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7월 19일 헌법재판소가 내린 '1인 1표 비례대표제' 위헌결정은 기존 정치질서의 변화를 예고했다. 1인 2표제나 정당명부제를 통해 이른바 대안정당들의 원내 진입 문턱이 낮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기존 정당들의 정치 독점 현상이 약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국민들의 기존 정당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 역시 대안정당의 가능성을 더욱 높여주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2월 6일 한 정치 세력이 발기인대회 및 창당준비위결성식을 가졌다. 준비위원회는 이날 창당취지문을 통해 "시민들이 주체로 참여하는 정책정당으로서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생활정치를 펼치겠다"고 주장했다. 이 정책을 내놓은 정치 세력의 이름은 녹색 평화당(이하 녹색당), 그들은 '녹색정치'와 '시민정치'를 표방하며 기존 정치에 새바람을 넣겠다고 한다.

녹색당은 시민단체인 녹색연합과 지역별 환경운동 연합이 주축이 되어 지난 해 7월부터 창당을 준비했다. 다가오는 3월 말 정식 정당으로 출범할 예정이다. 현재 녹색당은 중앙당 설립을 위해 23개의 지구당을 준비하고 있다. 현행 선거법 상 총 23개의 지구당이 있어야 중앙당을 창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정당 등록 후 6개월 내에 중앙당을 창당해야 선거에 참여할 수 있다. 이 점에서 녹색당이 단순한 출현에 그치지 않고 기존 정당과 마찬가지로 정책 정당으로서 선거에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현재 녹색당 준비 위원회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20개정도 지구당을 세웠다고 한다. 다가오는 6월 지방자치제 선거와 12월 대선에서 당내 경선을 통해 후보를 내세울 예정이다.

녹색 정치, 녹색 정당

녹색당은 개발보다 보전을 통해 얻는 효과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한 지역에 공장을 세운다고 가정해봅시다. 공장이 생기면 물론 고용이 창출되고 노동자의 수입이 증가하겠지요? 하지만 녹색당은 공해를 유발하는 제조업보다 무공해 산업을 통해 '깨끗한' 고용을 창출하려고 합니다." 김원진 조직 국장은 제조업의 대안으로 생태 공원의 조성을 든다. 이는 녹색당의 창당 이념인 지속 가능한 발전, 생태주의와 연결된다. 선진국들이 개발 위주 경제 정책에서 벗어나 환경 친화적인 녹색 정치를 표방하고 있는 상황에서 녹색당은 정책 정당으로 가능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사회 구조가 선진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정치도 이데올로기 중심에서 환경중심으로 변하고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지역에 기반을 둔 정당보다 전문성을 가진 환경 정당의 역할이 중요해지겠지요."

환경보전과 지속 가능한 개발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시민단체와 녹색당의 차이를 느끼기 힘들 수 있다. 이에 대해 김원진 조직 국장은 "시민단체는 도의적 책임을 중시하지만 정당 정치는 책임적 정치를 중시합니다"라며 둘 사이의 차이점을 분명히 한다. "시민단체는 민주적 정책을 만들기 위한 연습의 장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익단체인 만큼 가끔 무질서해 질 수 있겠지요." 그는 인적·물적 차원에서 정당과 시민 단체가 상하 종속이 아닌 호혜 관계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녹색당이 단순한 환경 단체에 머무르지 않고 정책 과정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이유다.

차원이 다른 정당

창당 준비위원회는 녹색당은 그들이 민주당, 한나라당과 '차원'이 다른 정당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녹색당은 기존 정당과 달리 정치의 축을 '환경'으로 본다. 정책으로 대결하지 않고 정파 싸움에 몰두하는 현 정당 정치에 대해 녹색당은 정책으로 승부할 생각이다. 그렇게 되면 환경 전문가와 시민정신으로 단련된 시민 운동가도 국회에서 정책 입안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다. 그동안 소외되었던 환경, 사회보장, 여성에 관련된 사안이 전문성에 입각한 관료에 의해 활발하게 논의될 수 있는 셈이다. 이번 지방선거에는 처음으로 정당명부제가 시행되는 등 소수 정당에 유리한 배경이 조성됨으로서 녹색당의 성공 가능성이 더 높아지고 있다.

지역이 아닌, 정책과 전문성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녹색당은 그들이 한국 정치의 고질병인 지역감정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정당이라고 말한다. 6일 발기인 대회에서 임시 의장으로 선출된 최병옥 박사는 한국 정치가 앞으로 계속 양당 주의로 간다면 지역주의를 절대 극복할 수 없다고 확신한다. "90년대이래 시민사회가 급격히 성장했습니다. 시민운동, 지역 전문가 그룹이 당당히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거죠." 녹색당은 국민들에게 정치에 희망이 있다는 것을 '정책'으로서 보여주려고 한다.

녹색당의 저비용 고효율 정치 역시 기존 정당과는 차별성을 보인다. 녹색당은 경영 마케팅의 팀 프로젝트 기법을 당 조직에 적용하였다. 다른 당처럼 지구당 사무실을 따로 두지 않는다. 인터넷만 연결된다면 자기 집이 지구당 사무실이 된다. "지구당 체제는 비용이 많이 든다는 점에서 당의 이념과 맞지 않아요." 김원진 조직국장은 이를 저비용 정치의 핵심이라며 당원들이 수뇌부의 간섭 없이 자유롭게 정책 활동을 펼 수 있도록 지구당 사무실을 두지 않겠다고 한다.

의미 있는 득표를 위하여

"녹색당은 일회용 정당이 아닙니다. 당장 몇 개월 남은 지방 선거에서 반드시 이겨보겠다는 정신이라면 창당하지도 않았습니다." 임삼진 공동 대표의 말이다. 그는 녹색당의 이념 중 하나인 '지구 시민으로서 책임감'이 기존 개발중심 방식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그는 서울 시장으로 출마하기 위해 당내 경선을 준비중이다. 앞으로 선거 운동에서 자동차 중심이 아닌, 사람이 중심인 녹색 정치를 보여줄 예정이다. 21세기의 화두는 환경과 인간의 조화이기 때문이다.

녹색당은 6월 지자제 선거에서 7∼10%의 득표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 첫 시험대로 수도권을 집중 공략하기로 했다. 지난 2월 22일 박창화 공동 대표가 인천 시장 출마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역에 기반을 둔 한국의 정치 현실에서 대안 정당의 성공을 자신하기엔 모험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한판 싸움에 이겨보겠다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이는 생태주의적 사고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선거에서 녹색당의 '의미 있는' 득표를 기대해본다.

서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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