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답게 교양 다큐멘터리 편성을 강화했습니다.” 프로그램 개편 때면 방송사마다 내세우는 전략이다. 개편 때마다 나오는 이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은 단순한 쇼·오락 프로그램과는 차이가 있다. 다큐멘터리 속에는 사실이 있고 그 사실 속에는 진리가 숨어있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참 맛은 바로 이러한 진리를 찾아내는 데 있다.

다큐멘터리는 실화(實話)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그러므로 다큐멘터리는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며 오락적인 목적을 위해서는 제작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김우룡 교수(한국 외국어대 신문방송학과)는 “다큐멘터리는 실재성(actuality)과 현실성(reality)을 생명으로 하는 텔레비젼 형식”이며 “다큐멘터리의 소재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으나, 우리들에게 ‘친숙한 것들’을 ‘친숙하지 않은 방법으로’보여주는 데 특징이 있다. 또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은 사건이나 현상, 인물 등을 제대로 이해하고 깨우치도록 해준다. 그러므로 다큐멘터리란 사회를 변화시키고 각종 현상 속의 진리를 깨닫게 해주는 가장 이상적인 텔레비전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결국 다큐멘터리의 생명은 그 화면 속에서 보여주는 현실의 자연스러운 모습과 객관성이라고 할 수 있다.

방송이 발달했다는 선진국에서는 풍부한 제작 지원 속에 많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 나라의 경우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은 그리 환영받고 있지 못하다. ‘다큐멘터리’라는 타이틀을 내건 프로그램에서도 정통 다큐멘터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가장 큰 원인은 ‘방송’하면 따라 다니는 시청률 문제이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시청률은 일반 쇼, 오락, 드라마 프로그램보다 상대적으로 낮다. 방송사의 입장에서는 경영을 하기 위해서는 시청률 위주의 편성과 제작 지원을 할 수밖에 없고 그러면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은 점점 설자리를 잃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나타난 것이 정통 다큐멘터리가 아닌 변형된 형태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다.

MBC 다큐멘터리「성공시대」는 ‘다큐멘터리’라고 말하지만 그 형식은 변형된 다큐멘터리인 드라마타이즈(Dramatize)다. 실화를 바탕으로 재연과 인터뷰를 뒤섞은 이러한 형식은 사람들에게 크게 어필했다. 하지만 「성공시대」는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지난해 4월 방송 모니터 위원회는 “「성공시대」는 다큐멘터리의 한 요소여야 할 재연 형식이 프로그램의 주류를 차지함으로써 전복된 형태의 비정상적인 모습을 보인다.또한 「성공시대」는 이런 형식적 요건의 결여 외에도 ‘실재성(actuality)과 현실성(reality)의 첨예한 탐구를 통한 진실에의 접근’이라는 다큐멘터리가 담보해야 할 기본적인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단지 석세스 스토리(success story)를 통한 소시민들의 욕망의 대리만족만이 존재할 뿐이다. 바로 이점에서 「성공시대」는 인간의 내밀한 부분을 들춰보는 휴먼 다큐멘터리와도 일정한 거리를 갖게 되는 것이다.”라고 하며 「성공시대」를 다큐멘터리가 아니라고 규정했다. 이는「성공시대」가 취하는 드라마타이즈라는 형식에서 상당수 그 원인을 제공하고 있음을 얘기해 준다.

드라마타이즈 외의 변형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으로는 르포 프로그램을 들 수 있다. 방송용 ENG카메라가 아닌 6mm 디지털 핸디캠으로 생생한 현장을 잡아낸 KBS의 「병원24시」가 그 대표적 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영상의 미학이나 그 속의 의미를 포착하기보다는 병원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일어나는 치열함에 주목하게 한다. 방송개발원의 윤재식 연구원은 “다큐멘터리는 사실을 다루되 그것의 재배열과 구성을 통해 진실을 드러내야 한다.”고 말한다. 때문에 “다큐멘터리는 사실들을 넘어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진실에 도달하는 형식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드라마타이즈나 르포는 진정한 다큐멘터리의 의미에는 부합하지 않는다.

이러한 정통 다큐의 부재는 비단 시청률 때문만은 아니다. 98년 5월 방송가에 큰 사건이 벌어졌다. 98년 5월 24일 방송된 KBS의 「자연다큐멘터리-충격 리포트 수달 사망보고서」프로그램에서 수달의 먹이사냥 장면이 연출된 것임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여기서 등장한 수달은 지리산 생태보존회에서 같은 해 1월10일 야생상태에서 잡은 수달이며 사전 프로그램 홍보와는 달리 수달이 먹이를 잡는 장면이 아닌 포식한 뒤의 모습이었다. 이러한 사항에 대해 제작측은 전혀 프로그램 중간에 명시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가 됐다.

97년 1월 설날 방영된 SBS의 「게」도 수족관에서 촬영한 것을 자연상태에서 촬영한 것처럼 보이게 하고 여기에 대해 설명이나 자막처리를 하지 않은 것이 문제가 되었다. 다큐멘터리 제작시 보여지는 과도한 연출 또는 조작 문제에 대해 많은 제작자들은 “연출자와 카메라맨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한국 다큐멘터리 제작 관행 때문”이라고 말한다. 여기에 대해 지난 3월 「시베리아, 잃어버린 한국의 야생동물을 찾아서」란 작품으로 올해의 PD상을 수상한 EBS의 박수용PD는 “자연 다큐멘터리에서는 세팅 촬영을 할 때 동물들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도록 동물들이 갇혀있다는 상황을 깨닫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포유류나 조류는 세팅촬영을 피한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물론 외국에서도 촬영의 편의를 위해 세팅 촬영을 하기는 하지만 세팅 촬영을 한 것은 반드시 프로그램 중간이나 사전에 언급을 한다. ”고 말했다. 즉, 세팅 촬영을 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세팅을 한 사실을 알리지 않고 시청자들에게 억지 감동을 자아낸 것이 문제인 것이다.

EBS에서 자연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제작만 7년째 해오고 있는 박수용PD는 “요새 다큐멘터리 프로그램들은 다양하지만 발전된 형태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사실 그대로가 아닌 좀 더 포장되고 왜곡될 수 있는 포맷이 더 많아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새로운 시도가 거듭되고 있는 것을 볼 때 지금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 발전하기 위한 과도기라고 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큐멘터리PD들의 생각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다큐멘터리 PD는 창조적인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아님을 명시해야 합니다. 현실에 대한 느낌이나 그 현상을 가급적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보여주는 것이 다큐멘터리 PD의 역할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현실성 있는 화면들을 위해 PD들은 발로 뛰어야 합니다. 특히 자연 다큐멘터리는 자연을 이해하는 자세로 가지고 PD 자신이 자연의 피사체가 되어 촬영에 임해야 합니다.”

KBS「역사스페셜」의 고오주 PD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 계속해서 발전하기 위해서는 과감하고 다양한 시도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형식의 다양함 뿐만 아니라 소재의 다양함도 계속적인 연구와 시도를 통해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KBS「역사스페셜」은 그런 면에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 프로그램이었다. 첨단 그래픽을 이용한 자료들의 복원은 시청자들의 흥미를 끄면서도 진실성을 내포해야 한다는 다큐멘터리의 원칙을 깨지 않았다. 오히려 왜곡이 많을 수 있는 서술적 언어 위주의 나레이션보다 영상을 이용한 표현은 역사 다큐멘터리의 수준을 한 차원 높은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오주 PD는 “역사프로가 시청자들에게 흥미롭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형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대적인 감각을 바탕으로 한 첨단 그래픽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말한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여타의 프로그램들과 같지 않다. 하지만 방송사조차도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다른 프로그램들과 같은 예산과 인원을 편성해준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은 따분한 것’,‘제작은 해야하는데 제작하기에는 시청률도 별로 없는 애물단지’정도로만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취급한다면 우리나라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은 지금의 과도기에 계속해서 머물러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정통 다큐멘터리나 발전된 다큐멘터리보다는 흥미 위주의 왜곡된 진실을 전하기 쉬운 형태의 변형 다큐멘터리들이 우리의 안방을 메울지도 모른다.

조수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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