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역의 시인, 랭보와 짐 모리슨』-



술과 마약에 취한 록커, 섹스 심벌, 근친상간을 뜻하는 노랫말, 무대 위에서의 마스터베이션까지. 1960년대 미국 저항정신의 대명사 짐 모리슨에게 붙는 꼬리표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짐 모리슨의 정신적 지주, 아르튀르 랭보를 모른 채 그의 광기 어린 기행에만 너무 촉각을 세운 것은 아닐까? 미국 듀크 대학의 불문학자 월리스 파울리는 <반역의 시인, 랭보와 짐 모리슨>에서 19세기의 시인 랭보와 20세기의 록커 짐 모리슨의 세기를 건너뛴 인연을 소개한다.

저자 월리스 파울리는 프랑스의 천재 소년 시인 랭보와 미국 카운터컬쳐(counterculture-기성 가치관, 관습 등에 반항하는 젊은이의 문화)의 대표격인 록 그룹 도어즈(The doors)의 리드 싱어 짐 모리슨의 삶은 우연찮게도 비슷한 구석이 많음을 발견한다. 열여섯 살부터 시를 쓰기 시작해 스무 살이 되기도 전에 절필한 방랑시인 랭보, 5년 동안 7개의 앨범으로 반항과 자유의 화신이 된 짐 모리슨. 두 사람 모두 짧은 기간 동안 뜨겁게 타오른 후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했다. 생전에는 시대를 거스르는 미운 오리 새끼였지만 죽음 이후 더욱 자유로워진 그들은 이제 전세계 반항아들의 숭배 대상이 되었다.

프로메테우스 랭보 & 디오니소스 짐 모리슨   

영화 <토탈 이클립스-Total Eclipse>에서 랭보는 당대 최고의 시인 폴 베를렌느를 사로잡을 만큼 매력적인 영혼을 가진 청년이었다. 랭보에게 시는 자기고백이자 자기예언이었다. 그의 초기작 '취한 배'는 랭보 자신의 삶을 노래한 100행이나 되는 대서사시이다. 자유를 찾아 배를 타고 대양을 찾아 나선 어린아이가 다시 출발지로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랭보는 이미 인생은 장밋빛이 아님을 다 알아버린 듯하다. 소년 랭보는 고독한 조숙아였고, 벌겋게 달궈진 반항 시인이었으며, 홀로 떠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방랑자였다. 랭보는 반항아 짐 모리슨과 지금까지 그를 잊지 못하는 젊은이들에게 고독과 자유, 방랑의 불을 당긴 19세기의 프로메테우스가 아닐까? 랭보가 끌어안아야 했던 고독은 독수리에게 간을 내어준 프로메테우스의 고통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저자는 랭보가 37년의 짧은 일생동안 추구한 자유와 권위에의 저항, 그에 따르는 필연적인 고독이 20세기의 디오니소스 짐 모리슨에게 전해졌음을 지적한다. 록 가수이기보다 시인으로 생을 마치고 싶어했던 짐 모리슨은 랭보에게서 천재의 광기, 광대의 용기, 그리고 시인의 고독을 이어받았다.

나는 혁명, 무질서, 혼란, 그리고 이 시대에 무의미해 보이는 모든 것에 관심을 갖고 있다.
내게는 그것들이야말로 자유로 향하는 진정한 길로 보인다.     -Jim-

저자 월리스 파울리는 마약과 술에 취한 채 무대에 오른 도어즈의 공연이 제례의식을 연상시켰다고 평가한다. 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 <도어즈-The doors>에서 발 킬머가 연기한 짐 모리슨은 마치 고대 그리스의 주신(酒神) 디오니소스가 부활한 듯한 모습이다. 마약과 음악, 무대 위에서의 도발적인 행동을 통해 그가 얻으려고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짐 모리슨 역시 랭보가 원했던 '진정한 자유'에 가까워지고 싶었던 게 아닐까?

이들의 저항정신은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니체의 자유정신과도 맞닿아 있다. 이들은 절제와 순종, 이성의 틀에 갇힌 인간성을 실현한 자유인인 것이다. 책에서 저자는 랭보와 니체가 기독교를 노예화의 윤리라고 비판한 점을 들어 이들의 반역과 자유정신을 증언한다. 자유와 반항을 노래한 두 명의 오르페우스 랭보와 짐 모리슨이 밀레니엄 세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까지 이를 수 있는 것도 바로 자유에 대한 인간의 욕구를 가장 자유스럽게, 인간답게 분출했기 때문이다. 술의 신인 동시에 자유와 해방의 신인 디오니소스로 다시 태어난 짐 모리슨을 마약에 취한 반항아로 단순화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광기와 반항의 상징이 된 랭보와 짐 모리슨의 삶에 가까이 갈수록 나는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지 그리고 인간다운 삶이란 어떤 삶인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이제까지 내가 생각해온 자유로운 삶, 인간다운 삶의 정의가 무너진다. 사회가 나를 구속하기 전에 내 스스로 나를 옭아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성과 지식, 권력의 사슬에 묶여 오히려 더 불행한 삶을 산 것은 아닌지. 구속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랭보와 짐 모리슨이 자청한 저항과 광기의 삶이 오히려 가장 자유로운, 가장 인간적인 삶일지도 모른다.

지난 1991년 랭보 사망 100주년, 짐 모리슨 사망 20주년을 맞은 프랑스는 세계에서 모여든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짐의 무덤이 있는 파리의 페르 라셰즈 묘지에서는 흥분한 사람들 때문에 폭동이 일어날 뻔했다. 그들은 짐이 죽은 게 아니라 랭보의 흔적을 찾아 아프리카로 떠났다고 믿는다. Break On Through to the other side. 다른 편으로 뚫고 나아가라는 짐의 외침이 들려온다. 아프리카 어딘가에서 순수한 자유를, 고독을 즐기고 있을 랭보와 짐 모리슨의 자유는 이미 그들만의 자유가 아니다. 19세기의 프로메테우스가 전해준 불덩이는 20세기의 디오니소스를 거쳐 21세기의 젊은 오르페우스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불문학자로서 월리스 파울리 교수의 작업은 대중문화라고 폄하할 수도 있었던 도어즈의 음악세계가 랭보의 시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음을 밝혀낸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의를 가진다. 비록 깔끔하지 못한 편집과 서투른 번역체가 눈에 거슬리기는 하지만 우선은 랭보와 짐 모리슨의 영혼을 한데 묶었다는 것에 만족해야할 것 같다.

박수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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