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학생들이 최근 자위대의 군사력 증강 움직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어요." 한일학생회의 부위원장 정다은(19.울산. 한양대) 회원은 '일본 군사 대국화'에 대한 일본 대학생들과의 토론 준비로 한창 바쁘다. "요즘 논쟁이 되고 있는 한일 양국의 미군 주둔 문제와 독도, 남북 문제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기로 했어요." 같은 분과인 정대중(19. 고려대), 김학무(20. 성균관대)회원은 재미있는 토론이 될 것이라며 벌써부터 기대가 크다.

한일학생회의는 86년 6월부터 자매단체인 일본의 일한학생회의와 함께 매년 서울과 동경을 번갈아 가며 대화의 장을 마련해 온 순수 대학생 학술교류단체이다. "한일 양국의 대학생들에게 솔직하고 건설적인 토론의 장을 마련하여 상호이해와 세계평화에 기여한다"는 것이 한일학생회의의 설립 취지이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회원들은 14기 99학번과 15기 00학번 18명. 이들은 오는 8월 4일부터 동경에서 열리는 <15회 한일·일한학생회의 하계교류대회>에 참가한다. 14박 15일 일정의 이번 대회에서는 양국 회원들이 6개 분과로 나뉘어 그 동안 준비한 논문을 바탕으로 토론하고  연극, 춤, 노래 등 다양한 문화교류도 선보일 것이다. 동경을 벗어나 다른 지역의 문화유적을 살펴보고 일본 학생들의 가정도 방문할 계획이다. 이렇게 꽉 찬 일정을 준비하느라 거의 매일 함께 여름방학을 보내고 있는 한일학생회의 회원들. 서울 외 다른 지역에 사는 학생들은 방학임에도 고향집에 가지 못했다.

 이번 대회를 위해 준비한 6개 논문의 주제는 일한학생회의의 일본 친구들과 함께 결정했다. <일본의 군사 대국화>, <한일 양국의 역사 교과서>, <재일 한국인 문제>, <한일 양국의 저널리즘에 관하여>, <젠더: 한일여성문제>, <한일 대학문화> 의 주제들은 오늘을 살아가는 한일 양국 젊은이들의 서로에 대한 관심사를 보여준다.

 한일학생회의 회원들이 생각하는 일본, 일본인은 어떤 모습일까? 매주 토요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한일 양국의 다양한 분야에 대하여 세미나를 갖는 만큼 일본에 대한 관심도 남다를 만 하다. 사실 회원들 주변에는 '쪽발이가 뭐가 좋다고 그런 단체에 참여하냐'며 핀잔을 주는 사람들도 있다. 많은 한국인들이 일본이 식민지 36년 동안 조선에서 저지른 잔학행위와 전쟁범죄에 대해 완전히 보상하지 않은 점 때문에 뿌리깊은 반일감정을 갖고 있다. "언제까지 일본을 미워할 수만은 없죠. 저희는 일본이 옳다, 좋다는 것이 아닙니다. 일본이 잘못했다면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는지, 한국은 어떻게 이를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알고 싶은 겁니다. 그러려면 일본 학생들과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눠봐야 하지 않을까요?" 정다은 회원 (19. 한양대)은 자신이 한일학생회의에 참여하는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PC통신과 인터넷에는 일본어 스터디 모임은 물론 일본 음악, 애니메이션, 배낭여행 등 다양한 분야의 일본 관련 동호회들이 있다. 그런데 이들 중 몇몇 동호회의 게시판에는 험한 말로 일본인을 욕하는 글이나 일본을 맹목적으로 찬양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한다. 일본을 이야기하는 움직임들이 객관성을 잃고 극단을 향해 치닫는 조짐도 보인다. 한일학생회의 회원들은 이런 상황에서 가끔씩 일본에 맹목적으로 동조하는 모임처럼 오해받는 것에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지 당황스럽다.

 99년 14회 서울에서 열린 하계교류대회에 참여했던 전진희 회원(19. 이화여대)은 일본 학생들이 군위안부, 강제 징용자 문제와 같은 과거 일본이 저지른 전쟁범죄에 대해 아는 바가 얼마 없어서 매우 놀랐다. "일본 학생들이 잘 모른다고 해서 당황했어요. 일본 역사시간에는 도쿠가와 막부, 일본 개국 이야기까지만 배우고 그 후의 근대, 현대사는 배우지 않는 대요. 우리는 국사시간에 배워서 알고 있는 거잖아요. 일본 학생들이 모른다고 책망만 할 일이 아니라 우리가 계속 문제제기를 하고 모르는 부분을 알려 주어야죠."

 함께 99년 대회에서 일본 학생들을 만났던 정다은 회원 (19. 한양대)은 일본 젊은이들이 과거 일본 역사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은 개인주의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한다. " 일본 학생들은 '나'는 '나', '국가'는 '국가' 이런 식으로 분리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물론 한국도 그렇고 세계적인 젊은이들의 추세지만. 개인주의라고 할까요? 일본이 훨씬 더 그런 경향이 강해요. 결국 과거 일본이 저지른 전쟁 범죄와 자신과는 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고 할까요? 일본인 모두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젊은이들이 역사나 정치에 관심이 적은 것은 사실이에요."

 최근 뉴스위크지에서 아시아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는 일본 젊은이들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한 예이다. '자국의 정치 지도자를 아는가'라는 질문에 '모른다'는 대답의 비율이 한국은 4%, 필리핀은 2%인데 비해 일본은 45%였다. 조사 대상국 중 가장 높은 수치이다. 

 한편 한국 학생들도 토요일 세미나에서의 토론과 일본 학생들과의 교류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많다. 14기 전수연 회원(19. 이화여대)도 1965년 한일협정에 관한 자료를 조사하며 '한국의 청구권 포기'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한일협정에 '한국은 일본에 대한 청구권을 영구히 포기한다'는 항목이 있는 것을 보고 속상하다 못해 화가 났어요. 그 당시 협상 당사자들 나름대로 사정이 있었겠지만 정부가 우리의 권리를 너무 쉽게 포기한 것 같아요."  전수연양은 지금까지 군위안부 할머니들과 강제 징용자들이 보상도 받지 못하고 고생하는 것은 한일협정을 체결한 정부 책임이 크다고 생각한다.

 작년 대회에서 만난 일본 젊은이들에 대한 한일학생회의 회원들의 생각은 다양하다. 일한학생회의 회원 18명이 일본 대학생 전부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도 한일학생회의 회원들처럼 일본 각지에서 모인 평범한 대학생들이다. "요즘은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고 정보통신도 많이 발달해서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대중문화도 비슷하잖아요. 일본인 친구와 이야기 할 때도 한국인 친구와 이야기 할 때와 소재가 비슷해요. 인터넷, 홈페이지, 음악, 영화, 패션처럼 관심 있는 분야도 비슷하죠." 마유코라는 일본 친구와 메일을 주고받는 전진희 회원 (19. 이화여대)은 일본 대학생들이 한국 대학생과 별 차이 없다는 생각이다. 함께 이야기 하다보면 재미있고 즐겁다.

 15년 동안 계속된 하계교류대회인 만큼 14박 15일의 짧지 않은 기간동안 한일 양국 학생들 사이에 있었던 에피소드도 무궁무진하다. 작년 대회에 참가했던 왕재일 회원 (20.서강대)은 일본 남학생들이 외모 꾸미기에 열심히 라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꺼냈다. "한국 남자들도 그렇지만 일본 남학생들이 외모에 신경 쓰는 정도는 정말 정성이죠. 샤워를 할 때 손에 쓰는 비누, 얼굴에 쓰는 비누, 샴푸, 린스 뭐뭐 해서 한가득 가지고 화장실에 들어가는 거예요. 저와 한국인 친구는 비누 하나면 충분한데...찜통 같은 한여름에  꼭 뜨거운 물로만 샤워하는 걸 보고도 놀랐어요. 머리 모양도 한국 학생들한테는 그냥 부시시해 보이는데 아침에 오랫동안 무스 바르며 신경 쓴 스타일이에요."

 우숙영 회원 (20. 이화여대)은 같은 방을 쓰던 일본인 여학생들이 빨래를 널지 않아 잠시 놀랐었다. "며칠이 지나도 방에 빨래를 널지 않는 거예요. 혼자서만 아무 데나 널어놓을 수도 없고 왜 널지 않냐고 물어볼 수도 없고. 그냥 한국인 학생들끼리만 널었죠. 지금도 그 학생들은 빨래를 어떻게 했는지 궁금해요. 아마도 자기 속옷 같은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던 거겠죠."

 일본 학생들은 한국 학생들이 엠티나 캠프에 가서 곧잘 하는 '007'이나 '바니바니' 같은 단체게임을 하지 않는다. 적어도 한국 학생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일본 학생들은 모여서 게임 같은 것을 하지 않는 대요. 하지만 만나서 가르쳐 주면 가혹한 벌칙을 받으면서도 굉장히 재미있어 하고 좋아해요. 열심히 따라하구요." 정다은 회원 (19.한양대)은 지난 하계교류대회에서 어색한 한국어로 게임 동작을 따라하던 일본 학생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웃음을 터뜨린다. 작은 일에서 생각과 행동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소중한 친구들이다. 서로 쓰는 언어가 달라서 그때마다 오해를 풀 수는 없지만 시간이 지나고나면 서로의 차이점을 수긍하고 인정한다. 

 일본 대학생들과 교류하는 단체이니 만큼 일본에 대해 특별한 관심이 있어서 참여한 학생들이 많다. 일본에 관해 해박한 지식을 갖춘 학생들은 물론 독학으로 일본어를 구사하는 학생들도 있다. 신입 회원일수록 일본 대중문화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이 많다. 지난 6월 3차까지 이어진 정부의 일본 대중문화 개방조치를 반영하는 듯 하다. 회원들은 일본의 정치, 역사, 경제 분야보다는 애니메이션, 게임, 음악, 대학생들의 놀이문화 같은 분야에 더 관심을 갖는다.  회원들 사이에서 '일본박사'로 통하는 김상진 회원(20.서강대)은 일본 대중문화 개방에 대한 자신에 대한 생각을 이렇게 말한다.

 "국민감정, 일본에 의한 문화적 식민지 전락, 문화시장의 잠식, 일본 대중문화의 음란성 등이 과거 반세기 동안 일본 대중문화를 수입 금지해온 근거들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근거들이 현재에 와서는 그 설득력을 상실했어요. 지난 1,2차 일본 대중문화 개방 조치가 없었더라면 일본에서의 '쉬리열풍'이 과연 가능했을까요?" 김상진군은 한국의 젊은 세대가 과거와 같이 일본에 대한 콤플렉스나 피해의식을 갖고 있지 않다고 본다. 나아가 한일 양국의 문화적 교류 증진을 적극적으로 요구한다는 생각이다.

 한일 교류의 2000년 역사를 따라 길게 늘어선 양국 사이의 해결 짓지 못한 많은 문제들이 당장 어떤 해결점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양국의 젊은이들이 서로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해하려 애쓰는 모습에서 한일 관계개선의 새로운 가능성을 점쳐본다.

안상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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