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헌ㆍ정몽준 형제의 현대그룹 자리싸움처럼 요란하진 않지만 우리들도 형제들과 다투며 살아간다. 최초의 싸움 파트너도 형제였을 것이고, 평생동안 가장 많이 다툰 상대도 형제일 것이다. 싸운 후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 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자연스레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문제 해결을 위한 진지한 과정이 결여된 안일한 화해 모습들을 보면 형제들이 서로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형제 관계 속엔 오랜 익숙함으로 인해 간과되어진 문제들이 분명 존재하고 있다.

형제를 말해본다

형제라는 이름의 타인(2001ㆍ올림)」의 저자인 심리학 박사 양혜영(43) 씨는 일상 생활에서 무심하게 지나친 형제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몇 해 전 까지 만해도 형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유학 시절, 우연히 유명한 작가들의 형제 이야기를 담은 Dunn과 Plomin의「Separate lives; Why sibling are so different」라는 책을 접하고 형제 관계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었다. 그는 머리말에서 자신의 책을 통해 형제가 서로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라고 밝힌다.

이 책은 '무엇이 형제를 다르게 만드나', '형제-애정인가, 갈등인가'라는 두 부분으로 나눠져 있다. 1부에서는 과학적 증거를 제시하며 형제는 체중과 신장에서만 조금 비슷할 뿐 지능, 성격 등은 다르다고 한다. 이유는 유전과 환경이 적절히 섞여 작용하기 때문이다. 2부에서는 <부모-자식>, <부모-다른 형제>, <형제-형제>관계를 통해 형제가 다르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또 앞의 세 가지 관계가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말한다.

타인이라는 이름           

형제의 성격이 비슷할 확률은 15%이다. 저자는 형제가 다른 성격을 갖는 비율 85%에 주목한다. 그는 사람들이 15%에 집착하여 형제가 비슷하다는 '잘못된 신화'를 갖고 있다고 지적한다. "같은 집에서 같은 부모와 생활하니 당연히 비슷하다고 믿는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비슷한 구석을 찾으면 형제이기 때문에 비슷하다는 일종의 선입견입니다." e-mail 인터뷰를 통해 저자는 형제를 비슷하다 믿는 사람들의 심리에 대해 말한다.

<부모-다른 형제>, <형제-형제>관계는 <부모-자식>관계보다 덜 공론화 되었기 때문에 보다 흥미롭다. <부모-다른 형제>관계에서 부모가 형제를 다르게 대우하는 것은 그들의 성격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형제-형제> 관계에서는 놀이 친구인 형제가 부모의 사랑, 가정의 자원을 함께 나눠 갖아야 하는 경쟁자가 된다. 저자는 이 두 가지 상황에 의해 형제의 다툼이 시작됐고 계속된다고 말한다.

보부아르의 여동생은 이길 수 없는 상대와 경쟁하면서 상처받아야 했다. 저녁이면 종종 그녀는 울고 앉아 있었다. 그녀의 이런 행동마저 잘 삐치는 성격으로 치부되어 극복해야 할 또 다른 열등감이 되었다.
                                                                                                       -본문 중에서-

책을 읽고 나니 부모의 다른 대우와 경쟁적인 형제 관계, 이것들이 '욕심'에서 비롯됐다고 느꼈다. 부모의 욕심, 형제들 각각의 욕심, 이것들이 서로 충돌하여 갈등이 생기는 것이다. 부모와 형제는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그 순간마다 서로에게 타인이 되는 것이 아닐까?

형제가 나와 다르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타인이라고 부르고 싶진 않다. 혈육이라는 믿음 때문인지 그동안 부대끼며 쌓인 정 때문인지 이유는 확실치 않다. 형제를 타인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저자의 목소리에 딴지를 걸고 싶다. "형제가 타인과 똑같다는 것은 아닙니다. 형제는 타인에 비해 부모의 사랑, 재산 등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다른 점은 이
관계가 주어진 것이고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형제 관계를 속된 말로 '팔자'라고 말한다. 형제 관계 자체는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관계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의 선택이 중요하다고 충고한다.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

저자는 형제가 다르다는 주장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 독자들에게 "감히 변화를 바라진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보는 것, 우리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며 책을 읽고 형제에 대한 생각의 기회를 갖길 당부한다.

'사람은 누구나 혼자'라는 말이 있지만 동시에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나' 아닌 '타인'을 위한 배려도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나'만을 위한 생각으로 형제뿐만 부모, 친구 그리고 '타인'에게 눈길을 주지 못한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김혜민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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