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딸리아

사람들은 지중해 하면 백사장이 무한히 펼쳐진, 깊고 푸른 바다가 보이는 리조트를 떠올린다. 안딸리아에 가서 그 말로만 듣던 지중해를 봤을 때 처음엔 '깨끗한 바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눈을 돌려 주위를 보니 영화에서 봤음직한 하얀 집들이 있었다. 찬란한 태양 아래 사람들의 표정은 밝고 쾌활했다. 이곳 사람들은 다른 이의 모습엔 신경쓰지 않는다. 자신들의 즐거움과 여유를 즐기기에 여념이 없어 보인다. 

 지중해에 오면 꼭 바다로 뛰어들겠다고 다짐했지만 아쉽게도 내가 묵었던 숙소 근처에는 수영하러 뛰어들만한 곳이 없었다. 해안가 절벽 위의 허름하지만 경치 좋은 카페에 앉아 대낮부터 시원한 맥주를 마셨다. 그리고 그 깊고 푸른 바다를  감상했다.  

카파도키아

카파도키아는 도시 이름이 아니다. 네브세이르 주위의 괴뢰메, 윌굽, 아바노스 등 반경 100km 지역을 일컫는 지역명이다. 이곳에선 터키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광활함이라고나 할까? 다른 곳에선 도저히 볼 수 없는 독특한 지형들이 가는 길목 곳곳에 펼쳐 있다. 그 신비로운 느낌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마음이 맞는 사람 몇 명과 함께 안딸리아에서 차를 빌렸다. 600km 가 되는 길인데 무슨 생각으로 차를 빌렸는지 지금도 놀랄 일이다. 하지만 그냥 버스를 타고 갔으면 놓치고 지나갔을 여러 장관들을 볼 수 있었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깎아지른 절벽 위에서 "야호!!" 소리치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수평선 너머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드넓은 평원 한가운데 차를 세웠다. 향수를 달래고자 가져갔던 '전람회'의 음악을 들으면서 점점 붉게 물들어가는 푸르름과 불그스레함의 저녁놀을 지켜보는 일은 내 생애 다시는 느끼지 못할 감흥이었다.

괴뢰메에 숙소를 잡고 주위를 돌아다녔다. 기독교 탄압을 피해 산골까지 숨어 들어온 사람들이 땅속 수백미터까지 파내려간 개미굴 같은 데린쿠유 지하도시. 인간의 힘이 대단하다는 것을 몸 하나 겨우 통과할 수 있는 끝없는 터널 속에서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길을 잘못 들었던 마을에서 만난 양치기 가족의 환대가 생각난다. 다음 목적지로 향하던 중 길 왼쪽으로 멋진 골짜기가 나타나는 것을 보고 무작정 가다 한 시골 마을에 도착했었다. 동양인을 처음 봤는지 주민들은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Hello?' 조차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그저 웃음만으로 서로의 느낌을 주고받았다. 나오는 길에 만난 양치기 아저씨가 계속 자기 집으로 가자고 부탁해 머뭇거리다 결국 그 집으로 갔다.
 
터키 사람들이 사는 가정집은 처음이었다. 허물어져 가는 외관과는 달리 갖출만한 건 다 있었다. 장롱에 냉장고, 라디오, 텔레비전까지. 텔레비전은 LG제품이었다. 이쪽 저쪽 집안도 둘러보았다. 안방인 듯한 곳에 온 가족과 모여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손짓발짓은 기본이었다. 혹시나 해서 가져온 몇쪽짜리 간단한 회화집이 얼마나 고맙던지. 타뉴시트그므자 멤눈 올둠 (만나서 반갑습니다). 한글로 쓰여있는 발음을 어색하게 따라 읽었다. 저쪽에서 알아듣고 대답하면 또 책을 뒤졌다. 혹시나 아는 단어 하나 나오면 그걸 바탕으로 마치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독하듯 열심히 뜻을 유추 해냈다.
 
손님을 위해 극진히 준비한 만찬은, 계란 스크램블과 딱딱한 빵, 그리고 아이란이라 불리우는 터키식 요구르트와 홍차였다. 하지만 초라한 밥상이라도 대접은 얼마나 융숭했던지 시종일관 우리는 웃음꽃을 피우며 양치기 아저씨와 대화도 나누고 사진도 찍었다. 꼭 사진을 부쳐주겠노라 다짐하며 주소도 받아가지고 나왔다.

순박하고 또 순박한 사람들. 바로 진정한 터키 사람들의 모습이다. 지나가는 낯선이도 (생전 보도 듣도 아시아인 아닌가, 그들은 한국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 반갑고 친절하게 대하는 모습. 비록 관광객이 자주 다니는 곳의 일부 터키인들은 돈에 물들었어도 양치기 아저씨와 같은 이들이 터키 사람들의 진정한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

다시 돌아온 안딸리아

카파도키아에서 다시 렌트카를 반납하러 안딸리아로 돌아왔다. 안딸리아로 돌아온 건 아스펜도스 극장에서 열리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를 보기 위함이었다. 아스펜도스 극장은 로마시대에 세워져 지금까지 거의 원형대로 남아있다. 현재 매년 7월초 경에 아스펜도스 오페라&발레 페스티발의 극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외국의 야외 오페라 극장에서, 그것도 2천년도 넘은 극장에서 오페라를 본다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다. 내가 앉은 돌 위에서 2천년 전에도 누군가가 공연을 관람하였다고 생각해보면, 그 시간의 차이에서 오는 희열감은 달콤할 뿐이다. 낯선 땅에서 낯선 사람들과 함께 여름밤의 환상적인 아리아를 감상해보는 것은 값진 경험이다.

 

이동우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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