력투쟁 양상에 치우치고 있다”며 “이런 식으로 하면 여성들도 여가부의 필요성을 못 느낄 것”이라 말했다.

패널단 중에는 위와 같은 여가부의 문제점에 공감하면서도 개편을 주장하며 여가부의 전면적인 폐지에는 반대하는 입장도 있었다. 장윤석 씨(27·남)는 “완벽한 정부는 없고, 완벽한 부처도 없다”며 “여가부가 저지른 실책도 무수하나, 그렇다고 해서 가치와 현실까지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한설 씨(27·여) 또한 여가부의 개편에 찬성하며, “성평등이라는 단어에만 너무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다양한 가족이나 아동들, 성범죄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다은 씨(27·여) 또한 “여가부를 성평등가족부나 성평등인권부 등으로 이름을 바꿔 좀 더 현시대에 맞는 정책을 폈으면 좋겠다”고 언급했다.

갈등 첨예할수록 사회적 합의 위한 공론장 절실해

최근 윤석열 당선인은 자신이 내걸었던 여가부 폐지 공약을 그대로 이행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현 국회 의석의 과반을 확보한 더불어민주당이 이에 강력하게 반대하고 나서며 여가부 존폐를 두고 첨예한 갈등이 예상된다.

갈등이 깊어질수록 이를 다루는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민주적 공동체에 있어 언론이 구축하는 공론장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공론장을 통해 공적이슈가 제기되고, 관련 토론이 이루어지며, 궁극적으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다. 하지만 현재 우리 언론은 다양한 의견의 소통을 위한 공론장을 활성화하기보다는 정치적 양극화와 확증편향을 강화하고 있다는 우려를 빚고 있다.

여가부 폐지를 둘러싼 논쟁이 자칫하면 양쪽 진영의 정치 공방으로 전락할 수 있는 상황에서, 이번 기획은 생각이 다른 젊은이들이 대화와 토론을 통해 서로에 대한 이해를 넓혀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실험하는 좋은 계기가 됐다. 사회적 합의를 위한 공론장이 우리에게 절실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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