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평론가 장일범                         

올 가을 클래식 공연가이드를 보게되면 오페라 팬들은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하고 볼을 꼬집어볼 만하다. '루치아' '리골레토' '사랑의 묘약' '토스카' 같은 명작오페라가 하루가 멀다하고 무대에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가을에 볼 수 있는 오페라의 수는 모두 15편. 수적으로 보면 뉴욕이나 밀라노, 파리, 모스크바가 부럽지 않다. 하지만 무작정 반색하며 극장으로 달려갔다가는 실망하기 쉽다. 아니 절망하고 말 것이다. 

오페라가 많이 열린다는 사실은 정말 반가운 일이다. 우리나라도 유럽처럼 늘 오페라 극장에 가서 매일 오페라와 발레를 볼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필자의 오랜 바람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오페라는 거의 매일 같이 열리면서 양적으로는 팽창했는데  뭔가가 크게 잘못되어있다. 공연되고 있는 오페라의 질이 형편없는 것이다.

갑자기 오페라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질은 형편없어진 것일까? 서울시와 문화관광부는 올해 '무대 공연 작품 지원사업'으로 모두 11편의 오페라를 선정, 최고 1억 1500만원에서 최저 2500만 원에 이르기까지 지원금을 지급했다. 그러자 너도나도 이 지원금을 타기 위해 오페라단을 급조해서 무대에 섰다. 오페라를 전혀 해보지 않은 단체들도 있으며, '왜 이 사람이 오페라단 단장을 하고 있는 것일까?'하고 머리를 갸우뚱하게 되는 인물들도 있다.

이런 급조되거나 프로페셔널하지 못한 단체들의 출현으로 인해 프로 오페라 무대는 대학 오페라보다도 못한 학예회가 되어 버렸다. 요즘의 대학 오페라는 준비기간도 길고, 열정이 넘치며 재미도 있다. 그런데 프로들의 빛나는 무대여야 할 오페라가 '제사보다는 젯밥'에 관심이 많은 오페라단들에 의해 한심한 수준으로 전락하였다.
 
필자는 봄에 국립오페라단의 베르디 오페라 '시몬 보카네그라'를 보고 '우리 오페라가 이렇게 서구에 못지 않게 발전했구나'하면서 감격했다. 그래서 최근에 오페라 무대를 후퇴시킨 일련의 함량미달 오페라들은 심히 걱정스럽다. 오페라를 좋아하던 팬들을 떠나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 오페라는 50년이 조금 넘는 역사를 갖고 있다. 그동안 어렵게 쌓아온 오페라 팬들이 우리 오페라 무대를 외면하는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 그래서 이렇게 편차가 커져버린 오페라 무대에 대해 옥석을 가릴 줄 아는 안목이 중요해졌다. 이번 가을에 오페라를 보고 싶으면 예술의 전당을 추천하고 싶다. 10월에 열리는 예술의 전당 오페라 축제는 금년에 가장 기대할 수 있는 수준 높은 오페라 무대다. 예술의 전당이 제작하는 베르디의 '가면무도회'와 바로크 오페라 '미리바이스', 국립 오페라단의 '코지 판 투테'(여자란 다 그래)는 심하게 구겨진 한국 오페라의 자존심을 되살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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