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수많은 의혹을 뒤로 한 채 수사가 종결된 "정현준 게이트", "진승현 게이트" 와 비슷한 금융 사기극이 또 일어났다. 이 사건에도 역시 검찰은 물론 국정원, 국세청, 금감원과 정치권 등 이른바 권력층 각계 인사들의 이름이 들먹거리고 있다. 바로 "이용호 게이트"다.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지 3주가 넘도록 정·관계 로비 의혹의 실체를 전혀 밝혀내지 못함에 따라 이 사건 역시 기존 권력형 금융 비리 사건의 재판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 사건은 단순히 이름 없는 중소기업인의 전형적 금융 사기로  시작된다. 지난 9월 4일 대검 중수부는 구조조정전문회사 G&G 회장 이용호(43)씨를 기업구조조정자금 횡령과 주가 조작 등의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이용호 회장은 1999년 10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KEP전자㈜, ㈜인터피온(전 대우금속)등을 인수한 뒤 전환사채를 담보로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거나 제3자에게 매각하는 수법으로 유상증자과 전환사채 발행대금 451억 여 원을 빼돌렸다. 이 회장은 또 지난해 10월 ㈜삼애인더스를 통해 전남 진도 앞 바다에서 금괴 발굴 사업을 추진하면서 ㄷ신용금고 회장 김모씨에게 사업 정보를 제공, 시세차익을 챙길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김씨는 이씨가 제공한 정보에 따라 차명계좌로 삼애인더스 주식을 매입하고 주가가 한창 올랐을 때 되팔아 154억 원 상당의 차익을 얻었다.

권력형비리 사건인가 풍문인가
 
기업구조조정자금 횡령과 주가조작. 이씨는 기업사냥꾼의 전형적인 사기 행각을 보였지만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씨의 정·관계 로비 의혹이 드러나면서 이를 단순히 부도덕한 기업가의 범죄행위로 보기 어려워진 것이다. 언론은 정·관계 인맥을 이용, 주가를 조작하고 기업 자금을 횡령한 이번 사건을  "이용호 게이트" 라 부른다.
한나라당 이주영 의원은 14일 열린 국회 법사위에서 "구속된 이씨가 주가조작, 횡령, 사기 혐의 등으로 그 동안 검찰에 29차례나 입건됐지만 벌금 2천 만 원을 낸 게 전부라는데 사실이냐" 고 따진 뒤 그가 검찰 고위간부들과 가깝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함승희, 조순형 의원도 "서울지검 특수부가 지난해 5월 이회장을 무혐의 처리했으나 대검 중수부는 지난 4일 이회장을 같은 혐의로 구속하는 등 금융비리 은폐 및 직무유기 의혹이 있다" 면서 검찰의 해명을 요구했다. 
정·관계 로비의혹으로 번지고 관련자들의 증언이 엇갈리면서 이 사건이 과연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판단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크게 대두되는 두 가지 의혹을 중심으로 이 사건의 전말을 알아보자.

의혹 하나-검찰의 '봐주기' 있었나

이 회장에 대한 검찰의 비호설이 나도는 이유는 그가 지난해 5월 서울지검에 긴급체포된 뒤 하루만에 석방되고 무혐의 처분까지 받은 과정이 석연치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3월 서울지검 특수2부(이덕선 부장검사. 현 군산 지청장)는 이씨와 과거 동업자였던 강모씨가 제출한 진정서를 근거로 두 달 이상 내사를 벌인 뒤 5월 9일 기업구조조정자금 횡령으로 이씨를 긴급 체포했다. 그러나 이씨는 다음날 석방되고 두 달 뒤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씨를 풀어준 것이 로비의 결과라는 직접적인 단서는 없다. 하지만 지난 19일, 신승남  검찰 총장이 자진해서 "동생이 이씨로부터 5,000만원을 받았고, 계열사에 취직해 7,8월 월급으로 1,666만원을 받았으며 1주일에 2∼3차례 출근했다"고 말하면서 사건은 중대한 국면을 맞게 됐다. 이씨가 현직 검찰총장의 동생을 통해 검찰총장에게도 로비를 시도했다는 가능성은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대검은 들끓는 여론을 의식, 20일 검찰총장 지휘를 받지 않는 특별감찰본부(본부장 한부환 대전 고검장)를 설치하고 작년 서울지검 수사팀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

의혹 둘-정·관계 로비

이용호씨의 정·관계 로비의혹을 수사중인 대검 중수부는 24일 이씨와 친분이 있는 검찰 간부와 정·관계 인사 1819명의 이름과 연락처가 담긴 리스트를 확보하고 있다고 밝혔다. 자료에는 검찰 고위 간부와 국회의원 등 정·관계 인사, 금융감독원, 국세청 간부 등 주요 인사들의 이름이 대거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리스트는 이씨측이 조직적으로 관리해온 정·관계 로비 커넥션의 실체를 풀어낼 수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이들 1819명 중 김형윤 전 국정원 경제 단장과 이씨의 관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씨는 지난해 소위 '정현준 게이트' 로 불린 동방금고 불법대출 사건 당시 금감원 로비 명목으로 5천만원을 받았음이 검찰 조사에서 확인됐다. 문제는 그가 이씨와 지난 6월까지 빈번히 접촉했다는 점이다. 김형윤씨가 이씨 사업과 관련,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 인수 대상 기업 물색에 도움을 주고 금감원과 국세청 등에 대한 로비나 압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수사진행방향

이씨가 지난 4일 구속된 이후 불거진 ‘이용호 게이트’수사는 28일로 만 24일을 넘게 계속되고 있다. 현재 대검 중수부는 이씨가 자신의 학·지연을 바탕으로 한 인맥들은 물론 여운환씨 등의 로비인맥과 어울려 주가조작·시세차익·사업특혜 등을 벌인 혐의에 대해 수사중이다.
대검 특별감찰본부는 작년 서울지검 수사팀이 이씨를 긴급체포 하루만에 석방하고 두 달 뒤 불입건 처리한 사실을 놓고 혹시 검찰 지휘부가 수사팀에 압력을 행사한 것 아닌지 등을 수사하고 있다. 현재 대검 중수부의 수사는 답보상태다. 반면 검찰 특별감찰본부는 작년 이씨 사건을 전담한 서울지검 수사팀 임휘윤 부산 고검장과 이덕선씨 두 명이 이씨의 무혐의 처리를 주도했다는 결론을 내리고 사법처리 검토에 착수했다.

어느 것 하나 사실로 드러나지 않은 이용호 게이트에 대한 여야의 정치 공방과 언론의 추측성 기사들로 일반 국민들은 혼란을 겪고 있다. 미 테러사건으로 경제가 불안한 요즘, 이런 현상이 계속된다면 국민의 정부에 대한 불신과 분노가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이번 사건의 엄정한 처리에 정권과 검찰의 도덕성이 걸려 있다. 검찰도 이번에 신뢰를 잃으면 회복할 시간이 없다. 2년 전 "옷 로비 사건"의 전처를 밟지 않도록 성역 없는 수사와 감사를 해야할 때다.

서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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