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칠맛 나는 연기로 유명한 한 조연배우가 있다. 하지만 요즘 신문이나 잡지에서 영화배우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만날 수 있다. 부산 영상 위원회 대표, 이스트 필름 대표에서 정치인 후원회 대표까지. 영화배우 명계남(50)이다.

최근 '노사모 대표'라는 하나의 직함을 더 얻은 그를 만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밤 12시 신촌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방금 지방에서 올라오는 길이란다. 오른손에 '인물과 사상'을 들고 있다. 요즘 노사모 활동 때문에 공부하고 있는 중이라며 "이 책, 정말 좋은 책이야"를 연발한다. 좋아하는 다방 커피가 없다고 불평하더니 곧 시원한 음료수를 시킨다. 녹음기를 켜자마자 "반가습니다. 명계남입니다."라며 장난을 친다.

노사모의 대표 일꾼 명짱

'노사모'는 2000년 6월에 결성된 노무현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인터넷동호회(http://www.nosamo.org)다. 모임은 99년 4.13 총선 때 부산 지역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노무현 의원의 낙선을 안타까워한 시민들이 인터넷에 글을 올린 것으로 시작됐다. "정치인을 믿지 않고 정치에 무관심하던 회원들이 많아요. 지금은 노무현 의원의 열렬한 팬이죠." 노사모는 7000여명의 회원이 자발적으로 활동하는 순수한 정치인 팬클럽이다. 이곳에서 명계남씨는 대표 일꾼 명짱으로 통한다. 현재 노사모는 4.20 민주당 국민 경선제에 회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추진하고 있다. "주변에 경선 참여를 권유하는 것도 사랑의 표현이죠. 메일 주소가 어떻게 되나요?"라며 그는 재빨리 수첩을 꺼낸다.

노무현을 100%믿는다


미국의 경우 할리우드 스타나 운동 선수가 민주당 혹은 공화당을 지지한다며 선거운동을 도와주는 경우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전무했던 영화인의 정치권력 지지는 눈길을 끈다. 그에게 노무현 의원의 단점을 묻자 "단점이 뭐예요?"하며 거꾸로 묻고싶다며 딴청을 피운다. 외골수 사랑이 아닐가 하는 의심을 뒤로 한 채 '노무현 의원은 비주류다'라는 평가에 대해 물었다. "나는 노무현이 주류라고 생각해요." 그는 소수의 가진 자가 주류인 세상은 잘못된 것이고 사회 전체의 공동선을 이루려는 사람이 주류라고 생각한다. "질문이 잘못되었어요. 무엇이 주류라는 말이죠?"라고 지적하는 그의 모습이 날카롭다.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각종 게이트와 의문사 사건 등이 눈앞에 떠오르자 그의 지적에 항변을 할 수가 없었다.

노무현이 진보적 성향이긴 하지만 민노당, 사회당에서 보기에는 여전히 아쉬운 점이 많다. 진보정당에서는 노무현을 차선책으로 비판적 지지를 하고 있는 셈이다. 명계남도 마찬가지다. "나도 노무현이 진보 진영의 후보였으면 하는 맘이 일견 있었어요. 저도 진보당이 국회에서 집권하는 세상이 왔으면 하죠." 그는 다수가 선은 아니지만 현실에서 정치는 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노무현 의원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600년만에 평화적으로 정권을 교체한 김대중 대통령이 시발(始發)한 사회의 진보적 변화는 분산된 개혁 세력들의 결합을 통해 지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치하고 싶으세요? 

"정치하고 싶으세요?" 요즘 그가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정치하려면 진작 했어요." 하지만 그는 자신 같은 이기적인 엔터테이너가 정치인처럼 대중에게 '봉사'해야 하는 직업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흠이 많은 사람이라 자신이 입후보하면 선거 과정에서 난리가 날 것이라며 웃는다. 오해를 받으면서까지 그가 정치 색을 드러낸 이유가 궁금하다. "가슴에서 시키는 대로 표현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마침 제가 알려져 있더군요." 자식들이 성인이 되어 지금처럼 9시 뉴스를 보며 욕이나 하는 세상에서 살게 하고 싶지 않다는 바램일 뿐이다.

20대여!

그는 유신시절에 대학을 다녔다. 30여 년 전을 떠올리며 그 시절의 잊을 수 없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당시를 고등학교 동창 한 명이 그와 다른 친구들에게 한가지 부탁을 했다고 한다. 내일 교정에서 성명서를 읽고 분신 자살을 할 테니 옆에서 사복 경찰들을 막아달라는 것이었다. 그와 친구들은 밤새도록 의논을 했고 결론을 내렸다. "너의 행동으로 세상이 바뀌진 않는다. 각자 사회에 진출하여 힘을 갖은 후 사회를 변화시키자!" 명계남은 자신이 비겁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이 정치현실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그의 눈에 비친 요즘 20대들은 어떠한가? 젊은 세대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은 그를 '화나게' 한다. 우리나라 정치 현실도 실망스럽다. 20대가 정치에 무관심하다면 20년 후의 세상도 지금 같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안돼요. 그 때 가서 하겠다니요? 너무 늦어요. 박하사탕의 김명호처럼 살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세상에 관심을 갖으세요."

배우 명계남을 볼 수 있는 세상을 바란다

지난 여름 전까지만 해도 추석이나 설 대목에 그는 특집 프로그램 녹화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엔터테이너는 가벼워야해요. 그런데 이제 나는 가벼워 보이지 않으니 필요가 없죠." 무거운 사회 문제에 깊게 관여하는 그는 더 이상 방송국이 바라는 말 수 많고 호들갑스러운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다. "나도 까불지 못하겠어요. 지역주의가 눈에 보이고 조선일보가 눈에 보이는데..."

새벽2시쯤 그와의 인터뷰가 끝났다. 일주일에도 몇 번씩 지방을 오가는 그는 내일 새벽 남해의 작은 시골마을에 강연하러 간다. "TV에 나오는 명계남 온다고 아줌마들이 모여 있을 거예요. 난 그들의 기대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할텐데요. 아줌마들이 바뀌어야 남해가, 사회가 바뀐다고 생각해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하는 그의 뒷모습에서 자신의 꿈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와이키키 브라더스' 멤버들이 생각난다.


김혜민 기자

저작권자 © 스토리오브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