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정 편집장

"단지내 애완견 사육을 삼가 하시고…"
안내방송 울릴 때면 가슴이 조마조마해 집니다. 그리고 '금지'가 아닌 '삼가'란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쉽니다. 제가 바로 일부 사람들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는 '아파트 내 애완견 사육자'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9개월 된 '먼지'라는 시추 한 마리를 키우고 있습니다. 자랑을 얼마나 했으면 친구들이 저를 보면 '먼지' 안부부터 묻곤 합니다. 저녁 무렵 산책중 개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마주치면 대개 미소를 지으며 '강아지 귀엽네요, 몇 살이죠?' 등 말을 건네기도 합니다. 개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만나 기분이 상하는 일도 종종 있습니다. 가장 흔한 경우가 배설물 때문입니다. 

아무 곳에서나 배설을 하게 하는 주인들을 볼 때면 개를 키우는 사람으로서도 눈살이 찌푸려집니다. 하물며 평소 호감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보면 오죽할까요. 특히 외국에 비해 애완견 사육에 대해 관대하지 못한 우리의 경우는 더욱 그러합니다. 의식없는 몇몇 주인들 때문에 애완견을 키우는 사람 전체가 욕을 먹는구나 하는 생각에 슬그머니 화도 납니다.

개를 산책시킬 때는 반드시 휴지와 비닐봉지, 목줄을 준비하는 것이 타인에 대한 최소한의배려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기본적인 수칙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개를 키울 자격이 없습니다. 내가 좋다고 해서 남들이 싫어할 수 있는 일을 일방적으로 한다는 것은 예의 바르지도 사려 깊지도 않습니다.
 
애완견을 키우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도 있어야겠습니다. 나에게는 더럽고 쓸모없이 여겨지는 것이라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소중하고 의미있는 존재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먼지'를 키우면서 누군가를 사랑하고 돌볼 자격, 심지어 미워할 자격 등과 같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작게는 애완견을 키울만한 능력이 있는지 에서부터 크게는 사회적인 일을 할 자격이 있는지 까지 말입니다.

일상의 작은 일에서도 배울 수 있는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에 대해 이제껏 우리는 너무 무관심했던 것 같습니다. 최근 매스컴의 지면과 화면을 장식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보면서, 이 모든 것이 그런 일을 하기엔 자격미달인 사람들로 인해 일어났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단시일에 거액의 돈을 벌거나 관리할 수도 없는 사람이 분에 넘치게 돈을 모으려니 온갖 비리를 저지를 수밖에 없습니다. 국민 복리를 위한 정치도 자격미달의 사람들이 하니 각종 비상식적인 정치행태들이 나타납니다.

더구나 뉴욕시의 참상과 아프칸에 대한 보복전쟁 등을 둘러싼 비극들을 보면서 과연 어떤 사람들이 타인을 벌주며 심지어 목숨까지 앗아갈 수 있는지 비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득 저도 이런 글을 쓸 자격이 있는지 반문해 보았습니다. 남에게 읽혀지는 작은 글이라도 제대로 쓰기 위해서는 앞으로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친구로서, 동료로서, 또는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심각하게는 한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다시 한번 되돌아 보아야겠습니다. 어느덧 따뜻한 녹차 한잔이 그리워지는 가을의 문턱입니다. 10월에는 '자신의 자격'에 대한 생각의 끈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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