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백야>로 잘 알려진 발레리노, 미하일 바리시니코프*. 그를 보고 발레를 하기로 마음먹은 소년이 있었다. 미하일 바리시니코프의 연속 11회전에 반해 회전 연습을 죽도록 했다. 이제 소년은 '한국의 미하일 바리시니코프'라는 평을 듣게 됐다. 발레리노 이원철(25).

"바리시니코프처럼 11바퀴 돌 수 있어요?"

"그 보다 더 돌죠(웃음). 16바퀴까지 돌아 봤어요."

입단 2 년 만에 수석무용수로

이원철 씨는 2002년 국립발레단에 드미-솔리스트(Demi-Soloist)로 입단했다. 입단한 해에 <지젤>에서 '마을 청년' 역을 맡아 10분 동안 춤을 췄다. 그 때 췄던 '페젼트 파드되'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2004년엔 솔리스트(Soloist), 캐릭터 솔리스트(Character Soloist) 두 단계나 건너뛰고 수석무용수가 됐다. 이례적인 일이다. 수상경력이며 출연작도 화려하다. 2000년 파리국제무용콩쿠르에서는 세미화이널리스트(Semi-Finalist)에 올랐고 2003년 동아무용콩쿠르에서는 은상, 2003년 전국신인무용콩쿠르에서는 금상을 받았다. 발레의 백미(白眉)라는 <백조의 호수>, <지젤>, <돈키호테>, <호두까기인형> 등에 출연했다.

키로프 발레아카데미의 연습벌레

그의 약력만 보면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앞에 나타난 것 같다. '고속출세'나 '혜성처럼 나타난 발레리노'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그와 이야기를 해보면 모든 것은 노력의 결과임을 알 수 있다. 공연이 잡히지 않아도 하루에 개인연습만 6시간이다. 공연을 앞두고는 아침 일찍부터 연습을 시작해서 밤 10시, 11시가 되어야 끝낸다. 

많은 연습량은 유학 시절부터의 습관이다. 이원철 씨는 13살 때 미국 워싱턴 키로프 발레아카데미로 유학을 갔다. 어린 나이에 유학 생활은 너무 힘들었다. "말이 안 통해서 수업도 제대로 못 들어가고, 밥도 못 챙겨 먹었고요. 친구 사귀는 것도 힘들었어요." 외로운 시간에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연습 밖에 없었다. 밥 먹고 연습하고, 밥 먹고 연습하는 생활이 1년 정도 계속됐다. 미하일 바리시니코프의 회전을 떠올리며 회전 연습을 했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확한 동작을 만들기 위해 연습해 몰두했다. "동작 하나 하나를 섬세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완벽을 추구해야 해요." 그 결과 그는 키로프 아카데미의 예술감독에게서 '한국의 미하일 바리시니코프'라는 소리를 듣게 됐다. 그의 '고속출세'는 이렇게 6년 동안 내공을 쌓은 결과다.

어머니와 아들

타고난 재능보다는 연습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원철 씨. 그래도 그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었다. 유치원 때부터 그가 무용을 하면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고 한다. "유치원 장기자랑 시간에 무용하는 사진이 집에 있어요. 얼마 전에도 봤는데, 참 동작이 예쁘더라고요(웃음)." 이런 재능을 처음 눈치 챈 사람은 그의 어머니다. 유치원생 아들이 춤추는 걸 보면서 어머니는 아들을 발레리노로 만들 결심을 했다고. 초등학교 5학년때 그는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발레 교습소를 찾았다.

이원철 씨가 발레를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어머니의 공이다. 공학박사인 아버지는 그가 학자가 되길 바랬다. 아버지의 반대에 어머니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처음 발레를 시작했을 때 그는 여자들 밖에 없는 발레교습소가 싫었단다. 남자가 무슨 발레냐고 놀리는 친구 때문에 발레를 그만 두고 싶었다. 그 때 어머니는 그에게 미하일 바리시니코프의 <백야>를 보여줬다. 지금까지 그는 <백야>를 기억하며 춤을 춘다. 발레리노를 위한 의상이 없어서 어머니는 천을 끊어다가 직접 의상을 만들었다. 유학생 시절, 고된 연습 때문에 울며 전화하는 그를 다그친 것도 어머니다. 열렬한 후원자인 어머니가 없었더라면 벌써 발레를 그만 뒀을지도 모른다.

기본과 몰입, 이원철의 발레하기

발레리노 이원철의 주특기는 점프와 회전이다. 현란한 테크닉을 자랑하면서도 그는 기본을 강조한다. "한국에서는 테크닉만 강조해요. 중요한 것은 동작 하나하나를 정확히 해낼 수 있는 기본인데 말이죠." 기본이 없으면 테크닉도 없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손 하나도 그냥 뻗으면 안 돼요. 날개 뼈에서부터 제대로 뻗어야 해요."

<지젤>의 '알브레히트', <백조의 호수>의 '지그프리트 왕자'에 이어 지난 5월 무대에 올려진 <잠자는 숲 속의 미녀>의 '데지레 왕자' 까지, 그는 유난히도 왕자 역을 많이 맡았다. 왕자 역을 할 때 기분을 묻자 "저한테 그런 면이 있나 봐요. 특히 이번 '데지레 왕자'를 연기하면서 귀족적인 면이 있었구나 라고 느꼈어요"라며 웃는다. "어느 역이든 제 성격이랑 잘 맞더라고요." <고집쟁이 딸>의 장난끼 넘치는 '콜라스'도 <돈키호테>의 가난하지만 카리스마 있는 '바질'도 그에게 딱이다. 그만큼 주어진 역에 몰입한다는 이야기다. "춤 못지 않게 연기도 중요해요. 맡은 역에 몰입해야 합니다."

25살 발레리노, 40살 발레리노

친구들의 놀림에 발레를 그만두고 싶었던 어릴 적 마음과  달리 이제 그는 발레 없이는 하루도 살수 없는 발레리노가 되었다. 누굴 만나도 발레 이야기를 꺼낼 만큼 발레 생각을 많이 한다. 그는 발레를 오래오래 하고 싶다. 그가 원하는 대로 40 살까지 발레를 하려면 체력이 필요하다. 무릎이며 허리가 안 좋은 그에게 운동은 필수다. "체력관리를 위해 하루에 2시간 씩 헬스를 해요. 단백질 보충을 위해 닭 가슴살도 먹고요." 은퇴 후에는 아이들에게 발레를 가르치고 싶단다. 아직 25살인 그에게 은퇴는 너무 먼 이야기다. "많이 연습하고, 관객들에게 더 많이 보여주고 싶어요. 이원철이라는 이름도 많이 알리고 싶고요." 그가 미하일 바리시니코프를 보고 발레리노의 꿈을 꾸었듯, 그를 보고 발레리노를 꿈꾸는 소년이 많았으면 좋겠다.      


 
강버들 기자 <whgdk0613@hotmail.com>

*소련 출신의 미국 무용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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