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유감

지난해부터 올 상반기를 지배한 핫 키워드는 단연 '웰빙(well-being)'이 으뜸이다. 올 1월 1일부터 5월까지 웰빙에 관련된 기사를 검색하면 5,000건이 넘게 나온다. 1달에 1,000건이 넘게, 하루에도 33번 이상씩 웰빙이라는 단어를 접하면서 살고 있다. 단순 먹거리뿐만 아니라, 가전, 의류, 여행, 보험 등 새로 출시되는 상품의 대부분이 웰빙을 표방한다. 또 다른 핫 키워드인 '몸짱', '아침형 인간'과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운동도 열심히 하자'는 라이프 스타일이 대세가 되고 있다.

웰빙이라는 말은 도대체 어디서 시작하여 이토록 급부상했을까?

유윤희 풀무원건강생활 식생활연구소장에 의하면 웰빙은 결코 신조어가 아니다. 1948년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건강의 정의를 내릴 때 썼던 말이다. 건강이란 '질병이 없기만 한 것이 아니라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안녕(well-being)한 상태'라고 한데서 웰빙의 개념이 등장하게 된다. 국내에는 대략 2002년 말부터 인테리어, 여성잡지들에 의해 소개되며, 상업화 바람을 타게 되었다.

동아일보에서 올 1월에 웰빙에 대해 설문조사한 바에 따르면 사람들은 웰빙하면 떠오르는 단어로 헬스클럽과 운동(14%)을 뽑았다.* 이어 여유와 자연스러움(14%), 유기농식품(12%), 자기만족(10%), 정신적 가치를 중시함(7%) 등이 뽑혔다. 정신적 여유를 가지고, 유기농식품을 먹으면서 헬스클럽에서 기꺼이 비지땀을 흘리는 사람이 웰빙족의 이미지다.

여기서 잠시 웰빙에 대해 딴지를 걸어보자. 아침마다 꽉꽉 들어찬 지하철에서 시달리고, 점심은 그냥 회사 주변에서 때워야 하고, 저녁이면 폭탄주 난무한 회식이 이어지는 대다수 직장인들이 웰빙을 실천할 수 있을까? 아니면 입학하기가 무섭게 영어 공부와 취업준비로 시달리며 도서관에서 빵조각으로 점심을 때우는 대학생들이 웰빙족이 될 수 있을까?

좁은 공간 안에 밀도가 높아지면 스트레스를 받아서 자기들끼리 싸우고, 죽는 것이 동물의 본성이다. 어쩔 수 없는 경쟁상황과 높은 인구밀도를 가진 이 땅의 사람들에게 한줄기 빛으로 다가온 탈출구가 웰빙이었다. 좋은 음식을 먹으며 열심히 운동을 하면 여유로워질 것이라는 분홍빛 광고가 24시간 우리를 세뇌하고 있다.

좋은 음식을 먹자는 것이 지탄받을 수는 없다. 식생활 개선이라고 생각하자. 그러나 유기농 딱지를 붙인 식품은 몇 갑절이나 비싸다. 없는 생활에 싼 야채와 과일을 사면 졸지에 '친환경'적이지 못한 인간이 되고 만다. 주머니 사정이 뻔한 주부는 저녁을 만드는 내내 농약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거름을 줘서 키우는 유기농 야채는 재배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뿐더러, 굉장히 손이 많이 간다. 유기농 식품을 먹는 사람은 어찌 보면 조금 더 많은 금액으로 다른 이의 시간과 노력을 간편하게 사고 있다. 밥상에서 농부의 수고로움을 생각하며 명상하는 웰빙족은 아마 없을 것이다.

웰빙의 사전적 의미에는 행복과 복지(welfare)도 있다. 그런데 왜 웰빙의 개념은 개인의 행복에만 맞춰져 있는 것인가?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안녕한 상태는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가능하다. 자기 자신의 먹거리, 우리 가족의 건강만을 생각하고, 타인의 고통은 무시한다면, 반쪽의 여유와 편안이 아닐까?

수많은 웰빙 기사 중에는 이웃과 함께 하자는 내용이 없다. 돈 안 들이고 소박하게 웰빙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많아도, 소박함은 자신에게 국한된다. 돈 안 들이는 웰빙이라면 봉사를 하며 같이 나눌 수도 있다.

장애인 이동권을 외치며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시위하는 장애인들을 보면서도, 서울 시내 공기가 안 좋은 것과 자가용에 달 공기청정기만 생각한다. 주말매거진에서는 복잡한 도시를 떠나 황토 체험을 하고 허브 농장에서 아로마 테라피를 받아보라고 한다. 어디 가서 즐기라는 가이드는 많은데, 자연을 훼손시키지 않도록 어떻게 치우고 오라는 가이드는 없다.

웰빙의 방법 중 하나로 인기를 끌고 있는 요가나 명상은 6~70년대 미국의 히피들에 의해 크게 유행했다. 반전운동과 민권운동 정신을 실천하는 젊은이들이 배타적인 문명에 대항해 자연주의, 뉴에이지 문화 등을 받아들이면서 파생된 삶의 방식이었다.

어찌하여 우리는 문화는 없고 상품만 있는 왜곡된 웰빙을 받아들이고 있을까? 다른 사람의 시간, 노력, 삶을 몇 사람이 독차지하는 것이 아닌, 다같이 조금씩 나누는 웰빙을 정말 '잘 사는 방법'이라고 말하고 싶다.

 
 
송혜원 기자 <renee@prpartners.co.kr>

*동아일보. 04. 1. 12일자. ['웰빙(Well-being)'속으로… 새문화냐 상술이냐]  774명 대상 설문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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