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리리리’전형적 벨소리에서 최신가요까지. 요즘 어디를 가나 휴대폰이 울리지 않는 곳이 없다. 10대부터 4·50대까지 세대를 불문하고 대한민국 전 국민 사이에 좍 퍼져버린 휴대폰.  그러나 이들이 휴대폰을 가지고 적응해온 모습은 기성세대, 신세대 이들간의 세대 차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걸고 받는 법만 알면 그만

휴대폰 액정 화면에는 여자들에 둘러싸인 김건모가 떠있고, 차태현 안성기 이나영의 휴대폰에서는 색색의 물감들이 뿜어져 나온다. 웬 남자 품에 안긴 여자는 남자의 어깨너머로 휴대폰 화면에 뜬 자신의 얼굴을 바라본다. 요즘 휴대폰 광고들을 보고 있으면 나이 든 사람들은 저들이 도대체 휴대폰을 가지고 무얼 하고 있는 건지 도통 감 잡을 수가 없다. 

기성세대들에게 있어 휴대폰이란 '어디서나 걸고 받을 수 있는 전화' 그 이상의 의미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학생 자녀를 둔 안순애씨(여 ·46·가정주부)는 휴대폰을 들고 다닌 지가 2년이 다 되어 가지만 끄고 켜는 것, 걸고 받는 것 이 간단한 작동법 밖에 모른다. 딸이 문자를 사용하는 법을 몇 번이고 가르쳐 줘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진동 모드로 바꿀 줄을 몰라서 교회에 갈 땐 항상 전원을 꺼둔다. 

아버지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항상 허리춤에 차여진 새까만 모토로라 휴대폰은 1년 내내 벨소리가 한번도 바뀌지 않는다. 핸드폰 액정에는 처음 샀을 때 그대로 기기명이 쓰여 있거나 이름 석자가 찍혀있는 게 예사다. 이들에게 휴대폰의 다양한 기능은 오히려 불필요한 장식물에 불과하다.

주가정보 서비스, 골프·바둑 서비스 등 각 이동통신업체에서는 중년 남성들을 위한 서비스를 마련하고 있지만 이를 이용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한번도 써 본적 없습니다. 제 주변에서도 쓰는 건 한 번도 못 봤고요."라고 말하는 조성구씨(남·55·자영업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표정이다. 

내 손안에 든 나의 작은 분신  

그러나 10대, 20대에게 있어서 핸드폰의 의미는 기성세대에게 있어서의 그 의미와는 확실히 다르다. 이들의 휴대폰 사용 영역은 기성세대들의 상상을 넘어선다.

우선 이들의 핸드폰은 겉모양부터 크게 차이가 난다. 이들 핸드폰에는 엄연히 패션과 유행이 존재하고 있다. 초기에는 액정 위에 붙이는 스티커, 휴대폰이 울리면 불이 깜빡이는 핸드폰 줄이 유행했다. 한동안 대학가에는 핸드폰줄 가게마다 이니셜이 새겨진 구슬로 직접 핸드폰 줄을 만들어 사가는 학생들로 북적거렸다. 플립형이 대부분이던 시절에는 누구나 한번쯤은 플립 안에 연인, 혹은 친구와 찍은 스티커 사진을 붙이고 다녔고, 지난 겨울에는 털이 북실한 핸드폰 줄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안미현씨(여·21·대학생)는 "매일 들고 다니는 거니깐 애착이 가는 것 같아요. 하루종일 손에 들고 다니면서 쳐다보는 건데 예뻐야지 좋잖아요"  라고 설명한다. 그는 헬로우 키티, 타래펜더, 엽기토기 요시마로 등 유행하던 캐릭터의 휴대폰 악세사리는 다 해보았다. 최근에는 일본으로 여행을 갔다 온 친구가 선물한 사기로 된 고양이 핸드폰 줄을 달고 다닌다.

이들의 핸드폰 꾸미기는 핸드폰  악세사리로 끝나지 않는다. 누가 자신의 핸드폰을 매일 들여다보는 것도 아니건만 화면의 문구를 정하는 데에는 열두 번도 더 고민한다. 이제는 문구 대신 다운 받은 갖가지 동영상 캐릭터들이 초기 화면을 장식하고 있다. 전화가 올 때 울리는 벨소리도 이들에겐 중요하다. 좀 더 예쁜 벨소리, 남들은 갖지 않은 자신만의 벨소리를 갖기 위해 계속해서 새로운 벨소리를 다운받는다. 이전에 700 전화서비스에서만 가능했던 서비스가 인터넷, 모바일에 까지 옮겨오자 벨소리, 캐릭터를 다운로드 받는 것은 더욱 보편화되었다.   

쪽지세대. 문자세대

누구나 한 번쯤은 학창시절 수업 시간에 선생님 몰래 쪽지를 돌리다가 벌을 받은 기억이 있다. 그러나 쪽지 전달에 얽힌 이러한 추억을 지금은 휴대폰이 대신한다. 쪽지와 다른 게 있다면 옆 줄에 앉은 친구뿐만 아니라 옆 반 친구, 타학교 친구에게까지 전달될 수 있는 점이다. 현재 고 3인 김기훈군(남·19)도 학교에 있는 시간이 대부분인 요즘 옆 학교에 다니는 친구와 자주 문자를 통해 서로의 안부를 주고 나눈다.

이러한 10대들의 취향에 맞춰 각 이동 통신업체들은 문자 서비스 기능을 강화한 10대 전용 상품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TTL Ting은 10대들에게 문자 서비스 400회를 무료로 제공하고, KTF는 상품 이름을 아예 무료 문자 서비스 혜택이 많은 '문자하자'로 내걸고 있다.  

문자가 친근한 것은 10대뿐만이 아니다. "친한 친구랑 하루에 한번은 꼭 문자를 보내요. 덕분에 학교가 멀어서 자주 보지 못해도 항상 옆에 있는 것 같아요." 대학생 허수정씨(여·22 ·대학생)는 친한 친구와 일주일에 한번 정도 만나지만 문자로 매일 연락을 하고 지낸다. 이렇게 중고등학생, 대학생 가릴 것 없이 문자는 이들에게 친구와 관계를 유지하는 주요한 수단이 되고 있다.  

최근에는 인터넷에서 시작된 아바타가 휴대폰에까지 등장, 단순히 글만 적어보내던 것에서 이제는 캐릭터 등의 그림까지 동원된다. 즐거움 슬픔 망설임 놀람 황당함 등의 갖가지 표정을 가진 캐릭터들은 이들의 문자 송신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즐거운 모바일 세상 

모바일 세상이 열리면서 이들의 휴대폰의 기능은 더욱 확장되었다. 박우빈씨(남·20·대학생)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할 일이 없을 때엔 휴대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해 게임을 한다.   하루 평균 한 시간씩 접속을 하고 있기 때문에 통신비가 조금 많이 나오긴 하지만  "무선인터넷에 접속하면 재미있는 게임이 더 많거든요"라고 그는 설명한다. 이동통신 업체들마다 게임 전문업체와 계약을 맺고 휴대폰 무선인터넷 게임 개발에 나서, 무선 인터넷이 제공하는 게임 서비스는 예전보다 훨씬 다양해졌다.   

선릉에서 신촌까지 매일 한시간씩 걸려 통학을 하는 김선영씨(여·대학생·22)는 지하철 안에서 '모바일 캐스팅'이 제공하는 휴대폰 뉴스 채널을 듣곤 한다. 모바일 캐스팅'은 휴대폰으로 생활, 오락, 뉴스 등의 채널이 구성되어 다양한 컨텐츠를 휴대폰을 통해 음성으로 들려주는 서비스다. 김미경씨(여·22·대학생)는 학교에서 영어 사전이 필요한 경우 핸드폰을 꺼내 엔탑을 한다. "급한 경우 아주 편해요. 영어 사전은 들고 다니기도 무겁구요"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널리 퍼진 쿠폰 문화도 휴대폰 안으로 들어왔다. 김수현씨(여·26·대학원생)는 인터넷에서 카페, 음식점 정보 사이트에 회원으로 가입했다. 사이트에 신청을 하면 매 달 자신의 휴대폰으로 할인 쿠폰이 입력되어 온다. 그녀는 이 쿠폰으로 지금까지 세 차례 종로와 대학로의 음식점에서 할인 혜택을 받았다. 이러한 것들은 기성세대들에겐 낯선 광경이다.  

이제 '휴대폰 문화'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여느 다른 테크놀러지와 마찬가지로 휴대폰도 사람과 결합해 또 하나의 문화를 형성해가고 있다. 그리고 같은 하늘 아래, 똑같은 휴대폰을 가지고도 신세대들과 기성세대들은 이처럼 서로 다른 휴대폰 문화를 형성해가고 있다.

김주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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