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영 기자<zaijiann@naver.com>

지난 3월 9일, 정세영(52, 중학교 교사)씨가 경찰청 주최 워크숍에서 10대 ‘일진회’ 청소년들의 비행실태에 대해 증언했다. 대다수 일간지들은 일제히 중/고등학생의 공개 성행위와 불량학생들이 자행한 성폭행을 부각시키는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경쟁적으로 ‘섹스’, ‘성행위’ 등의 단어를 조합한 선정적인 제목을 뽑아내는데 열을 올렸고, 몇몇 신문은 이를 묘사하는 그림까지 덧붙였다. ‘일진회’ 회원들이 모여서 했다는 노예팅, 섹스머신 등 낯선 성놀이 용어를 설명해 주겠다며 구체적인 묘사도 빠트리지 않았다. 피해학생의 사례라며 성폭행을 당한 여학생의 경험을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이 문단 오른쪽에 이미지1번 넣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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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간 연합…공개 성행위 조폭 뺨치는 일진회'  <한국일보>

'학교 폭력조직 일진회 노예팅.섹스놀이까지'  <서울신문>

'일진회 600개교 서울연합 락카페 열어 공개섹스 충격'  <한겨레신문>
'공개성행위…노예팅…연합음란파티… 일진회 탈선 갈데까지 갔다'  <동아일보>
'1200명 연합모임…락카페서 섹스파티'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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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진회의 성행위에 관해 떠들던 신문사 내부에서 반성이 흘러나온 것은 며칠이 지나서다. <한겨레신문>의 11일자 <독자 기자석> 에는 일진회 보도 제목들의 선정성을 지적한 어느 독자의 글이 올라왔다. <경향신문>은 15일<미디어비평>을 통해 ‘일진회보도의선정성’이란 글을 실어 잘못 흘러간 보도 흐름을 지적했다. 보도의 지나친 선정주의에 관해 직접 반성적 시각을 드러내지 않았던 신문들도 일진회 기사와 관련해서 ‘성’적인 측면만이 부각되는 기사를 자제하기 시작했다.

소재에 예외는 없다.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독자를 자극하라.

우리나라 종합 일간지들이 특정한 사안을 가십화하고 선정적으로 보도한 사례는 이번 ‘일진회’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 2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배우 이은주씨에 관한 기사들의 선정성은 신문의 무례한 보도행태를 그대로 보여준다. 신문들은 고인의 자살 동기를 밝힌다며 확인되지 않은 그녀의 사생활을 기사화 했다. 자살에 대한 원인으로 ‘노출연기에 대한 부담’을 거론했다. 그녀가 출연했던 영화의 노출장면에 대해 상세히 묘사하며, 그녀의 심경에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억측했다. 때문에 그녀의 죽음 직후 과도한 노출장면이 나왔다는 영화 <주홍글씨>는 뒤늦게 화제가 되었다. 누드씬만 편집된 동영상이 인터넷을 통해 유포되기도 하였다. 사람들의 말초적인 호기심을 자극하는 언론의 보도방식이 고인을 모욕한 것이다.

이런 보도 행태는 범죄관련 기사에서도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범죄는 대립과 갈등, 긴장, 불안, 폭력, 섹스 등 자극적 요소를 두루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매매’와 ‘성폭행’에 관련된 기사가 특히 그렇다. <조선일보>와 <세계일보>는 지난 2월 23일자 신문에서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변칙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성매매 실태에 대해 비중 있게 다뤘다. 기사에서는 다양한 성매매 사례에 대해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다.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보다는 성을 안전하게(?) 구매할 수 있는 방법들을 소개하는데 목적을 둔 것 같다. 성폭행 사건을 다룬 3월 14일자 <한겨레신문>의 기사제목은 독자의 호기심을 유발한다. ‘야수로 돌변한 통닭집 배달원’은 신문보다는 성인비디오에 어울리는 제목이다. 2월 20일자 <조선일보>의 ‘엽기 마누라’, 3월 29일자 <서울 신문>의 ‘막가는 가족’ 같은 기사제목은 심각한 가족범죄를 오락화 하고 있다. 

정치기사도 가십화에서 예외가 아니다. <조선일보>의 3월4일자 ‘국회 몸싸움 386의 완승 野의원 단상점거 저지’ 기사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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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도시법이 통과되던 2일 밤 국회 본회장에선 70년대 운동권과 80년대 운동권의 ‘근력’ 대결이 벌어졌다.(중략)
정봉주 의원은 ‘축구광’이고, 김태년 의원과 최재성 의원은 각각 축구·핸드볼, 마라톤과 복싱으로 단련된 몸이다. 서갑원 이화영 강성종 의원은 거구(巨軀)축에 낀다.(중략)
다음날 아침 이재오 의원은 “우리도 이제 늙었나 보다. 젊은 애들 한테 안되겠다”고 하자, 김문수 의원은 “며칠째 과자만 먹어서 더 힘을 못썼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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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들을 마치 격투기 선수처럼 묘사하고, 의원들의 말을 직접 인용한 부분도 흥미위주다. 국회의원들의 한심함을 ‘희화화’했다고 하기에도 무리가 있다. 이 글에서 기사의 본질은 찾을 수 없다.

신문에서 볼 수 있는 그림이나 사진은 때때로 기사의 내용보다 더 자극적이다. 성(性)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기사에도 성적인 상상력을 부추길 수 있는 그림을 삽입하고, 남녀의 성행위를 묘사하는 그림을 버젓이 싣는다. 지나치게 잔인한 장면도 걸러지지 않는다. 지난 3월 17일에는 북한의 공개처형에 관한 기사를 다룬 몇몇 신문들은 기둥에 묶인 채 총에 맞고 쓰러져 죽어가는 북한 주민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함께 게재했다.
<이미지2>

어쨌든 웃긴기사. 씁쓸한 독자.

독자들은 대체로 불쾌하다는 반응이다. 중학생 자녀를 둔 정혜영(38, 주부)씨는 “효과적인 교육방법으로 NIE(Newpapaer In Education)를 내세우면서 정작 낯 뜨거운 기사를 실어대면 어떻게 애들한테 신문을 읽히겠냐”고 했다. 강현우(23, 대학생)씨는 “신문을 재미로 본다면 스포츠신문이나 봤을 것”이라며 좀 더 진지하고 무게감 있는 언론의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신문기사는 중학교 2학년생들이 읽기에 무리가 없는 수준에서 작성한다. 지성을 갖춘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가볍고 자극적인 기사가 남발하는 신문들의 행태는 ‘지성인’을 무시하는 처사로 보인다. 깊이 있고 수준 높은 기사는 신문에 신뢰를 주고 열독률*을 높인다. 무가지와 인터넷신문의 등장으로 기존의 신문시장이 위기를 맞고 있다. 구독률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바른 언론의 모습을 찾아가는 것이 이 위기를 이겨낼 바람직한 방향일 것이다.


*열독률 : 일정 기간 동안 신문을 읽은 사람을 대상으로 어떤 신문을 가장 많이 읽었는지 조사한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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