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김풍이다.”

웹상에서 김풍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그는 스물일곱의 나이에 많은 경험을 했다. 게임 디자인, 만화연재, 출판, 특허출원, 영화기자, CF출연, 캐릭터 사업 등 요즘 젊은이들이 선망하는 일들을 줄줄이 해냈다.

“만화가 나를 띄웠지요.” 그는 쑥스럽게 말한다. ‘폐인’으로 대표되는 인터넷 문화를 재미삼아 그린 만화 <폐인의 세계>가 네티즌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남들이 부러워 할만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 그는 “운이 좋았다”지만 그렇지 않다. <폐인의 세계>가 세상에 나오기 전부터 모바일 게임 회사에서 일하는 등 그는 항상 새로운 경험을 추구했다. 만화는 결국 그가 하게 되었을 일들을 조금 쉽고 빠르게 경험 하도록 도와주었을 뿐이다.

그의 어릴 적 희망은 로봇을 만드는 과학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 꿈은 만화영화 <맥칸더V>를 본 후 바뀌었다. 로봇보다는 <맥칸더V>같은 멋진 만화영화를 만들고 싶어졌다. “처음 만화를 시작 할 때 집안의 반대가 심했어요. 사실 대학가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만화가의 문하생으로 가거나 개인적인 만화활동을 하고 싶었거든요.” 부모님과의 힘겨운 갈등은 고3말 미대진학으로 겨우 합의점을 찾는다. 늦은 결정인 만큼 노력이 필요했다. 다행히 하고 싶었던 일을 하게 돼 의욕이 넘쳤다. 재수가 힘들다는 생각도 안 들었다. 그렇게 1년을 준비했지만 대학은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그때의 기분이요? 엿 같았는데요.” 안되나 보다 좌절도 했지만 다음해에는 대학생이 됐다.

대학 진학은 그에게 하나의 수단이었다. 어렵게 들어간 대학이지만 다른 경험들을 쌓기 위해 몇 년째 휴학 상태다. 학교에 애착이 없다기보다는 다른 경험들에 비해 우선순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할 것을 찾아야 하는데 그것을 좀 일찍 찾은 거죠.”

그는 지나간 경험에 미련을 두지 않는다. 결과에 집착하지도 않는다. 일하던 영화 포털 사이트를 그만 둔 후 작품 밑에 쓰였던 ‘김풍기자’라는 신분은 ‘자유기고갗로 바뀌었다. 그는 ‘기자’라는 이름을 버린 것보다는 친했던 팀원들과 헤어지는 게 섭섭했다. “나는 김풍이다”라는 멘트와 함께 그를 멋지게 포장해 주었던 CF에 출연했던 것도 마찬가지다. 또하고 싶은 매력적인 일일 법 하지만 그에게는 이마저도 재미있고 신기한 경험의 하나다.

재미의 재미를 위한 재미에 의한......

재미는 그의 삶에서 가장 큰 영역을 차지한다. 그가 하는 모든 경험들은 재미를 추구하는 과정이다. “훗날 저승에 가서 염라대왕이 ‘너는 재미있는 삶을 살았구나!’ 라고 말하면 보람을 느낄 것 같아요. 재미없는 삶을 살면 억울하잖아요. 젊었을 때 하는 놀이가 있는데 못 즐기면 안되죠.”

김정환씨의 만화는 그에게 재미를 돌려준다. 만화에 담은 의미를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할 때 섭섭하기도 하지만, 그도 모르게 무의식중에 의도한 것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 의해 밝혀질 때 새로운 재미를 얻는다. 이런 독자들의 관심은 그의 그림을 더욱 세련되게 발전시키기도 한다. 생각 없이 그리던 인터넷 만화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어 대충 그릴 수 없다.

재미를 위해 그리는 만화지만 그는 사회를 향한 메시지를 그 안에 담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탄핵반대 릴레이 카툰’에 참가하여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패러디한 간결한 두 컷만화로 ‘재미’와 ‘정치인에 대한 풍자’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았다. 그가 던지는 메시지는 정치에 한정되지 않는다. 최근 1년 만에 다시 연재하기 시작한 <폐인의 세계> 주제를 초기 통신형태인 VT(비디오텍스트)모드로 잡은 것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처음 만화를 시작할 때부터 하고 싶었던 주제에요. 지금은 인터넷 문화가 순화되지 않고 너무 자유스러워 네티켓조차 사라지고 있는데 통신시절에는 안 그랬거든요. 그때를 비춰봐서 해결책을 찾고 싶어요.”

장난스럽게 수입을 묻는 질문에 그는 조심히 대답을 피한다.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어렵지 않게 김풍이 상업적으로 변해간다는 말을 찾을 수 있다. 네티즌에게 사랑받던 ‘폐인’을 이용해 캐릭터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캐릭터 사업은 돈을 벌기 보다는 해보고 싶은 또 다른 경험의 하나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그는 캐릭터 사업이라는 것 자체가 상업성을 배제할 수 없으나 자기가 그린 캐릭터를 인형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욕구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제가 폐인이 되기만을 기대하는 것 같아요. 매일 라면 끓여먹고, 술먹고……,그러다가 장가도 못가고…….”

그는 애써 자신을 포장하려 하지 않는다. 아직은 스스로의 재미와 경험을 추구할 뿐이지 행위에 남을 설득하려는 목적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유명세 덕분에 간간히 들려오는 그에 대한 비판도 적극적으로 막지 않는다. 그건 그들의 생각으로 남겨둔다.

포스트 ‘김풍’

“무언가 더 재미있는 것을 만들어 보고 싶어요. 하지만 그 대상을 만화에 한정짓고 싶지는 않아요. 전공이 애니메이션이니까 애니메이션도 하고 싶고…….” 마감을 하루 앞두고 급하게 다음 편 아이디어를 생각할 정도로 즉흥적 성격이라던 그가 조심스럽게 털어놓은 꿈은 애니메이션 감독이다. “많은 분들의 공감을 얻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어요. 그래도 제 생각을 배제할 수는 없겠죠. 아마 절충이 될 거에요. 관객과 호응하는, 결국에는 나와 관객 모두 좋아하는 작품이 되겠죠.” 그는 그동안 쌓아온 수많은 경험들이 창조적 작업을 위한 밑거름으로 쓰이기 바란다.

그의 만화에는 기억이 담겨있다. 그 기억들은 항상 밝고 긍정적이다. 심지어 암울할만한 삼수시절조차 인생의 황금기로 표현한다. 과거를 아름답고 소중하게 기억하기에 새로운 경험을 향한 그의 도전이 한결 수월하다.


 
박근영 수습 기자 <zaijian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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