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스트라 연습실이 도서관에? 그것도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본 이름, 금난새씨가 이끄는 오케스트라가 도서관 강당을 빌려서 연습을 한다니. 조금은 의아한 마음을 안고 국립중앙도서관 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Euro Asian Philharmonic Orchestra) 사무실을 찾았다. 잠시 후 바쁜 걸음으로 누군가 사무실로 성큼 들어온다. 잘 다려진 감색 재킷에 베이지색 면바지, 한올한올 잘 빗어 넘긴 머리에서 중년신사의 깔끔한 멋이 묻어난다. 얼굴 가득 환한 웃음을 머금고 먼저 인사를 건네는 지휘자 '금난새'씨다.

 A Venture For the Orchestra

"우리나라 오케스트라들도 벤처정신을 갖고 자생력을 가져야해요." 언제나 신선한 아이디어로 음악계를 놀라게 하는 그 답게 이번에는 클래식과 벤처정신 사이에서 부지런히 지휘봉을 흔든다. 금난새씨는 벤처의 의미를 자기 세계에서 할 일을 스스로 개척해나가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정부가 주는 예산 아래서 보호받는 것에만 익숙해 있는 우리 음악계에도 벤처정신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 덕분에 금난새씨가 유럽과 아시아의 음악적 교류를 넓히고자 1997년 창단한 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벤처정신으로 철저히 무장된 '벤처 오케스트라'로 성장했다. 다른 오케스트라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예산으로 운영되지만 연주회 때마다 마치 전쟁을 치르듯 최선을 다하고 꾸준히 새로운 연주회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최근에는 포스코(POSCO)와 삼성전자에서 작게나마 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후원을 약속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연습실도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무료로 제공했다. "대신 저희는 연주회를 열어서 후원에 답하고 있어요. 도와달라고 손을 먼저 내미는 게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도와주고 싶도록 저희는 연주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포스코센터 로비에서 지난해부터 2년 기획으로 진행되고 있는 베토벤 페스티벌을 열어 베토벤의 교향곡 전곡을 연주하고 있다. 또 국립중앙도서관 강당에서는 아카데믹한 클래식 음악을 지루하지 않게 구성한 프로그램으로 '도서관 음악회'를 2년째 이어가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드물게 연 60회 이상의 연주회를 갖는 오케스트라, 객석 앞에서 따뜻한 미소로 지휘봉을 잡는 금난새씨. A Venture For the Orchestra의 꿈을 향한 아름다운 음악가들의 초상이다.

그는 요즘 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좀 더 경쟁력 있는 오케스트라로 이끌기 위해 홍보활동에서부터 관객들의 반응을 살피는 것까지 꼼꼼히 챙긴다. 연주회 해설은 물론이고 '음악노트'를 만들어 연주될 음악과 작곡가에 대해 자세히 안내하고, 연주회가 끝난 후에는 관객들의 만족도를 조사한다. 앞으로는 연간 연주 횟수를 100회까지 끌어올릴 계획도 세우고 있다. 벤처클래식을 향한 그의 꿈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다. 

30여 년 전 감동, 그리고 오늘
 
금난새씨에게 '지휘자'는 지휘봉으로 허공에 선을 긋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연주자는 바이올린, 첼로, 플룻같은 악기로 연주를 하지요? 지휘자에게는 사람이 곧 악기에요. 그래서 단원들과 잘 호흡하려면 인내심과 자제력이 필요합니다." 지휘자 금난새의 저력은 청소년 때부터 지휘봉을 잡아온 오랜 경험에서 우러난다. 그는 서울예고 시절 매주 토요일이면 악기를 다루는 친구들을 모아 연주회를 열곤 했다. 연주 프로그램 안내 팜플렛까지 직접 제작해서 홍보한 덕분에 연주회에는 다른 학교 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서울대학교 작곡과에 다닐 때에도 그는 오케스트라를 구성해서 서울 공연뿐만 아니라 지방 공연까지 치러냈다. "그 때 지휘를 해봤던 경험들이 제가 꿈을 이루는 데 소중한 밑거름이 됐어요. 학생이라고 해서 무조건 주어진 제도에 순응하거나 그것에 불만을 터뜨리기만 할 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 자기 삶의 테마를 길러낼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죠." 

그는 '94년부터 지난 '99년까지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청소년 음악회'를 맡았었다. 음악회 전회 매진이라는 기록을 세우면서 그는 청소년들로부터 대중스타에 버금가는 인기를 얻기도 했다. 금난새씨의 친절한 해설이 있는 청소년 음악회는 클래식은 지루하고 어렵기만 하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리기에 충분했다. 그가 처음 해설이 있는 음악회를 들고 나왔을 때, 사람들은 의아하게 생각하고 어색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지금은 발레, 국악, 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해설을 곁들인 감상법이 쓰이고 있다며 흐뭇해하는 모습이 어린아이 같다. 그는 '해설이 있는 청소년 음악회'로 고등학교 때부터 줄곧 그리던 꿈을 이룬 셈이다. 30여 년 전 TV에서 세계적인 지휘자 번스타인이 'Young Peoples Concert'에서 음악과 함께 해설을 곁들이는 모습을 본 후 그 때의 감동을 잊지 않았다. "작곡자가 숨겨둔 의미를 알고 음악을 들으면 그냥 무심코 들을 때와는 다른 느낌이랍니다."

"삶의 테마를 찾으세요."

올해부터는 음악회 장소를 옮겨 세종문화회관에서 청소년들을 맞이하고 있다. "음악은 완성된 건축물이에요. 그것을 이해하려면 분해하고 또 다시 조립해보는 과정이 필요한데, 사람들은 그냥 완성품만 바라보고 있으려니 재미도 없고 어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지요. 해설은 사람들이 음악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서, 청중들과 대화를 나누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금난새씨는 청소년 음악회의 폭을 더 넓힐 계획이다. 경희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그는 우선 국내 대학에서 대학생들을 위한 음악회를 여는 것부터 추진하고 있다. 이어서 그는 국내 대학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우리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해설이 있는 음악회를 열어 교포 2∼3세들에게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끼게 하고 싶다고 한다. 

금난새씨는 대학생이나 중고등학생들이 자기 색깔을 가진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고 덧붙인다. 우리 젊은이들이 특정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춘 사람이었으면 하는 게 그의 바람이다. 그는 대중문화의 유행이 만들어낸 똑같기만한 유니폼을 입은 젊은이들을 볼 때 안타깝다. "남이 하는 대로 따라하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미래를 가꾸어 가는 사람이 아름답습니다. 젊은 시절에 좋은 책을 읽고 멋진 음악을 듣는 것은 자기만의 Fantasy를 기를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한글 이름으로 '나는 새'의 뜻을 가진, 금난새씨의 "삶의 테마를 찾으세요."라는 부드러운 한마디에서 꿈을 이룬 음악가의 행복이 그대로 느껴진다.


박수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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