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평론가 장일범

얼마 전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김훈이 신문지상에 발표한 수상 소감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들이 있었다. "무리를 아늑해 하지 않으며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생사의 급박함을 스스로 알아서 사람 모이는 대처에 나다니지 않고 혼자서 처박혀서 한글 한글 쓰도록 하겠습니다" 난 이 글들을 메모장에 적어두고 요즘 자주 들쳐 읽곤 한다. 

기자 생활을 하다가(난 그와 같은 회사에서 근무했었다. 나의 충정로 시절, 그는 '시사저널' 부장, 난 '객석'기자)뒤늦게 소설가로 데뷔한 김훈 선생의 이 글에는 늦깎이의 겸손과 의지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마음은 늘 김훈 씨와 같았지만 사람 좋아해서 행동으로는 쉽사리 옮겨지지 않던 내게 그의 이 두 문장은 자극이었다. 글쓰는 이에게, 공부하는 이에게 있어 뭔가 이루고자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혼자서 처박혀서 많은 시간 그의 작업에 공을 들이는 일이 아니던가. 이렇게 인내와 투자가 있을 때 일취월장(日就月將)할 수 있음은 불문가지(不問可知)의 일이다.

'청년 정신'이 담긴 김훈의 글과 더불어 최근에 내게 자극을 준 두 권의 책이 있다. 일본의 지성인 다치바나 다카시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와 오에 겐자부로의 <나의 나무 아래서>. 탐사 보도 저널리스트인 다치바나 다카시는 독서광이다. 그는 글 하나를 쓰기 위해서 수많은 관련 서적과 논문, 자료를 읽어 치우고는 새로운 학설도 세운다. 그에게 날림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매주 대형서점에서 수십 권의 책을 사서 읽어내면서 책 보관과 집필을 위해 그가 지은 3층짜리 유명한 검은 고양이 빌딩은 책이 발에 걸릴 정도로 많다. MBC와 최근에 인터뷰한 다카시가 마지막으로 한 말도 "책을 더 많이 읽어라"였다. 책 사 모은 것 때문에 결국 한 달에 50만엔 씩 평생을 갚아야하는 다치바나 다카시를 그대로 따라 할 수야 없겠지만 최근 대학 교수들의 부끄러운 논문 표절 사건과 한국의 대학 내에 만연하는 리포트 베끼기를 보며 우린 그에게서 배워야 한다고 통감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의 '나의 나무 아래서'는 아이들을 위해 쓴 책이지만 우리 어른들이 읽어야만 하는 책이다. 위안부 문제등 일제 침략을 반성하는 일본 지성의 양심 겐자부로의 책 중에서 내가 밑줄을 긋고 메모장에 옮겨 놓은 글은 하쿠세키의 말이다. '언제나 견디기 힘든 것을 견뎌내려고 힘쓰고, 세상 사람들이 한 번 하는 것이라면 열번, 열번 하는 것이라면 백번을 한 덕분에'라는 문장. 바로 김훈의 글과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이다.

그러고 보면 개인적으로 금년은 일본의 좋은 책들을 많이 읽었던 한 해였던 것 같다. 겐자부로의 <'나'라는 소설가 만들기>,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가의 각오>가 이야기하는 모습과 풍경들은 바로 "무리를 아늑해 하지 않으며 고립을 두려워 않는" 자세였다.         

요즘 내가 느끼는 한국인은 너나 할 것 없이 상당히 들떠있다. 자기의 자리를 찾지 못하고 부유하고 있는 모습들을 자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혼자 만의 시간이다. 밤의 심사숙고 그리고 아침에 배낭 동여매고 책을 끼고, 때로는 심각하게 때로는 활기차게 강의실로 바삐 걷는 초롱초롱한 눈의 대학생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 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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