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에 자신을 비춰본다. 부끄럽다. 윤동주는 그의 시 "참회록"에서 거울을 들여다 봄으로써 자신을 돌아보고 더 나은 자아를 추구했다.
 
그러나 거울의 역사(2001,에코리브르)의 저자, 콜레주 드 프랑스(college de france)의 연구원 사빈 멜쉬오르 보네(Sabine Melchior Bonnet)는 인간은 거울을 봄으로써 자기 반성이 아닌 자기애를 추구한다고 주장한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나르시스트가 그 대표적인 예다. 저자는 거울이 바꾸어 놓은 인간의식의 변화를 다룬다. 인간이 거울을 통해 얻은 것은 무엇이며 잃은 것은 무엇일까?
 
저자는 1부에서는 사물로서의 거울의 역사를 기술하면서 독자가 호기심을 가지고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유도한다. 2부와 3부에서 거울과 함께 한 인간의 역사를 정신분석학적으로 분석하며 독자를 자연스레 철학의 세계로 안내한다. 자칫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 철학적인 이야기를 풍부한 사료를 들어가며 부드럽게 만든다.   

거울 그리고 거울의 전파

거울이 처음 생겨났을 당시 시냇물이나 반질반질한 돌에서나 비춰보던 자신의 모습을 다른 사물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충격적이었을까? 저자는 초창기 금속 거울에서부터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등장한 유리 거울까지 상세하게 거울의 역사를 기술한다. 동시에 거울의  발전 속에서 인간이 받은 문화적 충격에 관해서도 다루고 있다.

초창기 거울은 매우 귀한 물건이었다. 실례로 로마의 여인들은 결혼 선물로 거울을 원했다고 한다. 저자는 프랑스가 왕립 거울 제조소를 설립한 후, 앞서가는 도시인 베네치아로 산업 스파이를 보내는 과정을 추리 소설만큼이나 긴박하고 재미나게 소개하고 있다. 거울 제조 기술을 두고 두 나라가 벌이는 각축전. 이러한 거울을 향한 인간의 욕망은 거울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너 자신을 알라

2장에서 저자는 사물로서의 거울의 단계를 넘어 정신분석학적인 의미를 고찰한다. 라캉은 "인간은 거울을 통해 제 3자의 시선을 빌어 자아 정체성을 확립 할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 거울에 비치는 모습은 사물의 실재가 아닌 닮음이다. 그 닮음을 인지하고 고찰을 통해 자신을 알 수 있다. 저자는 "거울을 통해 외관을 인지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거울에 비친 반사상을 넘어 영혼까지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소크라테스가 젊은 제자들에게 거울을 보여줌으로써 자기 자신을 완성하게 한 사례는 거울이 능동적 역할을 하는 것을 입증한다. 이렇듯 2부에서는 거울을 통해 인간 의식이 긍정적으로 변한 현상을 담고 있다. 그러나 보네는 다음 장에서 글의 중심을 '거울의 부정적인 측면'으로 옮긴다.

저자는 시몬 베이유의 "아름다운 여인은 거울을 보고는 자신이 바로 그 모습일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못생긴 여인은 그게 다 일 수가 없다는 것을 안다"라는 말을 인용하여 자신의 논리를 펼친다. 그는 거울은 빛에 반사된 상을 만들어 낼 뿐 사물이나 인간의 표면 아래 깊숙한 곳은 나타내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거울의 파편

『교회는 거울을 사용한 모든 실험을 금지했다. 호기심은 신앙과 반대로 신의 비밀을 알고 싶어하며, 인간이 알아서는 안 되는 것, 특히 앞으로 다가올 일을 알아내려 하기 때문이다. 성 베르나르와 성 토마는 자만의 첫 단계인 지식애, 즉 알고자 하는 타락한 욕구를 비난했다. 호기심은 인간을 사욕으로 이끌며 낭비하게하고 기이함을 찾게 한다. 1270년경 종교 재판 대전에는 혐의자에게 던지는 질문중에 "거울, 검, 손톱, 상아로 된 구나 자루를 사용한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이 등장한다.』
                                                                                                                          -본문 중-

이렇듯 고대에 거울은 음험한 사탄이 인간을 속이기위해 사용하는 거짓으로 간주되어 성직자들의 비난을 받았다. 저자는 앞서 거울은 신의 형상인 인간을 비추어주는 신성한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그러나 갑자기 거울이 악마의 표정이 될 수 있다고 하니 잠시 어리둥절 해 질 수밖에 없었다. 저자가 이러한 모순적인 거울의 속성을 좀 더 알기쉽게 설명 해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저자가 352페이지에 이르도록 숨차게 풀어놓은 거울의 숨겨진 많은 이야기는 독자에게 신선한 지적 자극을 준다. 현대 광학은 예전에 인간이 거울을 통해 볼 수 없었던 것을 보게한다. 앞으로도 거울의 이야기는 계속 될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거울의 파편을 넘어 그 안의 숨겨진 이야기를 상상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김다듬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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