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의 첫 걸음마가 어설픈 것처럼 대학 새내기들의 나름대로 멋을 낸 옷차림은 어딘가 어색하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은 출발선상의 긴장감과 자신감으로 당당하게 빛난다. 시작점은 무한한 가능성이 주어지기에 자유롭고 소중하며 희망이 넘친다.

대학 새내기들의 3월은 어떤 모습일까? 지금까지의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좀 더 전문적인 학문의 세계로 빠져든다. 자신이 짠 시간표에 맞춰 두꺼운 원서를 들고 강의실을 찾아다니는 것도 익숙해질 것이다. 원칙적으로는 생일이 지나지 않으면 술을 마시지 못해도 선배들과의 모임에서 처음으로 '원샷'이라는 것을 해보고, 거리에서 응원가를 고래고래 불러보기도 한다. 미팅도 새내기의 전유물로 여겨지지 않는가. 하지만 새내기들의 생활이 모두 술과 미팅으로 대표되는 것은 아니다. 조금은 다른 생활을 하는 새내기들의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대학생이면 주식 투자쯤은 해볼만한 것 아닌가요?

K대학교 00학번 전재현(20)군은 공강 시간이면 학교 컴퓨터실로 간다. 자신이 투자한 주식의 시세를 알아보고 객장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코스닥 종목하고 일반 주식을 조금 하고 있는데요, 주식으로는 한 달 평균 10~15만원 정도 벌어요. 짬짬이 시세 확인에 하루 두 시간 정도 투자하는 셈이죠." 주식 투자와 학업을 병행하다 보면 시간이 많이 뺏길 것 같지만, 오후 4시에 객장이 끝난 후에는 공부를 하기 때문에 큰 지장이 없다고 한다. 전군이 고등학교 때부터 주식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합격자 발표가 난 후 2월초부터 주식 투자를 시작했고, 과외를 해서 번 돈으로 초기 자금 120만원을 마련했다.

요즘 증권사들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사이버 모의 투자 대회 등을 열어 우수 인력을 미리 채용하고 있다. 전군도 현대증권에서 주최한 대회에 참가중인데 현재 수익률은 5%라고 한다. 하지만 증권 업계쪽으로 진출할 생각은 아니고, 경험 삼아 해보고 있다. 경험이 많아지는 것은 그만큼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지고, 포용할 힘이 커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통신 공간에서 펼치는 나만의 만화 세계

"대학교 동아리에는 가입한 게 없는데요, 통신 동호회 활동은 많이 해요." Y대학교 00학번 조혜민(20)양은 매일 저녁을 통신 공간에서 보낸다.

조양은 천리안의 만화 동호회 4개와 환타지 문학 동호회, 하이텔의 만화 동호회 2개에서 활동하고 있다. 제일 처음 가입한 문학 동호회는 5년이 지났다고 한다. 통신 동호회가 특별한 이벤트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만화에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기에 진지한 얘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다. 권교정의 스토리 텔링과 우라사와 나오키의 '몬스터' 등에 대해서 말하다 보면 몇 시간쯤은 금방 지나고 만다. 조양은 만화를 한 달에 거의 5~60권 본다고 하니 매니아라 부를 만하다.

그렇게 좋아하는 만화에 대한 활동을 대학교 안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것일까? "학교 안에 '만화사랑'이라는 동아리가 있기는 해요. 다른 선배들한테 들으니 진지한 분위기에서 만화를 그리고자 한다면 가지 않는 게 좋을 거라고 하던데요." 학교 선배들과의 모임이다보니 술자리가 많을까 염려되기도 하고 통신 활동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서 가입하지 않았다고 한다.

새내기들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N세대의 모습으로 통신 공간의 적극적 활용을 보여주고 있다. 서로 소개할 때, 핸드폰 번호는 물론이고 이메일 주소도 교환한다. 얼굴을 맞대고 서로 붙어 다니는 것만이 친구가 아니라 통신 공간에서의 사귐으로도 충분히 친구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학교 내의 동아리 활동뿐만 아니라 사이버상의 동호회도 취미 생활과 자아 실현 공간의 몫을 해내고 있다.

제가 너무 현실적인 건가요? 

E대학교 00학번 고영주(21)양은 아침 8시면 이미 학교 도서관에서 토익 책을 펴고 있다. 재수 생활 동안 규칙적인 생활이 몸에 배어서인지 대학 입학 후에도 꾸준히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있다.

"수업 끝나고 나면 거의 도서관에서 보내요. 숙제 하기에도 바쁜 걸요." 고양은 아르바이트로 과외를 했었는데 공부 때문에 체력적으로 힘들어서 그만 두었다고 한다. 재수 시절, 99학번인 친구들은 고양을 볼 때마다 대학에 가면 놀지 말고 공부하라고 했다. 그래서 대학 생활이 낭만적이지 않을 것을 예상하고 미리 공부의 방향을 잡았다. 

초·중·고등학교 12년 교육을 수능 시험일 단 하루에 결과를 내는 우리 나라에서 재수생은 필연적으로 양산될 수밖에 없다. 심지어 S의대 같은 경우에는 재학생의 80%가 재수생 출신이다. 고등학생도 아닌, 대학생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에서 어디에도 소속감을 갖지 못하는 재수생. 1년 더 수능 시험을 준비하는 힘든 기간 동안 대학에 대한 분홍빛 꿈만을 가지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른다.

"미팅이요? 아직 한번도 안했어요." 고양은 미팅을 하루 만나서 노는 소모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학교 간판을 내세우면서 만나는 것도 싫고, 재수 안 한 00학번 남학생은 나이도 한 살 적기 때문에 꺼려지는 것도 있다. 새내기라면 의례적으로 미팅을 한다는 통념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보는 것도 필요할 듯 하다.
 
학교가 제대로 된다면 왜 제가 학생 운동을 하겠어요?       

S대학교 정문에서 00학번 최성인(20)군은 학우들에게 열심히 등록금 투쟁에 관한 선전물을 나눠주고 있다.

"입학한지 일주일쯤 뒤부터 교육투쟁에 참가하게 되었고 요즘에는 교육투쟁 실천단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말함으로써 가슴  속에 쌓이는 것도 풀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학생회 관련 활동을 하게 되면 시간을 많이 뺏기게 되어 공부에 소홀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최군은 지금까지 수업을 2번 빠졌을 뿐이다. 집회 참석이나 선전물 돌리는 일들로 시간을 많이 뺏기기는 하지만 숙제할 시간은 만들면 된다고 생각한다.

학생회가 학생 없는 학생회로 돼버렸다는 소리가 들린다. 상당수 학생들이 운동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학생 운동을 하지 않는 이들이 비겁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관심을 가져달라는 것입니다. 선전물을 한번 읽어 보는 것, 집회시 박수 한번 쳐주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용기가 납니다." 최군은 학생회가 공동을 위한 일을 하는 것이니까 학생들이 관심을 가질 당위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학생회 그들만의 운동이 아니라 전체 학생의 운동이기 때문이다. 최군이 원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학교가 잘 운영되어 학생 운동을 안하게 되는 것이다.

예전 대학생들이 청바지, 통기타, 장발, 포크송 등으로 대표되었다면 요즘은 한가지 특성을 꼬집어 내기가 곤란하다. 생태계에서는 어느 상황에서나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서 다양한 종이 공존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한다. 겨우내 꽁꽁 싸여 있던 꽃눈들이 각양 각색의 모습으로 꽃을 피워내듯이 대학 캠퍼스 내에는 개성 넘치는 새내기들이 제 자신의 꽃을 피워내고 있다. 이들을 가르쳤던 경북외국어고등학교 이승호 교사는 제자들에게 다음 말을 들려주려 한다.

"완전 연소한 불은 재를 남기지 않습니다. 현재 위치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미래에 후회가 남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배워서 남에게 베푸십시오. 수백만, 수천만을 살릴 수 있는 가슴 따뜻한 공부를 하시기 바랍니다. 개인적인 이익에 집착하기 보다 더 넓은 것을 봐야하는 것이 지식인의 의무입니다."       

송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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